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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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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장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구지를 찾아가다 1

by 깜쌤 2017. 2. 3.

 

생가 구경을 위해서는 줄을 서야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쪽에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일단 건물 바깥부터 살펴두었다. 분위기로 보아 내부 촬영이 금지될 것이 뻔하니 지금 찍어둘 수 있는 것은 미리 찍어두어야만 했다.

 

 

모택동이 출생 당시 그의 아버지는 빈농 성분이었을지모르나 그가 인정한대로 청소년기에는 벌써 부농이 되어 있었다. 분명 그가 살았던 집은 결코 작은 집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택동은 중국인들에게 이미 반은 신격화되어버렸기에 그런 것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은 드물지 싶다.

 

 

우리도 줄을 서기 위해 검색대를 찾아갔다.

 

 

모택동이 살았던 집은 명색이 홍색(紅色) 성지다. 그러길래 소지품 검사도 한다. 생가 내부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있었다. 두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내부는 단순했고 별다른 장식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친 성역화 분위기때문에 슬며시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가 사용했던 물건은 거의 다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가져가버려서 생가에는 특별히 따로 남아있는게 없었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13살 때 아버지와 다투고나서 물에 빠져버리겠다고 위협했다는 연못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모택동의 키는 183센티미터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에 그 정도 신장이었다면 보통 사람에게 주는 위압감이 굉장했으리라.

 

 

생가와 남안사숙을 구경했으니 볼만큼은 보았다. 따로 기념관이나 조상들이 살았다는 조거지(祖居地)같은 곳을 둘러보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기에 민생고를 해결하러 나섰다.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한끼를 해결하는 것도 숙제나 마찬가지다.

 

 

웅장한 건물들이 들어찬 건너편 골짜기를 애써 외면한채 생가 입구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 자리잡은 마을로 들어갔다. 

 

 

도로가에 모선식부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이 보였다. 착할 선이라는 글자 앞에 달 월(月)자가 붙었으니 무슨 말인가 싶어 찾아보았더니 자는 반찬이라는 의미를 가진 글자였다.

 

 

식당 벽면을 장식한 사진들이 어째 범상치않아보였다.

 

 

김이 들어간 계란탕과.....

 

 

마늘쫑이 들어간 돼지고기 볶음요리를 주문했다.

 

 

거기에 밥을 주문했으니 둘이 먹기에는 충분하다.

 

 

음식점의 역사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주인은 이빠진 사기그릇을 내어왔다. 아주 자랑스런 표정으로 말이다.

 

 

중국식당에서 이빨빠진 그릇을 내어왔다고해서 손님 입장에서 기분상할 일은 절대 아니다.

 

 

간판 밑에다가 국가주석이 다녀간 집이라고 자랑스레 새겨넣었다.

 

 

2003년 10월 1일, 중앙당총서기 호금도(=후진타오)주석이 다녀갔다는 것이다. 그외에도 강택민, 호요방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식당안에 붙여둔 자료를 보니 국공 내전시절, 아마 이집 주인의 아버지가 공산당 지하당원이었던 모양이다. 

 

 

모택동의 후광으로 먹고 사는 집이 한 두집이 아닌듯 하다. 시내를 향해 걸어가는데 택시가 경적을 울리더니 옆에 멈추어섰다. 합승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1인당 5원에 합의하고 택시에 올랐다. 아줌마가 하던 말을 내가 대강 알아들었다.

 

 

"뚜어 샤오첸(얼마요)?"

"량거런 스콰이(2인 10원이오.)"

내가 일인당 2원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5원씩이란다. 4를 나타내는 발음과 10을 나타내는 발음이 비슷하므로 나는 잘 구별하지 못하기에 혹시나 싶어서 재확인해본 것이다.

 

 

미리 타고 있던 아줌마는 우리가 왕년의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이름을 술술 대기 시작하자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후 2시50분에 소산을 떠나는 차를 타고 장사시내로 돌아왔다.

 

 

보슬비가 슬슬 뿌려대기 시작했다. 우린 다시 지하철을 탔다. 그렇다고 해서 호텔로 막바로 돌아가는게 아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꼭 한군데 반드시 둘러보아야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바이두 지도를 보며 찾아낸 곳이 있었다. 장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감격했었다.

 

 

반드시 거기를 찾아가봐야한다. 망성파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2호선을 타고 가다가 5.1광장역에서 내렸다.

 

 

방향을 못찾아 조금 헤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지하철 7번 출구를 찾아 그냥 바로 올라오면 된다는 사실을 그땐 미쳐 몰랐다.

 

 

 

위 지도를 살펴보자. 아래에 있는 까만 점이 지하철 2호선 5.1광장역이다. 위에 있는 까만 점은 중산정(中山亭)의 위치를 나타내는 표시다. 일단 7번 출구로 나와서 중산정까지 걸어가보자. 위 지도를 클릭하면 아주 크게 뜰 것이다. 이번에는 아래 지도를 살펴보자.

 

 

 

 

중산정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중산공로를 따라 걷다가 장사은행을 끼고있는 삼귀가 작은 골목을 따라 오십여미터 정도 걸어보자. 그런 뒤 왼쪽으로 들어가서 다시 오른쪽 골목안을 살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구지라는 표지판을 단 건물이 나타난다. 이 정도로 안내해두어도 못찾는다면 어쩔 수 없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해지기 전에 찾아야하는데......  나는 조바심이 일었다.

 

 

당신이 중산정을 찾기만하면 일은 다 된 것이다. 워낙 확 드러나는 건물이기에 못찾을 일은 절대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7번 출구로 나왔더라면 너무 쉬웠을 것을.....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장사은행이다. 이제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될 것이다.

 

 

나는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 안에는 중국현지인들의 삶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찾았다. 한글 글씨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올랐다. 

 

 

이제 거의 다 온것이다.

 

 

여행 막바지에 감격스런 장면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으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