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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7 베트남-월남의 달밤 1(完)

호치민 묘소

by 깜쌤 2017. 3. 7.

호치민 ! 그는 베트남의 영웅이다. 프랑스의 침입을 격퇴시키고 남북으로 갈라졌던 베트남을 통일하는데 초석을 다진 것이 그의 최대업적이다.   

 

 

[Daum백과]에서는 그의 일생을 이런 식으로 요약해두었다. 출처는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김상엽, 청아출판사본"이다.  

 

 

본명은 응우옌 신 꿍(Nguyen Sinh Cung,
阮生恭). 1890년 프랑스 치하의 베트남에서 태어났으며,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회주의를 배우게 되었다. 1941년부터 베트남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1945년부터 1969년까지 북베트남 대통령을 지냈다. 열강들의 손에 의해 갈라진 조국 베트남의 통일을 위해 온 힘을 다했으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1969년 사망했다.

 

[Daum백과] 호치민 –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김상엽, 청아출판사본

 

 

 

 

호치민은 한자로 호지명(胡志明)이라고 쓴다. 胡志明을 베트남어 발음으로 읽은 것이 호치민 혹은 호찌민이다. 사진 속의 건물은 베트남 국회의사당이다.

 

 

국회의사당은 호치민의 무덤과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사당 뒤편이 탕롱황성이고 다시 그 뒤편은 베트남 국방성이다.

 

 

호치민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아저씨로 불린다. 그 정도로 친근감있게 다가서는 존재인 것이다.

 

 

그는 자기 무덤을 만들지 말고 화장하여 베트남 영토 북부와 중부와 남부 세곳에 뼛가루를 골고루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후계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후치민의 뒤를 이은 후계자들은 그를 위한 장중한 영묘를 만들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무덤 앞 광장에 보이는 노란색 선을 넘으면 경비병이 호르라기를 불며 제지한다. 그걸 무시하고 더 가까이 접근하면 심각한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다.

 

 

나는 처음에 사람들이 아무도 묘소앞으로 다가서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었다. 그러다가 조금 늦게서야 눈치를 챘다. 몰랐더라면 망신을 당할뻔 했다. 

 

 

 호치민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사느라고 결혼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전한다. 남긴 재산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나라를 사랑했다는 말이 된다. 같은 독신이지만 어설픈 여자에게 홀려 탄핵위기까지 몰려있는 누구와는 너무 차이가 난다. 독신생활을 했기에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청렴했고 서민들을 죽도록 사랑했기에 존경받는 것이다.

 

 

그가 1945년부터 국가주석에 취임하여 1969년 사망할 때까지 이십여년 이상이나 독재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을 욕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도 더 신기한 일이고...... 경제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지주계급과 자본주의자들과 귀족, 왕당파를 숙청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트집잡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에게 믿음을 얻었다는 증거이리라.

 

 

숙청의 전력이 있던 그가 놀랍게도 베트남 통일 후에는 패자들에게 관용을 보여달라고 유언을 남겼다니 더 신기한 일이다. 그의 묘소를 멀리서만 바라본 뒤 왼쪽으로 돌아가서 묘소 뒤편으로 가보았다. 호치민 묘소를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편으로 돌아가면 호치민 박물관과 부근에 있는 작은 절을 만나게 된다.

 

 

묘소옆 꽃밭에는 하와이안 무궁화가 화려한 꽃망을 터트려 그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있었다.

 

 

박물관쪽에는 작은 기념품 판매공간이 있어서 슬며시 쉬어갈 수 있다. 

 

 

일행 한분은 여기에서 모자를 하나 구입했다. 호치민이 즐겨 썼다는 스타일의 모자다.

 

 

호치민의 사진들이 많이 걸려있었다.

 

 

휴식공간 뒤에는 못꼿사원이 있다.

 

 

못은 하나를 의미하고 꼿은 기둥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자로는 일주사(一柱寺)가 된다.

 

 

지금은 기둥이 시멘트로 되어 있어서 감흥이 떨어졌지만 원래는 나무 기둥이었다고 한다. 한개의 나무 기둥위에 지은 절이니 그 발상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정면에 서서 보면 한개의 나무기둥 위에 세운 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않는다. 원래 절은 리왕조의 2대황제가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일주사 바로 부근에 호치민박물관이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역시 작은 절이 하나 있다.

 

 

박물관에 안가볼 수가 없다.

 

 

절은 문이 닫혀있었기에 눈길만 던져주고 지나쳤다.

 

 

유감스럽게도 박물관 문은 닫혀있었다.

 

 

헛수고를 했던가 싶어 아쉬웠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점심시간때문에 문을 닫은 것 같았다. 박물관 정문에서 고개를 돌려 내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았다.

 

 

나는 다시 걸어내려왔다. 이 부근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새로 오기로 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시가지건물들이 그쪽으로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호치민 묘소구역을 벗어나자 곧 민가들이 나타났다. 꽃집이 화려하기도 하다.

 

 

도로 건너 국수집에서 쌀국수를 주문했다.

 

 

이런 식으로 한끼 먹는데는 우리 돈으로 2, 3천원이면 충분하다.

 

 

소고기 한그릇에 4만동이었으니 우리 돈으로 하자면 2천원이다. 나는 양념에 매콤함을 더하기 위해 고추를 넣어 먹었다. 그랬더니 입안이 한결 개운해졌다.

 

 

점심을 먹고는 다시 호치민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아까 문이 닫혀있었던 절문도 열려있었다. 크게 볼 것은 없었지만 호젓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다시 박물관으로 올라갔다.

 

 

여기까지 와서 이 박물관을 놓치면 나만 손해다.

 

 

박물관 입장료는 4만동이었다. 표를 샀다. 군복을 차려입은 호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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