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건너편 마을 뒤로 케이블 카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굳이 여기까지 삭도를 건설해야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걸어다니며 보는 이 자체로도 너무 좋은 방법인데 삭도를 건설해서 더 빨리 보고 가자는 식이라면 이는 접근방식의 문제다.
층층을 이룬 다랑논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아열대지방이어서 그런지 대나무숲도 나타났다.
약간은 조잡스럽지만 깊은 산골이니 이해해주기로 하자.
위에 올라서니 아래로 펼쳐지는 풍광은 장관이다.
이제 눈에 익어버린 풍경이기에 그게 그것인 것 같지만 세밀히 보면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눈물어린 투쟁의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농사일을 해보았다. 그러기에 노동의 수고로움을 절실히 느껴보았던 사람이다.
이 높이까지 거름을 지고 나르는 것만 해도 중노동이다.
안내도를 살펴보았다.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기에....
나는 산비탈로 난 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 산비탈을 한바퀴 돌아야했다.
수확한 농산물을 가지고 내려가는 것도 중노동이다.
먼데 산이 겹겹이 둘러싼 곳! 대채는 그런 곳에 숨어있는 마을이다.
이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소수민족들이다.
생김새는 한족이지만 한족이 아니다. 개 한마리가 아까부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산꼭대기 부근에서 크게 닦아놓은 농로를 발견했다.
비가 왔기에 뻘밭으로 변해버린 길이었다.
이런 식의 길이 산꼭대기로 나있는 줄은 몰랐다. 여기 사람들도 문명의 혜택을 입어야하는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실망스러웠다.
흔적으로 보아 자동차들이 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골짜기 길로 들어섰다.
산비탈을 한바퀴 돌아 골짜기로 향했다.
제법 많은 집들이 장사하는 집으로 변해있었다.
걸어내려가다가 이상한(?) 집을 한채 발견했다.
간판과 깃발이 이상했던 것이다.
마당으로 들어섰다.
알고보니 유스호스텔이었다.
대채, 따자이 마을에 유스호스텔이 있는 줄은 미쳐 몰랐다.
유스 호스텔이라면 당연히 외국 아이들이 출입할 것이다. 내 예측은 적중했다. 리셉션의 아가씨는 영어가 통했고 백인 아가씨들이 짐을 들고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인이 몸속으로 스며들자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따뜻한 커피가 이렇게도 좋은 것이라는 것을 미쳐 몰랐다.
한 삼십분을 느긋하게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유스호스텔을 산비탈에 남겨두고 말이다. 빗방울이 슬슬 떨어졌다.
골짜기로 내려서자 풍우교가 나타났다.
대채로 가는 분들이 있다면 전두채 마을을 기억해둘 일이다.
거길 가면 유스호스텔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시라.
알아두어서 손해볼 일은 전혀 없다.
찾아가는 동안에는 길가의 집들을 보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버스정류장에서는 한 삼십분정도 걸어야 할 것이다.
골목길이 복잡한 것 같아도 크게 어렵지는 않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해가 졌기 때문이다.
산골에서는 해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어둠이 몰려온다.
마을 뒷산을 완전히 한바퀴 돈 셈이다.
우리가 묵고있는 금해양 호텔(?)로 가는 길은 공사중이었다.
밑에서 두번째 판자에 전두채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제 다시 산비탈 길을 걸어올라야했다.
우리는 건너편에 보이는 마을 사이를 통과해 왔던 것이다.
이제 거의 다온듯 하다.
아까 벽돌을 나르던 말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서자 주인 할머니가 화롯불을 가지고 와서 불이라도 좀 쬐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화롯불로 온기를 살짝 맛본 우리들은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밤은 추울 것이다.
아까 마을에서 사온 컵라면과 감자칩으로 저녁을 대신하기로 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이 밤을 어떻게 보낼것인지 하는 걱정때문에 살짝 불안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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