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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로즈밸리의 숨겨놓은 보석 - 하츨르 킬리세 2

by 깜쌤 2016. 6. 24.

 

그렇게 한참을 졸고 났더니 조금 살만해졌다.

 

 

정신을 차린 우리는 킬리세 구경에 나서기로 했다.

 

 

킬리세란 터키말로 교회를 나타낸다.

 

 

우리가 한숨을 간단히 자고 일어났던 공간 바로 위가 교회다.

 

 

곧바로 위로 올라가서 나무 계단을 걸어올라가면 된다.

 

 

 하츨르 킬리세라는 푯말이 보였다.

 

 

여기에 교회가 숨어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예전의 내가 그랬다.

 

 

 그냥 지나쳐버리면 너무 억울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멋진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공간이 등장한다.

 

 

 여기가 바로 교회였다.

 

 

 교회공간에서 밖을 내다보면 멋진 경치가 나타난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치 모양으로 벽을 파고 프레스코화를 그려넣었다. 중앙 천정에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런대로 온전하지만 사람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아래 부분의 사도들은 얼굴들이 거의 다 깎여나갔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기사 이슬람교도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탐탁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이게 언제적 작품일 것 같은가?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9세기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9세기라면 신라시대 말기에 해당한다. 그런 작품들이 이런 식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터키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많은 유적과 유물을 가진 국가이다보니 이런 유적들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슬람 유적이라면 이런 식으로 방치했을까?

 

 

색상이 너무도 선명해서 혼자보기가 아까웠다.

 

 

 프레스코화의 의미를 위키백과에서 가져와보았다. 아래 글상자속에 그 내용이 있다.

 

 

프레스코(Fresco)는 'a fresco' (방금 회(灰)를 칠한 위에) 라는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낱말로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벽화를 일컫는다.

 

프레스코는 인류 회화사에서 아마 가장 오래된 그림의 기술 혹은 형태로 여겨진다. 기원전 약 3000년에 미노스문명의 중심지인 크레타섬의 크노소스의 벽화는 프레스코의 기술로 그려졌으며, 기원전 5세기 이래 중국, 한국, 일본에서 그려진 불교벽화의 대부분은 프레스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삼한시대 고분벽화 역시 프레스코의 기술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고 훼손되고 해서 색이 바래져가고 있었다.

 

 

세밀하게 본다고 하면서도 바보같이 방의 천장을 살피는 것을 잊어버렸다.  

 

 

군데군데 파놓은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예배당 내부를 각이 지게 반듯하게 단장해두었다.

 

 

겨울은 어떻게 났을까? 카파도키아의 겨울은 그리 만만하지 않을텐데.....

 

 

겨울엔 여기에도 눈이 내린다. 고원지대인 것이다. 위도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나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길이 교묘하게 여기저기로 연결되어 있었다.

 

 

장미빛 봉우리들과 파란 하늘의 조화가 기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휴게소로 다시 내려갈 필요없이 우린 계속해서 다른 봉우리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로즈밸리로 이어져있는 깊은 골짜기가 보였다. 멀리 우치사르도 함께 나타났다.

 

 

나는 전체적인 지형을 살폈다.

 

 

다음에는 어느 봉우리에 들어가 보아야하는가를 결정해야했기 때문이다.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바로 옆에 또다른 출입구가 하나 보였기 때문이다.

 

 

저 속에는 뭐가 있을까?

 

 

곳곳에 교회가 숨겨져 있으니 세밀하게 하나하나 살펴야한다.

 

 

나는 좁은 통로를 따라 올라가보았다.

 

 

예상대로 방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림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생활공간이었던 것일까?

 

 

방금 전에 들어갔다가 나온 하츨르 클리세로 올라가는 통로가 바로 옆에 보였다.

 

 

어쩌면 비밀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휴게소에 새로운 손님이 도착했던가보다.

 

 

위쪽으로 뚫어놓은 구멍에서 빛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구멍을 통해 사방을 살펴보았다.

 

 

수도사들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삶의 고달픔과 이슬람의 핍박속에 개종자들도 나타났을 것이고 세월이 흘러 한사람씩 죽음에 따라 믿음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리라.

 

 

카파도키아의 수많은 봉우리마다 그런 사연이 가득할 것이다.

 

 

그나마 이정도라도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카파도키아에 남아있던 소수의 그리스인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정교를 신봉했다. 그러다가 터키 독립전쟁때 그리스인들과 터키인들의 대량 맞교환으로 인해 그리스인들조차 이제는 카파도키아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게 약 백년전의 일이다.

 

 

역사의 흐름이란 참으로 얄궂은 것이다.

 

 

뒤쪽으로 절벽과 봉우리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이 골짜기만이라도 하나하나 정밀하게 탐색해서 세밀한 지도를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장미빛 화산재와 하얀색 화산재를 구별하는 선이 선명하게 구별된다.

 

 

그저 기묘하다고 할수밖에 없는 경관이다.

 

 

나는 다시 나가기로 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아직도 동굴 속이었다.

 

 

화드득 정신을 차린 나는 입구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봉우리였기에 입구를 잊어버릴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 이 두개의 연이은 봉우리 안을 살핀 것이다.

 

 

하츨르 킬리세는 그런 모습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