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레이마니에 모스크 바깥에는 건축가의 이름을 딴 카페가 있다. 이름하여 미마르 시난 카페다. 이 부근은 예전에 무료급식소였을 가능성이 높다.
카페에서 음료수를 한잔 마시고 가기로 했다.
이스탄불 대학교가 가까워서 그런지 분위기도 제법 학구적이었다.
6,000원을 주면 근사한 한끼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람들도 고추를 많이 먹는가보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때는 실내보다 실외가 더 편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배치된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늘이 드리워진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즐긴 우리들은 천천히 일어나 다음 행선지를 향해 출발했다.
붉은 고추를 이렇게 매달아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슐레이마니에 외부 공간을 잘 살펴보면 똑같은 건물이 사원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건물들은 신학교와 숙소, 병원, 도서관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원 하나를 둘러싸고 연관된 복합시설을 효율적으로 배치했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이스탄불 대학교로 연결되는 통로를 따라 걸었다.
길가 담벼락 밑에 팔자좋은 고양이들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길냥이 팔자하고는.......
이스탄불 대학교 앞으로 나왔다. 나름대로는 터키의 명문 대학교다.
대학정문도 고풍스럽다.
정문앞 광장을 점령한 것은 비둘기떼들이었다.
그랜드바자르로 이어지는 통로앞을 지나 트램 길을 따라 걸었다.
터키사람들의 무단횡단 버릇도 유명하다. 언제 질서가 잡힐지 모르겠다.
워낙 유적이 많은 도시여서 그런지 어지간한 유적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처지다.
히포드롬 부근까지 왔다. 히포드롬(Hippodrome)은 전차경주나 경마같은 벌어졌던 경기장을 말한다.
혹시 올해 개봉했던 영화 <벤 허>를 보셨던가? 영화속에는 엄청난 전차경주가 등장한다. 그런 경주가 벌어졌던 장소가 히포드롬이라고 보면 된다.
분수대의 물색이 좋았다. 색깔이 좋아보였던 이유는 바닥에 깐 옥색 타일 덕분이다.
정자처럼 보이는 건물은 분수대다. 독일의 빌헬름 황제가 1901년에 오스만 투르크제국에 선물했던 분수대다. 이 분수가 있는 곳이 히포드롬 끝자락이다. 그냥 봐서는 모를 것 같으므로 하늘에서 내려단 본 모습을 소개해보자.
1,2,3번으로 표시된 공간을 살펴보자. 직사각형 모습이 아닌가? 여기가 비잔틴 제국 시절의 히포드롬 흔적이다. 1번 위치에 빌헬름 2세 카이저가 선물한 분수대가 있다. 당연히 2,3번은 오벨리스크가 있는 자리를 표시한 것이다. 지도 오른쪽 제일 구석 위에 아야 소피아가 보인다.
분수대가 참 아름답지 아니한가? 수도시설을 겸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제 히포드롬의 모습이 드러났다. 끝머리에 오벨리스크 2개가 보인다.
확대해서 보면 두 개임이 확실히 드러난다. 히포드롬에서는 전차경주가 열렸다. 전차경주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은 1959년작 <벤 허>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장면을 흉내낸 것이 <스타 워즈> 시리즈에도 등장했다.
히포드롬에는 사람들이 들끓는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말이리라.
나는 앞쪽 오벨리스크에 가보았다.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다. 오벨리스크와 발음이 비슷해서 착각하기 쉬운 아라베스크는 이슬람 예술에 등장하는 기하학적인 무늬를 의미한다.
분홍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원전 1549년부터 기원전 1503년까지 파라오의 자리에 있었던 이집트의 투트모스 3세 시절에 만든 것을 가져온 것이다. 서기 390년에 이집트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이들은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어마어마하고 큰 오벨리스크를 실어온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말이다.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들은 로마인들의 실력을 모르는 분들이다.
서기 37년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가 서기 41년 1월 24일에 암살당해 죽은 황제가 너무나 유명한 칼리굴라다. 그는 오늘날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이 있는 자리에 칼리굴라경기장을 만들었다. 경기장이니까 당연히 당시로서는 키르쿠스가 된다.
과시욕이 강했던 칼리굴라 황제는 전차경기장 한가운데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로마에서 만든 오벨리스크였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집트에서 배에 싣고 왔다. 그때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지금의 베드로 대성당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있다. 로마인들의 실력은 그 정도였다.
오벨리스크 밑바닥 조각을 유심히 살펴보기로 하자. 검투사들의 모습과 황제 일가의 모습이 보인다. 물론 테오도시우스 황제 가족이다. 조금만 신경써서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뒤에는 나선 모양으로 꼬인 구리 기둥이 있다. 그 너머로 다시 오벨리스크가 또 하나 서있다.
이건 또 뭘까? 고대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친 기념으로 기원전 478년에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 세웠던 기념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기 330년경 콘스탄티누스 1세가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이 도시로 옮겨왔다고 한다. 밑으로 보이는 바닥이 1,700여년전의 땅바닥이라고 보면 된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사진내용을 참고로 하기 바란다.
영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면 어쩔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것이 벽돌로 쌓은 신기한 오벨리스크다.
원래는 청동판으로 덧씌운 모양이지만 판은 다 사라지고 흉측하게 내용물만 남았다고나 할까? 판을 덧댄 구멍만 수두룩하게 남았다.
히포드롬을 가득 메웠던 관중들도, 황제와 귀족들도 이젠 다 잊혀진 사람들이 되었다.
다 헛것이다.
명문 귀족들도 다 사라졌다.
나는 허망함을 안고 돌아섰다.
허망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오벨리스크 부근을 맴돌고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아가씨가 나그네의 시선을 끌었지만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다.
여긴 이슬람국가다. 이방인 남자가 무슬림 여성의 얼굴에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몰매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두자.
어느덧 해가 슬슬 기울고 있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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