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턱으로 난 길을 걸었다. 길은 모두 넓적한 청석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비가 와도 질척거리지 않는다.
급하게 경사진 산비탈을 따라 폭이 좁은 논이 옆으로 누운채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가만히 보면 산 정상 부분은 숲으로 남겨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게 여러 모로 유용할지도 모른다.
겨울철인데다가 날씨마저 궂으니 우리 말고는 걷는 사람이 없다. 여름이라면 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좀 있었을까?
산허리를 감아도는 산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곳곳에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삭아내리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도 이젠 옛날처럼 농사일에만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깊은 산골에 사는 소수민족들에게도 자본주의의 폐해가 물밀듯 밀어닥쳤을 것이다.
사람이 돈맛을 알게되면 농사일에 흥미를 잃게 마련이다.
돈은 장사치를 따라다니지 농사꾼에게 붙어다니는게 아니다.
비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도움을 주고 받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한참을 걷고 나서 위쪽을 보았더니 어떤 여자 한사람이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것처럼 마중하듯 서있는게 아닌가? 인적없는 싶은 산속에서 혼자 서있는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그녀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한자를 써서 필담을 잠시 나누었는데 알고보니 부근 마을에 사는 여자같았다. 자기집이 농가음식을 잘하는데 먹고가지 않겠는냐고 의사를 타진해왔다. 알고보니 그녀는 식사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제의를 부드럽게 거절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살짝 실망했을 그녀가 우리 앞에 저만치 앞장 서서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서 조금 내려가자 마을이 나타났다.
그녀는 제 갈 길을 가고 우리도 우리 갈 길을 갔다.
이제 어렴풋이 기억이 되살아났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마을이 중육(中六)일 것이다. 바이두지도를 보고 검색을 해도 정확하지가 않으니 그것도 문제다.
험한 산비탈에 몇채의 집들이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깊은 산중에 있어도 기본은 다 삼층집이다. 이 경우 1층은 가축을 기르거나 창고 용도로 쓰고 2층은 식당같은 기본생활 공간이며 3층은 침실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마을로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베어놓은 나무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집을 짓기 위해서 모아둔 것이리라.
중육마을을 지나 계속 걸었다.
외따로 떨어져있는 집옆을 지나갔다.
계곡 여기저기에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현대문명의 문제점이 드디어 여기까지 쳐들어왔구나싶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옛길 밑으로 새로 닦아놓은 길이 보였다. 아마 저 길로 자동차와 트랙터, 그리고 경운기가 탈탈거리며 다닐 것이다.
변화의 엄청난 물결이 여기까지 밀려든 것이다.
중육마을을 지나자 다시 산길이 이어졌다.
곧이어 또다른 마을이 나타났다. 아마 종루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일 것이다.
이 마을도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다. 안개가 자욱해서 사방을 살피기가 어려웠다.
나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해야만했다.
마을길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안개속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새로 생긴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데다가 새길 때문에 옛길이 군데군데 끊어져있었기에 길찾기가 어려워졌다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돌아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평안마을까지 가는 것은 도저히 어려울 것 같았다. 점심이나 먹고가자 싶어서 골목길로 들어가보았다. 어딘가 눈에 익은 길이었다. 예전에 한번 가보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 느낌이 맞았다. 골목길 안에는 구멍가게가 있었고 작은 화롯불을 둘러싸고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서 수를 놓고 있었다.
목재로 된 건물이었기에 난방용으로는 화로가 가장 멋진 수단이었을 것이다.
아낙네들은 보얀 천에 색실로 수를 놓고 있었다. 전통복장의 어깨를 장식하는데 쓰는 물건이라며 어깨를 가리켰다.
사람마다 놓은 무늬가 달랐다.
어떤 아낙은 얼굴이 참 앳되기만 했다.
마루 한쪽은 가게겸 음식점이다.
나는 국수를 먹기로 했다.
우동면발처럼 굵은 면발에다가 양념을 끼얹고 그 위에 볶은 콩을 얹어주었다. 실제로 먹어보면 한없이 고소하고 맛있다.
국수를 먹고나자 원기가 솟았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후 다시 골목으로 나섰다.
이젠 돌아갈 차례다. 나는 왔던 길을 되밟아가기로 했다.
종루에서 중육마을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었다.
뿌연 비안개가 가득한 산길을 아줌마 한분이 통나무를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부슬부슬 겨울비가 뿌리는 가운데 통나무를 메고 산길을 걸어야하는 그녀의 삶도 제법 맵고 시었으리라.
비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길을 잃을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이 산중에서 삶을 끝낸이의 무덤이 길가 한모퉁이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아낙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짠해짐을 느꼈다.
한참을 걸어 전두채 마을까지 올 수 있었다. 커피가게가 보였다.
으슬으슬한 날씨 속에서 추위를 느꼈기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지만 아쉽게도 가게 문이 닫혀있었다.
결국 유스호스텔까지 걸어와서야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확실히 아는 길이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대채마을 중심부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금해양호텔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시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많이 지쳤다.
주인 할머니가 화롯불을 쬐게 해주었다. 살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방에 올라가기로 했다.
밥과.....
요리 두가지로 허기를 속였다. 비로소 살것 같았다. 비안개 속을 참 많이도 걸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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