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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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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다랑논 동네 대채를 찾아가다 3

by 깜쌤 2016. 9. 2.

 

같이 오신 일행 한 분은 그날 너무 힘들었다고 나중에 말씀하셨다.

 

 

배낭을 메고 산길을 한참이나 오른 후에야 할머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할머니 집은 새로 지은 집이었다. 수리를 대대적으로 했다고 보는 편이 옳은 표현이리라. 산비탈에 자리잡은 작은 동네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차장에서부터는 걸어서 한 십오분 정도 족히 걸릴 것이다. 

 

 

곧바로 숙박요금 교섭에 들어갔다. 그들은 일박에 100원을 불렀다. 100원이라면 적은 금액이 아니다. 깊은 산골에 들어박혀 살고 있으니 도시 물가와 수준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할머니와 앳된 모습을 간직한 며느리는 내가 80원으로 깎아서 부르자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리에게 제공한 방은 그집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것 같았다. 계곡쪽으로 자리잡은 방이어서 경치 감상에는 그저 그만이었지만 온풍기도 보이지 않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밤에는 더 춥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어찌어찌 알아듣고 이불을 한채 더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들의 진지한 표정이 애처로워서 결국 묵기로 했다. 하루에 80원으로 하되 대신 이틀을 머무르기로 했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점심을 주문했다. 

 

 

 삼선탕과.....

 

 

밥!

 

 

그리고 요리하나....  나는 목이육편을 시켰는데 정작 나온 것은 토두육편같았다.

 

 

중국배낭여행은 이번 열번째다. 그러니 이제 어지간한 것은 대강 눈치로 다 때려잡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요리를 먹고 있는지도 거의 다 짐작하는 것이다.

 

 

진하이양(金海洋) 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묵은 방은 3층 제일 왼쪽 방이다. 골목에 나가서 보니 바로 보였다. 

 

 

 민생고도 해결했으니 이젠 동네 구경에 나설 차례다.

 

 

아까 밑에서부터 걸어왔으니 위쪽으로 걸어서 동네 높은 곳에 올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좁은 골목길 저편에 누가 말을 몰고 오고 있었다.

 

 

젊은 새댁이었다. 말허리 양편에 벽돌을 매달아 옮기고 있었다. 경운기조차 올라가기 힘든 곳이니 말들이 힘든 노동을 감당하고 있는듯 하다.

 

 

2호 경관대가 부근에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안내판이 가르쳐주는 방향대로 걸어보았다.

 

 

깊고 험한 산골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어지간한 집은 기본이 삼층이다. 

 

 

돈맛을 깨달은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남아도는 방은 거의 다 관광객들에게 빌려주고 돈을 받는다. 有房(유방)! '방있습니다'라는 말이다.

 

 

우리가 묵게된 김해양은 호텔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중국식으로 하면 그런 정도는 주점(=호텔)이라기 보다는 객잔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산골동네 모든 사람들이 민가를 객잔 정도 등급으로 수리하고 있는듯 했다.

 

 

돈맛을 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자본주의 광풍이 밀려들면 제일 먼저 인간성이 사라진다.

 

 

넉넉한 인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돈에 환장한 충혈된 붉은 눈동자부터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이 싫다. 나는 돈을 알고 살테니 너희들은 영원히 돈의 위력과 힘을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심보가 아니다.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알고 그것의 노예가 되기 보다는, 돈은 생활의 방편으로 삼고 넉넉한 인심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나는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나그네를 위한 작은 쉼터가 눈에 들어왔다.

 

 

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도 넓적한 마름돌로 포장을 했다.

 

 

그게 대채의 매력이다. 산골 주민들의 넉넉한 심성의 표현이다.

 

 

믿어질지 모르겠지만 여기 산골은 거의 다 돌로 포장된 산길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시골길과 다른 점이 그것이다.

 

 

돌로 포장을 해두었으니 걷기가 한없이 편하다. 특히 궂은 날에는 확실히 위력을 발휘한다. 

 

 

이 깊은 산속에서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다. 식량확보!

 

 

생존하려면 농토를 확보하는게 최우선이었다.

 

 

여긴 고지다. 사방이 산이다. 그래서 이들이 고안해낸 방법은 바로 다랑이 논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산비탈을 깎아내어 논을 만들고 벼를 심었다.

 

 

 아열대에 자리한 고산지대이기에 비는 풍부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에 저수지가 없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내 논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조금 터주어 아래 논으로 물이 흐르게 했다. 

 

 

생존하려면 서로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2호 휴식참까지 왔다.

 

 

산비탈에 간단하게 만든 정자라고나 해야할까?

 

 

이름이 좋다. 서늘할 량자를 써서 양정(凉亭)이라고 이름지었다. 영어식 표현이 더 멋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대채 마을의 풍경은 단연 압권이다.

 

 

나는 2호 휴식참을 떠나 다시 위로 걸어올라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