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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봉황고성 4 - 사만(沙灣)

by 깜쌤 2016. 10. 28.

 

나는 타강 가에 세워진 작은 정자에 올라가보았다. 나보다 먼저 오른 아가씨가 자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겨울에 만나는 푸른 버들가지와 오봉선......  그런데 푸른 버들을 배경으로 한 마을 지붕에 흰눈이 덮여있다니..... 소수민족촌에서 찾는 강남 정취의 백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족이 만들어낸 강남 정취를 찾으려면 상해나 소주, 항주 부근의 수향(水鄕)을 찾아가자.



타강이 영어의 S자 모양으로 감돌아나가는 곳! 여기를 중국인들은 사만(沙灣)이라고 부른다.



봉황에서 타강은 동남쪽으로 흐른다.



만명탑 앞으로 일편엽주가 떠가고 있었다. 중국다운 풍광이다. 



강변을 장식하고 있는 기와집들은 단층이 아니다. 기본이 3층이길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우리나라 풍광과는 너무 다르다.



하늘로 치솟아 오를듯한 처마곡선의 아름다움도 남다른데 치미 모습이 봉황을 닮았다. 봉황이 잉어를 삼키는 것일까?



나는 지금 동관문 위 다락에 오른 것이다. 봉황도 예전에는 성읍마을이었으니 사방에 성문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동쪽 문 부근에 유스호스텔이 보인다. 강변을 따라 난 골목에 사람들 왕래가 잦았다.



강남의 기와들은 크기가 작다. 우리나라 기와처럼 크지 않으니 그리 무겁지도 않은듯하다.



나는 누각 밑을 살폈다.



아무리봐도 아름다운 곳이다. 이만하면 중원의 백미나 다름없지 않은가?



행상꾼들이 물건을 들고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내 가게없이 떠돌이 행상을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타고난 재산없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왔더니 풍경이 더 확실하게 나타났다. 



작은 봉우리 위에는 너른 터가 나타났다.



나는 봉황고성의 풍광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꾸 아래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때까지도 지붕 위의 눈은 녹지않고 있었다.



만명탑 부근의 마두(=부두)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공터 한편에 사당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부처를 모신듯 했다.



사당부근 나무에는 온갖 글자가 가득했다. 이 정도면 나무 학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으로 더 걸어들어가자 이내 내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올랐으니 내려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인생살이같다.



다 내려오니 재래시장이었다. 온갖 과일들이 가득했다.



채소전과 과일전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조선배추와 생강도 보인다.



붉은 빛이 감도는 감자와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채소가 놓여있기도 했다.



양파인가보다.



난전이지만 깨끗해서 정감이 넘쳐흘렀다.



시장 끝머리에는 놀랍게도 패방이 3개나 늘어서 있었다.



돌로 만든 석패방이다.



패방 부근에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우리가 장가계를 갈 때 사용할 그 버스정류장은 아니다. 



패방이 세개나 늘어선 것을 보면 봉황의 위세가 한때는 되게 등등했던 모양이다.



편액이 걸려야 할 자리에는 돌에 그냥 새긴 봉황이란 글씨가 선명했다. 



패방 부근을 단정하게 정비했더라면 한결 돋보였을 것이다.



산골마을 패방치고는 아름다운 편이다.



패방은 장식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마을을 상징하는 문(門)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나는 타강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가려다가 참았다. 



그쪽보다는 새로난 도로를 택해서 걷기로 했다.



여기에도 공연장이 있는가보다.



나는 음식점을 기웃거리다가 그냥 지나쳤다.



만수궁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걸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