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혁명가 모택동이 여기에서 살았다? 1

by 깜쌤 2017. 1. 30.


여행 마지막 날이다. 2016년 1월 28일 목요일이다. 내일 29일 첫새벽 0시 10분발 비행기로 귀국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오늘 하루 종일 시간이 있는 셈이다.

 

 

중경과 귀주성, 그리고 광서 장족자치구같은 지역을 23일째 돌아다니는 중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니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소산(韶山 샤오산)에 가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다시피 소산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자인 모택동의 고향마을이다. 어제 호남성 박물관을 놓쳤으니 오늘은 거기라도 꼭 가봐야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카운터에 맡겨두었다. 호텔측에서는 친절하게도 보관증을 발급해주었다. 사람일은 항상 여물게 해두는 것이 옳은 법이다. 매사 불여튼튼이라고 하지 않던가 말이다.

 

 

어제 갔던 백년노포에 가서 국수를 주문했다. 나는 돼지 간이 들어간 저간면을, 같이간 일행은 삼선면을 시켰다. 백년노포답게 맛이 깊다. 양도 많아서 한끼 식사로 정말 든든했다. 이태 전에 소주(蘇州)에서 먹었던 백년노포의 국수가 생각났다.

 

 

장사 기차역 앞으로 시원스레 뻗어있는 5,1대로로 다시 돌아나와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망성파역으로 갔다. 

 

 

망성파 지하철역에 내리니 벌써 9시 55분이 되었다.

 

 

장사화차참에서 망성파역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린다.

 

 

장사서참에 도착하니 규모가 워낙 커서 어디에서 표를 사야할지 모르겠다. 간신히 수표대청(=매표소)을 찾아서 소산행 버스표를 샀다. 표를 구했지만 그 다음에 닥친 문제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민을 눈치챘는지 매표원이 메모지에다가 도C구 좌차(到C區 坐車)라고 써주었다. C구에 가서 차에 타라는 말이리라.

 

 

후차실(=대합실)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C구가 보이지 않았다. 후차구 A와 후차구 B는 있어도 C는 없는 것이다. 제복을 입은 청년에게 물었더니 안내소가 가보란다.

 

 

안내소에 가서 물었더니 건물 바깥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가리키며 직진하라는 것이었다. 그쪽으로 가면 건물 바깥으로 나가버리게 되는데.....  설마 엉터리로 가르켜주랴 싶었지만 믿음을 가지고 화살표 방향으로 나갔더니 설상가상으로 작은 도로를 건너야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C구로 이어지는 통로가 보였다. 가까운 거리를 다니는 버스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니 A,B 후차구는 장거리 차들이 출발하는 곳이고 C구에서는 가까운 근교로 나가는 버스들이 대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님들이 다니는 통로 좌우로 버스들이 가득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내 찾았다. 버스 전면 유리창에 소산이라는 글자가 뚜렸하게 박혀있었다. 알고보니 근교로 가는 매표소도 따로 있었다. 그걸 모르고 장사서참 중앙부에 있는 수표대청에 가서 소산행 버스표를 구했으니 매표원이 우리가 외국인임을 단번에 눈치챘던 것이리라. 

 

 

10시 50분이 되자 소산행 버스는 출발했다. 모택동의 거대한 흉상이 있는 귤자주를 지나 달리기 시작했다.

 

 

소산까지는 고속도로를 통해 달려가는데 약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도로 양쪽으로 시골 풍경이 이어졌다.

 

 

낮으막한 야산이 줄곧 시외버스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런데서 중국 현대사를 뒤흔든 인물이 태어났단 말이지?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가에 흔히 등장하는 무슨무슨 산의 정기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은 모두 헛것인가 보다.

 

 

이윽고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붉은 깃발이 가득한 마을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소산이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로 양쪽은 너무 깨끗했다.

 

 

집들을 보니 삶의 터전들이 제법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시가지가 등장한다.

 

 

특별히 신경써서 관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웅들의 마을 소산'이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보였다.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소산 부근에서 근대사를 뒤흔든 숱한 인물들이 명멸했으니 말이다.

 

 

마침내 소산참에 도착했다. 규모가 그리 크지않은 건물이었다.

 

 

인근 마을과 소도시로 가는 버스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가기에 따라 나갔더니 터미널과 이어진 2층으로 올라가는게 아닌가? 알고보니 결혼식 하객들이었다. 우린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대합실로 찾아들어가니 모택동의 거대한 입상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건물 곳곳에 모택동의 인물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관우가 중국인들에게 이미 신으로 자리잡았듯이 모택동도 서서히 신격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공화정 로마에서 제정 로마로 넘어가던 시절에 숱한 황제들이 신격화되었었다.

 

 

대합실 전광판과 안내판을 살펴보며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두었다.

 

 

번자와 간자를 읽을 줄 알면 중국여행은 너무 쉽다. 소산에서 장사남참까지는 약 80킬로미터, 장사서참까지는 약 90킬로미터란다.

 

 

나는 대합실 밖으로 나갔다. 나라를 사랑하고(애국), 자기 일을 소중히 여기며(경업), 성실과 신의를 가지고 살자는 말이겠지?

 

 

스마트폰을 켜서 모택동고거로 이어지는 길을 찾았다.

 

 

방향만 확인하고 그대로 걸으면 된다.소산 시내는 자그만해서 길찾기는 정말 쉬웠다.

 

 

정갈함 속에는 소산 시민들의 자부심이 배인듯 했다.

 

 

도로 벽면 전체에 모택동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모택동의 필체는 워낙 독특해서 이젠 나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도로 이정표에 '모택동고거'라는 글씨가 뚜렸하게 나타나있었다.

 

 

방문객들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고급 호텔들도 보였다.

 

 

도로는 작은 야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목표지점까지는 한 십리정도 되려나? 우린 천천히 걸어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