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마구 피던 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남산 언저리 나정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오릉 앞 벌판을 벌써 갈아엎어 두었다. 물기를 머금은 논들이 촉촉하게 보였다. 이제 한달 뒤면 논에 물을 대리라. 서악동네의 무열왕릉 앞으로도 벚꽃이 가득했다.
망성산쪽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정을 살짝 스쳐지나간 뒤 남간마을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나정 옆 양산재 앞 벚나무에도 꽃이 가득 달렸다.
나는 양산재 앞에까지 다가갔다가 돌아섰다.
내가 원했던 것은 벚꽃의 화사함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영남 알프스의 끝자락을 살폈다.
남간마을 입구에는 멋진 재실이 있다.
재실 앞에는 늙은 벚나무 두그루가 뿌리를 박고 살아왔다.
나는 그 나무들이 꽃을 매달기를 지난해 가을부터 기다려왔다.
이제 그 때가 온 것이다.
두그루의 벚나무가 출입문 양쪽을 지키는 담장 안에는 월암재라는 이름을 가진 재실이 있다.
나는 월암재로 오르는 계단에 서서 양산재쪽을 바라보았다.
담장을 덮은 기와 위에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방에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꽃이파리들은 월암재 안마당에도 가득 뿌려져 있었다.
남산 자락들이 동네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곳! 남간마을은 그래서 더 정겹게 보인다.
나는 다시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비에 촉촉하게 젖은 대지가 땅속에 감추어 두었던 검은 색을 드러내보였다.
이 화려한 꽃의 잔치가 보름동안 만이라도 계속된다면 좋겠다.
이젠 나라 곳곳에 벚나무가 너무 많아져서 이런 경치조차도 식상할 때가 있다.
시군마다 특색있는 꽃나무들을 심었으면 좋겠다. 따라쟁이들의 천한 행동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나는 교촌마을을 지나 천천히 달려서 시내로 향했다. 문득 햇살이 그리워졌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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