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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7 베트남-월남의 달밤 1(完)

하노이의 구시가지는 인산인해였다

by 깜쌤 2017. 2. 21.

 

슬슬 걸었는데도 그 사이에 벌써 호안끼엠호를 반바퀴 정도 돌았다. 칼을 묻었다는 섬과 탑이 호수 한가운데 자리잡고 천년 세월을 버텼다. 

 

 

녹차 라테로 변한 호수안 작은 돌멩이 위에 거북이 한마리가 올라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호수 부근은 모두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사방을 살피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초등학교 5학년 정도로 되어 보이는 맨발의 소녀가 다가와서 팝콘을 팔아달라고 사정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삶에 찌든 흔적이 역력했다.

 

 

나그네의 작은 돈으로 그 아이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싶어 한개를 사주었다. 옥수수버터튀김이라고 해야하나? 1만동이란다.

 

 

소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져갔다. 아이의 맨발이 자꾸 눈에 밟혔다.

"깜언(감사합니다)."

 

 

갑자기 노란색 금잔화꽃 위로 애잔함이 묻어나는듯 했다.

 

 

내가 저 아이만했을 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가난뱅이 국가였다. 가난과 무기력함과 부패와 절망으로 덮혀있던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아무리봐도 기적이다. 

 

 

나는 인류 5천년 역사를 압축해서 살아온 기적같은 세대속의 한 구성원이다. 어찌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뼈저린 가난과 전근대적인 삶에서 탈피하여 현대화 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살폈으며 직접 행동으로 일한 세대였다. 빈곤으로 점철된 농업사회가 근대화와 공업화되는 과정을 거쳐 최첨단정보화산업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을 본 세대다. 그 뿐이랴?

 

 

독재사회에서 민주화사회로 변천하는 모습을 본 세대다. 헐벗은 산야가 산림녹화에 성공하여 녹색으로 가득한 국가로 변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냈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가 젊은 세대들로부터 욕이나 얻어먹는 늙다리 보수 꼰대 취급을 받아야되는가 싶어 우울해질 때도 있다. 

 

 

나는 단 돈 1원(정말 1원이다)이 모자라 두세끼를 때울 수 있는 좁쌀(쌀이 아니다. 요즘 병아리 모이로 쓰는 좁쌀이다)을 못구해 저녁을 굶어본 경험이 있다. 십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런 현실에 절망하여 쥐약을 먹여 가족 모두가 자살하려 했고, 아버지가 나에게 쥐약을 먹일까 싶어 공포에 떨며 밤을 지새운 일이 있다. 어떤 사연인지 궁금하면 아래 글상자를 클릭해보시면 된다. 그런 내가 남의 나라에 와서 쌀국수를 앞에 놓고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중이다.

 

 

 

베트남 서민들이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해외여행을 수십번이나 즐긴 나는 정말 행운아다. 우리는 하노이 서민들이 드나드는 쌀국수 가게에서 목욕탕용 의자에 앉아 쌀국수를 먹었다. 삼각형 모습으로 덩어리지어 잘라낸 쌀국수를 소스에 찍어먹었다.

 

 

그런 뒤에는 맞은 편에 있는 미니 카페로 자리를 옮겨 도로쪽으로 내어놓은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며 달달한 첫맛이 느껴지는 베트남 커피를 마셨다.

 

 

내일 밤에는 야간열차를 타고 중부지방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는 여행사를 찾아가 기차표를 샀다. 내일 밤 19시 30분에 출발하는 열차의 하드베드를 일인당 87만 5천동으로 구했다. 물론 여행사가 먹는 커미션이 포함된 가격이다. 여행사 사장은 가이드로 7년 정도를 일한 뒤 여행사를 차렸다고 했다. 이제 30대 초반인데 작은 사무실을 세개나 운영하는 건실한 양반이었다.

 

 

차표를 구한 뒤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멸치를 꺼내 고추장에 찍어먹으며 잠시 노닥거렸다. 

 

 

 일기를 쓰고나자 저녁 7시가 되었다. 이제는 저녁을 먹어야한다.

 

 

 우리는 홈스테이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놀라워라! 모든 거리 풍경이 아까와는 다르게 완전히 일변해있었다.

 

 

밖은 바로 야시장 거리였다. 금요일 밤부터는 야시장이 열린단다. 아하! 그래서 이 거리의 모든 호텔들이 그렇게 북적거린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그대가 하노이 구시가지에 머무르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반드시 주말에 찾아가야한다. 그래야만 멋진 밤거리를 구경할 수 있다. 거리는 백인관광객들로 대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 정도는 뺨을 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어느 한곳에 섣불리 들어가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그만큼 먹거리가 다양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Hot Pot 바베큐를 먹어보기로 했다.

 

 

자리에 앉았더니 옛날 야외취식을 할 때 사용하던 1회용 액체연료같은 깡통을 가져오더니만 불을 붙이고 그 위에 구멍이 뚫린 자그마한 철판을 올렸다. 

 

 

  그 다음에는 은박지를 입힌 구이용 작은 철판을 올린다. 

 

 

양념을 한 고기를 내어왔다. 1세트가 20만동이다. 세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바께뜨 닮은 빵을 잘라서 쟁반에 담아왔다. 

 

 

어느 정도 달아오르자 기름덩어리 비슷한 버터(?)를 녹였다.

 

 

찍어먹을 소스도 가져다 주었다. 깨소금장에 탱자비슷한 것을 으깨어 넣는것 같다.

 

 

아까 가져온 양념고기를 은박지위에 올린 뒤 익혀서 먹으면 된다. 그게 핫 팟 베베큐다.

 

 

맛? 맛있다. 안먹어보면 손해일 것이다. 가격? 세사람이 우리돈 1만원 정도만 쓰면 충분히 먹는다. 젊은이들이라면 조금 더 큰 것을 시키면 되겠다. 나는 주스 한잔을 곁들였다.

 

 

우리가 일어서자 외국인 한쌍이 냉큼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저녁을 든든히 챙겨먹고는 다시 거리구경에 나섰다. 코에 익은 냄새가 나길래 따라가 보았더니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어묵도 보인다. 이건 누가 봐도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현지인과 외국인들에게 대인기였다.

 

 

김밥에다가 튀김김밥까지 팔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한류가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경험은 나중에 베트남 중부의 자그마한 소도시에서 하게 된다.

 

 

제법 긴 거리를 한바퀴 돌다가 굿판 비슷한 것을 보았다.

 

 

길거리에다가 목욕탕용 의자를 깔아두고 앞쪽에는 악사까지 동원해서 전통 음악을 연주했다.

 

 

전통의상을 걸친 사내가 나와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굿판 같았는데.....

 

 

하노이 구시가지 야시장이 그 정도일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상상을 못했다. 

 

 

거듭 말하지만 방콕의 카오산 로드보다가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다.

 

 

거리를 점령하다시피 차지한 백인들과 동남아 및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거리는 한없이 흥청거리기만 했다. 팝음악과 전통음악과 길거리 음식과, 값싼 상품들이 길거리를 완전히 차지해버렸다. 사진으로는 찍지 못했지만 넓은 어깨를 지닌 흰머리 여자는 틀림없이 트랜스젠더였으리라. 나는 어깨 너른 그 여자(?)를 보고난 뒤 괜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파왔다.

 

 

거리구경을 한 뒤 우리는 홈스테이로 돌아왔다. 일기를 쓰고 샤워를 하고는 이내 잠자리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참으로 길고 긴 하루였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