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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예쁜 마을 샤프란볼루 4

by 깜쌤 2016. 9. 26.

 

전망대 입장은 공짜가 아니다. 1리라다. 터키 돈이 없어서 1달러를 내었더니 두사람 입장료를 제하고 잔돈을 내어주었다.

 

 

터키 리라가 없었기에 만병통치약과 같은 성능(?)을 지녔다는 샤프란차는 결국 못마시고 말았다. 아깝다. 

 

 

건너편 언덕에 아까 우리들이 들어갔던 생활사 박물관이 보였다.

 

 

사진을 자세히 보기로 하자. 누가 봐도 이 마을은 골짜기와 산비탈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돈많은 현지주민들은 여름철에는 조금 더 시원하게 여겨지는 산비탈에 가서 살다가 겨울에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골짜기에 내려와서 살았단다. 여름 거주지와 겨울 거주지의 차이는 골짜기의 유무외에도 해발차이에서 오는 기온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여름거주와 겨울거주지 사이의 높이 차이는 약 350미터정도라고 한다.

 

 

골짜기에 자리잡은 곳이 차르시 구역이다. 여름 거주 구역은 바을라르 정도로 발음한다. 샤프란볼루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차르시 구역을 봐야한다. 바을라르까지 올라가서 살펴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되겠다.  

 

 

어느 정도 살폈으니 이젠 내려가보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환전도 해야했다.

 

 

아까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길이 절벽 사이에 숨어있다.

 

 

곳곳에 참한 호텔이 박혀있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모스크 옆을 지났다.

 

 

은행에 가기 위해서는 마을 골목을 거쳐야했다.

 

 

골목에는 그때까지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환전을 위해 은행에 들렀지만 벌써 문을 닫은 뒤였다.

 

 

영업시간을 확인해두고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대장간을 겸한 함석집 옆을 지나면서 벽에 걸린 물건들을 슬며시 살펴보았다. 옛날 생각이 났다.

 

 

문자연락이 왔다. 나머지 일행 두분은 벌써 호텔에 도착해 있다는 것이었다. 해외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문자연락을 주고 받아도 그리 비싸지 않다.

 

 

일행을 놓치거나 헤어질 경우 문자로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도 괜찮다.

 

 

호텔에 도착했더니 오후 6시가 되었다. 다른 두 분이 빵과 과일을 사오셨기에 통닭파티를 시작하기로 했다. 

 

 

 구수한 빵에다가 오이, 바나나와 청포도, 그리고 무화과!

 

 

오늘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 우리들은 남자 넷이서 통닭 세마리를 해치우지 못했다.

 

 

저녁도 일찍 거하게 먹었으니 쉬는게 최고다. 내일은 이스탄불까지 가야하니 쉬어주어야한다.

 

 

더블 침대였기에 동행인 한분은 침대에 주무시게 하고 나는 소파에서 자기로 했다.

 

 

내 배낭의 짐은 아주 간단하다.

 

 

여름여행이나 겨울여행이나 오리털 소형 침낭은 반드시 가지고 다녔다.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벌써 가을 냄새가 스며들고 있었다. 내일이면 8월 마지막 날이다.

 

 

이렇게 마구 떠돌아다니는 버릇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나는 해외로 막 싸돌아다니는 것이 너무 즐겁다.

 

 

아침에 눈을 떴더니 새소리가 정겨웠다.

 

 

가만 누워서 시간을 보내기가 너무 아까워서 동네구경을 가보기로 했다. 

 

 

일단 박물관쪽으로 눈길을 한번 던져주었다. 햇살을 받은 노란색 건물이 산뜻하게 보였다.

 

 

어제 먹다가 남긴 무화가 하나를 집어들고 새로 맛을 보았다.

 

 

마당으로 내려갔다. 오늘 아침은 호텔에서 주니까 밥걱정은 안해도 된다.

 

 

다른 골목에 가보았더니 옛날 건물들이 제법 보였다. 서민들의 주거지였던가보다.

 

 

아직 관광객들이 점령하기 전의 시각인지라 동네의 원래 분위기가 오롯하게 묻어났다. 

 

 

이 동네엔 2008년에도 한번 왔었다. 그때 묵었던 민박집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작은 민박집이었는데 오늘 아무리 찾아봐도 당최 눈에 뜨이질 않았다.

 

 

 돌로 포장한 길에 작은 삼발이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포도넝쿨 우거진 골목길 한구석에 차를 대더니 장애인 한분이 힘겹게 내렸다.

 

 

그는 목발을 짚고 골목길을 걸어갔다.

 

 

 나는 이 골목 자체의 정결함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골목 한구석에 분꽃이 피어있었다. 돌로 골목을 포장했다는 사실을 빼면 우리네 시골 풍경과 무엇이 다르랴?  

 

 

이제 서너 시간만 지나면 관광객들이 골목을 가득 메울 것이다.

 

 

은행으로 가는 골목에는 독특한 표지판이 서있었다.

 

 

여긴 아직까지 유선 방송이 활개를 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위성방송 수신용 둥근 접시 안테나가 군데군데 매달려있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는 마을 중심에 언제나 모스크가 있다.

 

 

모스크를 둘러싸고 목조로 된 가게들이 진을 쳤다.

 

 

샤프란볼루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후지필름 광고판을 보는 것이 얼나마 오랫만이던가?

 

 

이 가게자리였으리라. 저번에 왔을때 이 자리에서 식사를 한것 같다. 그런데 업종변화가 이루어진 것일까? 7년전의 사진을 꺼내 확인해보았더니 그때도 로쿰집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식사를 했던 에스라카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로쿰! 잠시 두산백과의 자료를 인용해보기로 하자.

 

영어명은 '터키쉬딜라이트(Turkish delight)'이다. 설탕에 장미수나 레몬즙을 넣고 전분과 견과류를 넣어 만든다. 기호에 따라 호두·피스타치오·코코넛·아몬드·헤이즐넛 등의 견과류를 넣기도 한다. 식감은 사탕과 캐러멜의 중간으로 쫄깃하며 젤리와 유사하다. 젤라틴을 사용하여 식감을 만드는 젤리와 달리 로쿰은 전분과 설탕으로 쫄깃한 식감을 낸다.

1776년 이스탄불에 사탕가게를 차린 알리 무힛딘 하즈 베키르(Ali Muhiddin Hacı Bekir)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19세기에 서유럽까지 전파되었으며, 1950년 영국 소설가 클라이브 루이스의 저서《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에서 '유혹의 과자'로 등장한다. 오늘날 베키르의 5대 자손이 이스탄불에서 과자점을 운영하며,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로쿰 [Lokum] (두산백과), 네이버

 

 

 

어떤 한국인이 우리말로 선전문안을 만들어준 모양이다. 

 

 

여기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한들 오늘 우리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가지기로 되어 있다. 

 

 

빵집은 그대로 있는듯 하다. 사진자료를 비교해보았더니 이름은 그대로였다.

 

 

부지런한 장사치들은 이른 아침부터 하루 준비를 하는 법이다.

 

 

게으른 자는 늦게 부산을 떠는 법이고.....

 

 

모두들 자기 가게 앞을 청소하고 있었다.

 

 

모스크앞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아침부터 소리를 올려 마구 떠들고 있었다. 교양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고 난 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설쳐댔었다. 갑자기 내 낯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