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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앙카라의 옛 성채 1

by 깜쌤 2016. 7. 12.

 

행선지를 두고 카파도키아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파묵칼레 쪽으로 해서 에베소를 본 뒤 이스탄불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앙카라를 거쳐 이스탄불로 갈 것인지를 두고 생각을 많이 했었다. 

 

 

결국 우리는 앙카라행을 택했다. 터키 서부의 많은 고적지들은 다음 기회에 살피면 될 것이다.

 

 

오후 3시 20분경에 앙카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 터미널은 공항을 본뜬 설계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타고왔던 네브세히르 회사의 대형버스다. 터키의 대형버스들은 정말로 안락해서 어찌보면 기차보다 빠르고 편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1번지점으로 표시한 앙카라 오토가르에 도착했다. 목표는 구(舊) 앙카라지역이다. 이 지도에서는 4번과 5번 부근이라고 보면 된다.

 

2번 - 케말 파샤 영묘

3번 - 앙카라 기차역

4번 - 아나톨리아 박물관

5번 - 동로마제국시대의 유적이 있는 성터

 

구앙카라(=올드 앙카라)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배낭을 찾아서 메고 오토가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앙카라 오토가르의 시설은 굉장한 규모다. 앙카라는 인구 5백만을 조금 못미치는 거대도시다. 터키의 수도이니만큼 여러 가지 시설이 잘 갖추어진 도시다. 어떤 이들은 터키의 수도를 이스탄불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순전히 착각이다.

 

 

오토가르와 지하철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초심자도 안내판만 잘 보고 따라가면 찾을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겁낼 필요가 없다.

 

 

자동발매기에서 지하철 표를 샀다. 1회권이 3리라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친다면 1300원 정도 되려나? 우리들의 목표는 올드 앙카라의 울루스 정거장이다. 그 부근까지만 가면 해결이 날 것이다. 노선도를 보았더니 중간에 키즐라이에서 갈아타도록 되어 있었다.

 

 

키즐라이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울루스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부근에는 거대한 공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두사람을 지하철 역부근에 남겨두고 호텔을 구하러 갔다. 울루스 지역은 개발이 덜 된 낙후지역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울루스가 올드 앙카라의 많은 흔적을 품고 있는 지역이기에 반드시 가볼 필요가 있다.

 

 

도로 옆의 공원이 겐츨리크 공원이다.

 

 

큰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조금 더 걸어나갔다.

 

 

호텔을 찾아가면서도 볼 것은 다보고 간다. 이동 빵장수가 빵을 팔고 있었다.

 

 

그는 차곡차곡 정리한 빵을 머리 위에 이고 받침대를 들고 다녔다.

 

 

사거리 부근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아마 버스 종점겸 출발지일 것이다. 그 부근에 중저가 호텔들이 밀집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하철이 가까운 곳에서 호텔을 구하려고 했다.

 

 

2성급인 귈레뤼즈 호텔에 들어가서 방을 구했다. 트윈베드룸이 아침식사 포함하여 100리라다. 악마의 눈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자르본주가 계단 바닥에 박혀있었다. 나쁜 액운을 물리쳐준다는 속설이 있는 공식화된 부적이라고나 해야할까? 

 

 

우리 돈으로 치자면 4만 5천원정도였으니 일인당 2만 2천원이면 머무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만족했다.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그리고 유적지가 가까우니 손해볼 게 없었다.

 

 

호텔 방에서 바라보니 바로 앞에 거대한 모스크가 있었다. 이 정도면 길찾기도 너무 쉽다.

 

 

다시 지하철 역으로 돌아간 나는 동료들을 데리고 호텔에 돌아와서 체크인을 하고 곧장 짐을 정리한 뒤, 해가 지기 전에 올드 앙카라 탐방에 나섰다. 호텔 문을 나온게 오후 5시였다. 부근에 시장이 있다.

 

 

목욕탕도 보였다.

 

 

깨끗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점을 하나 봐두었다. 이따 저녁에 한번 와봐야할 것 같아서 말이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도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튀르크족들의 민속의상인가 보다. 터키의 주류를 이루는 지배민족은 튀르크족이다. 투르크라고도 발음한다. 터키는 튀르크의 영어식 표기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터키는 다민족 국가다.

 

 

머릿수건을 쓴 여성들이 많앗다. 우리는 시장 골목을 걸어가며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시장통을 지나 위로 계속 올라갔다.

 

 

아나톨리아 박물관 정문 앞을 지나갔다. 내일 오전에는 여기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절대로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을 놓치면 안된다. 나는 벌써부터 눈독을 단단히 들여놓았다.

 

 

박물관을 지난 뒤 조금 더 올라가면 성채가 나올 것이다.

 

 

현지인들은 성채를 시타델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히사르라고 해야겠지만 영어식 발음이 터키어에도 상당히 스며들어 있었다.

 

 

시타델로 올라가는 길은 박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올라온 것 같다. 엣날 유적이니 언덕위에 자리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마침내 성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문있는 곳의  성벽은 더 두터운듯 했다.

 

 

정문 맞은 편은 주차장이다.

 

 

성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앙카라 성 경내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수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굉장히 많은 보수작업을 한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성채 안에 있는 옛마을에 대한 엄청난 보수를 해놓았음이 틀림없다.

 

 

전통을 살려가며 옛집들을 수리하고 회칠을 했다. 깔끔하면서도 아담한 상가로 변신시켜 놓은 것이다.

 

 

성문 부근 마을 광장의 모습이다.

 

 

가옥들은 모두들 2층집이다.

 

 

아래층은 상가이고 위층은 거주시설인것 같았다.

 

 

분수대 시설도 새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 예전에는 분명히 못본 것이다.

 

 

앙카라는 기원전 천년경에 이미 프리기아라는왕국이 존재했었던 곳이다. 사람이 살게 된 것은 그보다 더 오래전 옛날이다. 프리기아 왕국이 들어서기 전에는 힛타이트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약성경을 보면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보낸 갈라디아서라는 편지글이 나온다. 갈라디아가 바로 오늘날의 앙카라와 그 인근 지역이다. 공화정 시대와 제정 시대 로마인들은 갈라티아라고 불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아들이 되어 초대 황제자리에 올랐던 아우구스투스는 이 곳에다가 앙키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골목 한쪽에 수도 시설을 해두었다. 터키어로 는 물을 의미한다.

 

 

잠시 목을 축인다. 수도물이어서 안심해도 되지만 많이 마시는 것은 조금 그럴 것이다. 

 

 

 우리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았다.

 

 

양탄자 가게인 모양이다. 로마인들의 지배가 끝나고 투르크족들이 여기를 차지하고 나서는 이 동네를 앙고라라고 불렀다.

 

 

앙고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 아니던가?

 

 

앙고라 염소, 앙고라 토끼......  터키시 앙고라는 고양이를 말한다. 삼총사 소설에도 등장하는 리슐리외 추기경이 터키시 앙고라 고양이를 좋아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터키인들이 국부로 숭상하는 케말 파샤가 1920년에 여기에서 임시정부를 세울 때만해도 앙고라 인구는 3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지금은 앙카라지만 당시만 해도 여기는 앙고라로 불렸다. 멋진 카페들도 골목에 숨어있었다. 

 

 

지금 이런 음식 유혹에 넘어가면 곤란하다. 우리는 성채 꼭대기에 올라갈 신성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한무리의 현지인 관광객들이 우리를 질러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