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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샤프란볼루 할머니의 추억

by 깜쌤 2016. 9. 29.

 

골목에도 햇살이 마구 밀려들기 시작했다. 

 

 

샤프란볼루의 차르시 구역은 정겨움이 가득하다. 난 그런 정겨움을 가득 안고 호텔로 돌아왔다.

 

 

마침내 식사시간이 되었다. 1층 식당으로 들어갔다.

 

 

호텔 식당이라고해도 워낙 고풍스러우니 호락호락한 분위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무거운 분위기만 가득한 것도 아니다.

 

 

식당 공간 속에는 격조와 품격이 사방에 배여버린 그런 묘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주방용 그릇들과 기기가 가득한 나무 탁자위에 식탁보를 깔고 준비한 음식이 단정하게 놓여있었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는 듯하다. 그러니 호텔 전체를 오롯이 전세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림새로 보아서는 다른 손님도 제법 있는듯 하지만 눈에 띄질 않았다.

 

 

접시에 음식을 담기 전에 나는 이 집에 스며든 역사의 향기를 맡고자 노력했다. 

 

 

한쪽 벽면을 장식한 옛날 그릇속에 역사의 정취와 발자욱이 녹아든 듯 하다. 물담배 파이프와 놋그릇들이 시선을 끌었다.

 

 

음식들이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오이와 토마토와 치즈, 버터 이런 것들은 기본이다.

 

 

하나같이 단정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첫 스푼을 들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커피도 미리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고급 호텔 부럽지 않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바깥으로 나갔다. 이런 멋진 곳에서의 식사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나는 올리브 열매 절임과 빵만 있어도 한끼 식사는 거뜬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침부터 거하게 먹게 되었다.

 

 

고추도 있으니 한국인의 입맛에는 정말 딱이다. 식사후에 주인 할머니로부터 이 집에 얽혀든 이야기를 들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통치하던 시절에 이 집이 건축되었다는데 집주인은 오스만 투르크시대에 재상의 자리에 앉아있던 양반이었단다.

 

나중에 술탄에게 밉보여 이집트로 추방을 당한 뒤에는 어떤 영주가 이 집을 물려받아 자손 대대로 전해졌단다. 이 집의 반은 할머니가 사서 호텔로 쓰고 있고 반은 영주의 후손이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호텔 운영같은 이런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즐거움을 가지고 일하지만 정작 대를 이어나갈 아들은 관심이 없어서 그게 안타깝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약간 통통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졌는데 영어 실력이 대단히 유창했다. 무엇보다 기품과 교양이 있어서 좋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나는 다시 한번 환전을 하기 위해 은행을 찾아갔다.

 

 

400달러를 1달러당 2.874 터키리라의 비율로 환전을 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드는 놀이터에도 햇살이 가득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옛날에 묵었던 펜션에 찾아가보았다.

 

 

이 골목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골목은 빠르게 변신중이었다.

 

 

수리중인 집들이 제법 많았다.

 

 

골목 모습이 눈에 익었다.

 

 

 나는 골목을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보았다.

 

 

그랬다. 바로 저 집이다. 골목 끝집!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분명히 저 집인데.....

 

 

대문 위에 붙어있던 작은 간판은 떨어져나갔고 대문 앞에는 깨어진 붉은 기왓장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조차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이 지경이라면 사람이 살고 있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나는 2008년에 찍어둔 사진들을 뒤져보았다.

 

 

 

그땐 이런 간판이 대문 위에 붙어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대문 옆에 앉아서 인자한 미소를 날려주셨었다.

 

 

너무 나이가 드셔서 자식들을 따라 멀리 다른 도시로 이사 가셨을까? 아니면 돌아가셨을까?

 

 

우리가 이스탄불로 떠나던 날 할머니는 전통복장을 하고 대문간에서 작별 인사를 해주셨다. 그게 벌써 7년 전의 일이 되었다.

 

 

나는 옛날 추억에서 깨어났다. 골목에는 허전함과 쓸쓸함만 가득 묻어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전에도 뵌듯 하다. 영어가 안되니 할머니 소식을 물어보지도 못했다.

 

 

할아버지와도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골목 입구 집 앞에 핀 분꽃을 뒤져 까맣게 잘 익은 씨앗을 몇 개를 채취해서 주머니에 넣었다.

 

 

할머니의 흔적은 골목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인생길이 그런 식으로 이어지고 흘러가는 모양이다.

 

 

"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 )" 나는 골목에서 백일홍 씨앗도 조금 챙겨두었다.

 

 

10시에 호텔을 나와 마을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오토가르로 갔다.

 

 

오토가르(버스터미널)는 카라뷕으로 이어지는 4차선 대로변에 있다.

 

 

우리는 사프란회사의 세르비스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세르비스 버스를 타고 카라뷕으로 갈 것이다.

 

 

오토가르에서 10시 반에 떠나는 세르비스 버스를 타고 카라뷕으로 가서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이스탄불행 버스를 탔다.

 

 

배낭은 짐칸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행선지인 이스탄불로 향하는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