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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앙카라의 옛 성채 2

by 깜쌤 2016. 7. 15.

 

아우구스투스! 그는 로마제국 최초의 황제 역할을 한 사람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존엄한 자'라는 뜻이다. 성경에도 등장하는데 '아구스도'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그가 로마제국을 통치했었다. 8월을 의미하는 August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는 오늘날의 앙카라 부근지역을 점령한 뒤 핵심 마을에다가 앙키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우리가 걸어다니고 있는 이 언덕에다가 성채를 만든 사람은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미카엘 2세다. 그게 9세기 때의 일이라고 전해온다.

 

 

성안에는 많은 집들이 있었다. 옛날에 지은 전통가옥들이었겠지만 사진에서 보아온 것처럼 상당히 많은 주택들이 개조되었다. 우리는 마침내 동쪽 탑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냈다.

 

 

높은 곳에 올라가보면 앙카라의 전모가 드러나리라.

 

 

성벽밑에 숨어있는 분수대를 찾았다. 요새가 존재하려면 반드시 샘이 있어야 한다. 요즘이야 수도관을 묻어 수원지에서부터 물을 끌어오면 되지만 옛날에는 식수원을 찾아 마실 물을 확보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로마제국의 수도(首都)였던 로마에는 많은 물길이 확보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수도(水道)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이탈리아 로마에 가보면 옛날 수도의 흔적들을 제법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분수대에서는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로마시대 사람들은 물이 흘러 넘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요즘은 수도요금을 아끼느라고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 대세이지만 말이다. 

 

 

나는 분수 근처에서 끼가 넘치는 아이를 발견했다. 전형적인 개구장이같은 표정을 지닌 소년은 작은 북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바로 이 아이다. 두손으로 북을 두드리고 치고 놀리는 솜씨와 목청이 일품이었다. 

 

 

소년은 부끄러움이 없었다. 온몸에서는 끼가 넘쳐흘렀다. 그동안 살면서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다루어 보았으므로 아이가 행동하는 것을 어느 정도만 살펴보면 직감이 온다. 

 

 

소년이 가버리고나자 그 자리에는 소년이 불렀던 노래의 여운만이 맴도는 듯 했다.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주절거림이었다.

 

 

나는 곧바로 성벽 모퉁이에 만들어놓은 감시탑으로 향하지 않고 아직 보수하지 않은 전통가옥들을 살펴보았다.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건물일 것이다.

 

 

골목안쪽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가보았더니 키낮은 돌문이 나타났다.

 

 

꼬마 소녀가 그늘진 골목을 걸어 방금 내가 지나온 돌문을 향하고 있었다.

 

 

골목 안에는 카페가 숨어있었다.

 

 

육중한 돌로 만든 성벽이 세월이 만들어낸 무게감을 안고 턱 버티고 있었다. 앙카라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길은 적군으로 하여금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신구의 대비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이제 전망대를 겸한 감시탑으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탑으로 올라가는 길 한쪽 벽에는 주민들이 만든 가방들하며.....

 

 

생활소품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성벽을 개보수한 것 같다.

 

 

주민들이 물건들을 늘어놓고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레스토랑들도 보였다.

 

 

저 문을 통과하면 성벽으로 올라 갈 수 있으리라.

 

 

하루에 어느 정도를 파는 것일까?

 

 

돌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자 한때는 군인들의 집합소였을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가지가지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을 그늘에 진을 쳤다.

 

 

성벽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걷기도 했다.

 

 

나는 장사치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얼굴마다 삶의 노곤함이 묻어있는듯 했다.

 

 

나도 성벽에 올랐다. 시야가 탁 터지면서 앙카라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북쪽에 또다른 감시탑이 나타났다. 아크 칼레다. 하얀 요새라는 의미라고 한다.

 

 

앙카라는 고원지대에 자리잡은 도시다. 물결치는듯한 언덕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에 도시가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만큼 여기서는 푸르름을 찾기가 아려웠다.

 

 

대부분의 주택들은 붉은 기와를 지붕에 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도시가 붉게 보인다. 앙카라는 붉은 도시였다.

 

 

옛날 사람들도 여기가 요새터로 적합하다는 사실을 재빨리 눈치챘으리라.

 

 

성채를 둘라싸고 온 사방이 모두 집이었다.

 

 

성벽 위의 길은 그리 넓지 않다. 그러니 조심해야한다.

 

 

저 천막 파빌리언은 무슨 용도일까? 어찌보면 찻집같기도 하다.

 

 

아파트들도 제법 들어서는듯 하다. 그런데 아파트 지붕도 거의가 다 붉은색이었다.

 

 

나는 건너편의 아크 칼레에 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요새위에는 터키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남녀가 성벽위에 조용히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성채 그늘이 마을 위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일까?

 

 

성채밑 가정집에서는 정겨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낙서가 보였다.

 

 

벽에 붙어선 인간 군상들......

 

 

광장에서는 일가족이 공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빠 엄마와의 나들이 시간만큼 행복했던 순간들이 또 있었을까? 나에게는 그런 추억이 너무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듯 다가온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