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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첩채산에 오르다 1

by 깜쌤 2016. 7. 14.

 

 강변을 따라 걷다가 시가지 쪽으로 접근하자 곧 이어 복파산이 나타났다. 위치가 궁금한 사람들은 아래 지도를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1 - 노인산         2 - 첩채산           3 - 복파산

4 - 해방교         5 - 칠성공원        6 - 상비산

 

오늘 아침에 우리들은 상비산 부근을 거쳐 해방교를 건넌 뒤 칠성경구로 갔다가 다시 해방교를 건너서 복파산 앞에까지 이른 것이다. 2번으로 표시해둔 첩채산의 위치를 잘 기억해두자. 

 

 

복파산 앞에는 말을 탄 장수가 기개도 늠름하게 턱 버티고 섰다. 이 사람이 복파장군 마원이다. 후한 광무제 사람이니 기원전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강쪽으로 자리잡은 작은 기념품 부스에는 자수로 만든 수예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계림산수를 표현한 작품들이 시선을 끈다.

 

 

아침에 못보고 지나친 상비암을 자수작품으로 다시 만났다.

 

 

복파장군 마원은 오늘날의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지방 원정에 나섰던 인물이다. 마원의 후손이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데 바로 마등, 마초같은 인물이다.

 

 

복파산은 그리 크지 않기에 굳이 들어가 볼 일이 없었다. 우리들은 겉만 보고 지나치기로 했다. 

 

 

 복파산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걷다가 보면 복파산 전경을 슬쩍 훔쳐볼 수 있는 지점을 만난다.

 

 

옆문을 통해 복파산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해두었다. 안들어가길 잘했다.

 

 

봉우리 북쪽면에는 포대화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갔더니 첩채산으로 연결되는 샛길이 나왔다. 

 

 

바로 저산이다. 이강변에 우뚝 솟은 저 산이 첩채산(叠彩山)이다. 복파산보다 규모도 크고 웅장하므로 우리는 복파산을 포기하고 첩채산으로 바로 간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첩채라는 말은 비단이 차곡차곡 쌓였다는 그런 뜻이다.

 

 

출입문 오른쪽 옆에 동굴이 하나 있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이강이 나타난다.

 

 

나는 다시 돌아나와서 표를 샀다.

 

 

문표값은 35유안이었다. 비싸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지만 이번에는 흔쾌히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료가 우리돈으로 약 6,400원 정도다. 중국 물가에 비하면 비싼 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계혈옥박물관은 들어가보지 않았다.

 

 

공원내 이정표를 만났다. 우리말도 있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입구부근에는 작은 상가와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바위에 붙여놓은 분재가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다.

 

 

물속에 가라앉은 거북등 위에는 자잘한 액수의 동전들이 수북했다.

 

 

중국인들은 정원같은 곳에서는 절대로 길을 직선으로 내지 않는다. 

 

 

 상가안 가게에는 수를 놓는 여인이 있었다.

 

 

한땀한땀 공들여 수를 놓는다. 요즘은 자수용 미싱이 있어서 쉽게 생산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반드시 손님이 가게를 거쳐가도록 만들어두었다. 그런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고 있었다.

 

 

저긴 아닌것 같고.....

 

 

마침내 찾아냈다.

 

 

이제부터 천천히 걸어오르면 된다.

 

 

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조금 오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상가건물이 보였다.

 

 

바위에 새긴 글귀가 군데군데 나타난다.

 

 

조금 너르다는 느낌을 주는 공터가 나타났다. 정상으로 연결되는 동굴은 오른쪽 절벽에 숨어있었다.

 

 

공터 한쪽에 강유위의 동상이 있다.

 

 

강유위가 첩채산에서 강의를 했던 모양이다. 그는 청나라 말기 민국초기에 걸친 변법학자였다. 물론 정치가였으며 사상가이기도 했다.

 

 

첩채산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진 이 동굴이 풍동(風洞)이다. 정상으로 오르려면 반드시 이 동굴을 통과해야 한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갖가지 불상과 글씨를 만날 수 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대서 그런지 반들반들했다.

 

 

재미있는 곳이다.

 

 

출구쪽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결국 이 동굴은 절이란 말이 되겠다.

 

 

밖으로 나갔더니 봉우리 어디에서부턴가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중국인들의 아이디어는 놀랍기만 하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