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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아야 소피아 2

by 깜쌤 2016. 10. 4.

아야소피아는 서기 537년에 지은 건물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약 1500여년 전의 건축물이라는 말이다.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일 아니던가?

 

 

이스탄불을 방문한 사람치고 이 건물을 안보고 돌아간 사람은 거의 없지 싶다. 우리는 외부 정원인 아트리움에서 첫번째 현관 공간으로 들어갔다. 

 

 

현관 안의 공간을 나르텍스(Narthex)라고 부른다. 외(外)나르텍스로 들어가본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깔려있다.

 

 

천정은 검소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런 멋진 건축물을 만드려고 마음먹은 황제는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다. 

 

 

두번째 현관문을 이용하여 내(內) 나르텍스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같지만 천장의 장식이 장관을 이룬다.

 

 

내(內) 나르텍스의 천장을 살펴본다. 

 

 

내 나르텍스의 북쪽 끝에서 이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이층은 나중에 올라가보기로 하고 일단 아래층 메인홀부터 봐두어야 했다.

 

 

중앙의 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전면 천장 중간쯤 기둥에 둥근 판(=메달리온)이 달려있는데 그 속에는 아랍글자가 새겨져있다. 

 

 

거대한 돔과 전면 기둥 위 반원형 공간 속에 자리잡은 성화(聖畵)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1500여년전에 이렇게 장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면 이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워낙 장대한 건물이어서 그런지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 굉장한 규모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을 대리석 바닥이 다 감당하고 있었다. 

 

 

원래의 내부 모습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동방정교회의 예배당으로 건축되었지만 지금부터 약 600여넌전에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군대가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정복에 성공하면서부터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도시 이름도 이때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937년부터 현재까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왔다.

 

 

서기 2013년, 터키 정부의 아른츠 부총리가 모스크로 사용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는 사용 목적이 달라질 때마다 내부 개조를 하기도 했다. 물론 한번씩 대청소를 하기도 했다. 사진속의 사다리는 19세기에 보수작업을 할 때 사용되었던 것이다. 

 

 

예배당에서 모스크로 바뀐 이 건물의 운명이 기구하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이슬람의 알라나 기독교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나 모두 똑같은 한분이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뭘 모르는 무식의 소치에서 나온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코란과 성경을 읽고 비교해보면 절대로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성당 내부는 덧대고 개칠하고 보수해서 원래의 내부 모습에서 제법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냥 슬쩍 보면 아무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천장의 아랍글자를 보자. 하기아 소피아를 처음 지었을 때부터 저런 글자가 새겨졌을 것 같은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금박으로 새긴 아랍어 현판도 처음부터 있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아랍어 현판은 19세기에 제작하여 달아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고보면 아야 소피아는 기구한 운명을 겪은 건축물이다. 그 슬픈 운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멤메르라는 이름을 가진 설교단을 내부에 설치했다. 

 

 

내부 구조를 변화시킨 것에는 그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메카를 향한 기도 장소를 표시하는 미흐라브도 당연히 설치했다. 

 

 

옴팔로스 뒤편의 장식도서관도 거기에 해당한다. 그게 승자의 권리였다.

 

 

반원형 애프스에 그려진 모자이크화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묘사한 것이다.

 

 

바로 이 그림이다.

 

 

그 옆에 달린 현판(=메달리온)의 아랍글자는 알라 신과 예언자 마호메트, 초기 칼리프였던 알리와 아부 바크르의 이름들을 나타낸다. 

 

 

크리스찬의 입장에서 보면 참람함의 극치이지만 이슬람 입장에서 보면 승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중앙 돔 밑에는 색깔이 있는 대리석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옴팔리온(=옴팔로스)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들 대관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친절하게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동로마제국 천년 영화는 허망하게 사라진지 오래다.

 

 

중앙돔의 높이는 지상에서부터 56미터 위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황금 모자이크로 되어 있었지만 1847부터 3년동안 수리할 때 현재의 모습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쪽 옆 날개 달린 존재는 미카엘과 가브리엘 같은 대천사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찬의 입장에서 자세히 알고 쳐다보면 한없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슬픈 사연들이 가득한 건물이다. 무슬림의 입장에서 보면 승자의 기쁨으로 우쭐해지기 마련일 것이다.   

 

 

이것 저것 다 무시하고 그냥 보면 그저 즐거울 수밖에 없고.....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건물 안은 인산인해다.

 

 

이제 돌아나가서 이층으로 올라갈 차례다.

 

 

나는 대리석 항아리에 눈길만 한번 던져주고 걸어나갔다. 

 

 

아랫부분에 수도꼭지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갈 차례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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