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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앙카라의 옛 성채 3

by 깜쌤 2016. 7. 19.

 

앙카라는 사방이 붉은 색이다.

 

 

붉은색 기와를 머리에 인 낮춤한 집들이 고원의 언덕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터키의 수도이니만큼 정치의 중심지다. 터키를 대표하는 공업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터키를 향하여 출발하는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이스탄불로 향한다. 

 

 

 앙카라의 볼거리는 제한적이지만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나 마찬가지다.

 

 

성벽위에 걸터앉았더니 먼저와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젊은이가 말을 붙여왔다. 대학생이다. 콜라 한잔과 대추야자를 권해왔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니까 넘버원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실제 여론조사를 해보면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동양의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터키인들이 우리를 두고 '형제의 나라'라는 식으로 표현하긴 하지만 터키인의 심중엔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호감도가 더 좋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될 것이다.

 

 

터키인들이 흔히 말하는 '형제의 나라'라는 말의 의미를 잠시 되새겨보자.

 

 

고대 역사에서 터키인의 조상이 되는 돌궐인들과 고구려는 특별한(?) 친분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언어적인 면에서나 지정학적인 면을 바탕으로 하여 살펴볼 때 고대 역사에서 고구려와 투르크 족이 가지는 관계는 특별했을 수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흉노와 부여, 고구려와 한족과의 관계를 살펴보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기는 하다.

 

 

터키인들은 형제의 나라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어서 한국전쟁(우리가 흔히 말하는 6.25전쟁)때 피흘림을 각오하고 용맹하기 짝이 없는 수많은 병력을 파견했노라고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Really? 과연 정말 그럴까? 하지만 터키병사들의 우리 부녀자에 대한 강간사건들은 왜 언급조차 안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고구려의 영토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북한을 도우지 않고 왜 그들은 남한을 도왔을까?

 

 

그런 논리로 치자면 그들은 북한을 도우는 것이 형제의 나라를 돕는 길이 아니었을까?

 

 

근대사에서 터키 최대의 적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왕국과 제정(帝政) 러시아였다.

 

 

공군력이 없던 시대에 군사력은 해군과 육군이 주력을 이루었다.

 

 

러시아 해군의 주력은 발트해와 흑해와 동해에 배치되어 있었다.

 

 

아무리 해군력이 우수해도 항구 자체가 얼어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이야 쇄빙선같은 것이 개발되어 있어서 항구가 얼어붙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익될 것은 없다.

 

 

근대사에서 러시아의 기본 정책은 부동항을 얻는 것이었다. 부동항!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있어서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부동항 확보를 위해 그들은 남진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남진정책)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나라가 제국주의 영국과 최근의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가 코카서스 산맥들의 소국을 탐낸 이유는남하정책과 관련이 있다. 

 

 

이는 필경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의 충돌을 의미했다.

 

 

오스만 투르크는 러시아 세력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세계 제 1차 대전의 영향으로 오스만 투르크가 무너진 뒤 터키는 국가 자체의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 

 

 

 그들이 국부로 떠받드는 케말 파샤의 피나는 투쟁의 결과로 오늘날의 터키 영토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국가를 확보하는데 실패한 것이 쿠르드같은 소수 민족이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러시아(구 소련)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며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약칭 소련)이 세계 제2차 대전 때 독일의 침략을 저지하며 국토를 수호하는데 성공하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공산주의를 더더욱 공고히 하는데 매진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동부 유럽의 상당수 국가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1949년에는 중국까지 공산화가 이루어졌다. 소련측 입장에서는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6,25전쟁은 1950년에 발발했다.

 

 

터키 입장에서는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으면 구 소련의 표적이 될게 뻔했다.

 

 

그러길래 살기 위해 미국편을 들어 참전한 것이지 형제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도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고나자 비로소 형제국가 운운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북한이 남한을 압도하는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면 북한을 보고 형제의 나라라고 말하며 다가서지 않았을까?

 

 

국제정치에서 감상적이며 낭만적인 접근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철거되고 있는 앙카라의 달동네-아크 칼레 맞은편 산비탈의 모습이다>

 

이슬람국가인 터키는 중앙아시아지방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 포교라는 종교적인 차원에서도 한국에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너무 한쪽에 치우친 논리를 전개한 것일까?

 

 

                                                <아크 칼레>

 

음모론이 아니더라도 결코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럽연합 가입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이 확실해진다면 그동안의 친서방적인 정책을 폐기하고 러시아와 손잡을지도 모른다. 

 

 

이슬람 세력의 확산을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고, 범이슬람세력과 연대하여 이스라엘 박멸이라는 정치적인 슬로건을 앞세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터키에서는 쿠데타가 발생했지만 실패했다.

 

 

어떤 모습으로 그 여파가 번져나갈지는 잘 모르지만, 터키에서 이슬람근본주의가 세력을 떨쳐나가거나 아니면 세속주의로 흘러 좀 더 수준높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나는 이슬람원리주의(=근본주의)의 확산쪽으로 걸고 싶다.

 

 

그들은 대제국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그리워할 것이다.

 

 

터키가 러시아, 이란과 군사동맹을 맺고 이슬람근본주의로 돌아설 때 세계는 재앙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바늘 구멍으로 하늘을 쳐다보는데 익숙한 어리바리한 시골 촌사람이 앙카라 성채동네를 구경하다가 쓰잘데기 없는 시시한 헛소리를 지껄여보았다.

 

 

우리는 성채 밖으로 나갔다.

 

 

맨홀 뚜껑에 새겨진 글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Aski는 터키어로 옷걸이를 의미하는 말인데......

 

 

마지막으로 성채 안을 한번 더 되돌아보았다.

 

 

성채 밖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현대회사에서 만든 승용차들이 택시로 사용되고 있었다.

 

 

성채에서 내려오면 시장으로 이어진다.

 

 

예쁜 드레스들이 가득 걸려있는 가게가 시선을 잡아당겼다.

 

 

우리나라 회사 마크를 단 차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새삼스레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저녁 식사는 작은 호텔에 딸린 식당에서 했다.

 

 

옆자리에 앉은 사나이는 베토벤 스타일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어가 능숙했다. 그는 유럽연합과 관계있는 어떤 프로젝트를 하나 추진중이라고 했다. 

 

 

요구르트와 물....

 

 

난을 닮은 빵과 쌀밥 조금.....

 

 

그리고 샐러드로 저녁을 떼웠다.

 

 

계산서를 담아온 쟁반에 돈을 올려주었더니 잔돈을 가지고 왔다. 

 

 

밖이 벌써 컴컴해졌다.

 

 

배낭을 풀고는 시장에서 대추야자 0.5킬로그램을 3.4리라를 주고 사서는 방에 돌아와서 오물거렸다.

 

 

샤워를 통해서 피로를 씻어냈다.

 

 

오늘도 길고 긴 하루가 어둠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