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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귀양가다

by 깜쌤 2016. 4. 6.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아침이다. 7시에 일어났다. 어제 하루 종일 걸었던 여파였는지는 모르지만 피곤함에 겨워 정신없이 잤다. 실내가 추워서 침낭을 꺼내어 침대에 깔고 잤었다. 나는 추웠지만 동행한 분은 전혀 춥지않다고 했으니 내가 문제였던 셈이다. 참고로 나는 추위에 엄청 약하다. 더위에는 정말 강하고....

 

 

호텔 2층 레스토랑에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다. 식사비는 숙박비에 들어있으니 마음껏 가져다가 먹으면 된다. 흰빵 3개에 삶은 계란 하나, 그리고 죽 한 그릇인데 이 정도만 해도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식당에서 일했던 체구가 자그마한 아줌마는 마음 씀씀이가 고왔다. 헤어지는 것이 살짝 아쉬웠다.

 

 

8시 45분경이 되어 배낭을 메고 내려와서 체크아웃을 했다. 카운터에 근무하는 준의미녀가 아침부터 일하고 있었다. 키도 크고 예뻤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싹싹하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보증금을 내어줄 때도 두손으로 받쳐들고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호텔 바로 맞은편이 충장버스 터미널이다. 중국인들이 쓰는 표현으로 하자면 충장기차참이다. 오늘 우리들은 귀주성의 중심도시인 귀양으로 가려는 것이다. 잘못 들으면 귀양가는 줄로 알겠다.

 

 

 

귀양은 중국 남부에 위치한 도시다. 위 지도에서 파란색 점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이 귀주성이고 귀주의 중심도시가 귀양(貴陽)인 것이다. 귀양은 글자 그대로 '햇볕이 귀한 곳'이라고 한다. 위에 보이는 빨간색 점은 중경을 나타내고 초록색 작은 점은 준의의 위치를 나타낸다.

 

 

귀양으로 가는 버스는 약 40분마다 한대씩 있는 것 같았다. 준의와 귀양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우리는 9시 20분발 버스표를 샀다. 요금은 68원이다. 대형버스니까 좌석은 당연히 지정제다.

 

 

우리가 타야할 버스는 대형고급이다. 배낭을 짐칸에 넣을 때 번호표를 내주었다.

 

 

배낭에 번호표를 하나 붙여주고 또 다른 번호표는 손님에게 주는 방식이다. 중국에서 이런 식으로 짐 관리를 해주는 버스회사는 처음 만나본다. 그만큼 치밀해지고 친절해진 것이다. 안내원도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출발시간도 정확하게 지켰다. 여기서 잠깐! 좌석 앞에 붙은 글귀를 보자. 한자를 모른다고 그냥 무시하고 있으면 손해볼 가능성이 높다.

 

 

 

존경하는 승객 여러분!

우리회사의 대형버스에 승차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차는 준의와 귀양에서 35분 간격으로 동시에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 차는 준의에서 귀양으로 가는 도중 귀양의 고속철도 북역과 금양노양관과 검령공원, 그리고 귀양 기차역을 거쳐 버스터미널까지 운행됩니다.

 

귀양에서 준의로 향할 때는 귀양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뒤 남백을 거쳐 귀양의 충장버스터미널까지 운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검령공원이나 고속철도 귀양북역에서 승차하실 분들은 귀양의 다음 전화번호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그런 내용이 아닐까? 나는 이 안내문 덕에 안심할 수 있었다. 왜냐고? 이 버스는 귀양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버스는 귀양시 외곽에 새로 만든 시외버스 터미널로 바로 가는데 거리가 엄청 떨어져 있어서 불편하다고 써놓았기에 은근히 걱정을 했었다.

 

 

중국에 온지 엿새만에 처음으로 푸른 하늘을 살짝 볼 수 있었다. 푸른 하늘을 '인간이 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차창가로 나타나는 집들은 하나같이 단정했다.

 

 

남쪽이어서 그런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들판에는 푸르름이 가득했다.

 

 

농촌 집들도 단층은 드물었다.

 

 

그만큼 경제환경이 좋아졌다는 뜻도 되겠지만 다른 뜻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국가권력의 중추를 이루는 관료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러기에 자기보호 정신과 자급자족 정신이 강하다. 집을 다층으로 짓는 것은 식량저장공간으로서의 역할과 가축을 기르기 위한 시설이 한꺼번에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여행의 행선지들을 나타내보았다. 나는 이번 여행의 중심축을 귀주성에 두었다. 귀주성은 소수민족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동 범위를 최대한 줄여서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나중에는 태양이 너무 그리워져서 햇살 가득한 곳으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버스는 내내 산길만을 골라다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귀주에는 산이 많다.

 

 

산이 많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강도 깊어지기에 교통이 불편해진다. 고립되면 풍습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진다.

 

 

말이 달라지면 처음에는 같은 민족으로 출발했을지라도 나중에는 서로 다른 민족이 될 수도 있다.  

 

 

우리 민족과 여진족이 그런 식으로 달라진게 아닐까?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 사람들이 일본 조상의 일부가 되었다면 혹시 그런 식으로 변화한게 아닐까?

 

 

버스가 오강(烏江)을 지났다. 초패왕 항우와 관련있는 그 오강이 아니다. 홍군이 백군에게 쫓겨 다니면서 몇번씩이나 건너느라고 죽을 고생을 했던 강이다. 사도적수의 신화를 만들어낸 적수(赤水)는 이번 여행에서 끝내 만나볼 수가 없었다.

 

 

왜 이리 비구름이 가득한지 모르겠다.

 

 

누가 무슨 용도로 모노레일을 놓았을까? 부근에 광산이 있는 모양이다.

 

 

귀주성에는 평지가 드물었다.

 

 

조금이라도 평평하다 싶은 곳이 있으면 어김없이 개간하여 밭을 만들었다.

 

 

귀주성 사람들은 참으로 어렵게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난 냄새가 이런 산골까지 다 펴져있는듯 했다.

 

 

산이 많아도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산은 드물었다.

 

 

이런 정도는 엄청 큰 마을이리라.

 

 

모처럼 풍요로워 보이는 마을을 보았다.

 

 

그렇게하고도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도시가 나타났다.

 

 

아파트 동네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귀양도 중경처럼 산과 언덕이 많았다.

 

 

좌석 앞에 쓰인 안내문처럼 한군데씩 들러가면서 손님들을 내려놓았다.

 

 

귀주에도 아파트들이 하늘로 마구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귀주 기차역 부근에서 내렸다. 우리가 타고왔던 버스다.

 

 

스마트폰을 켜고 바이두 지도를 불러낸 뒤 우리 위치를 살폈다.

 

 

귀주역 앞 중심도로 부근에 우리가 내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부근에서 호텔을 찾으면 된다. 

 

 

멀리 갈 것 없이 눈에 보이는 호텔마다 찾아들어가서 방이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래도 괜히 고층호텔은 겁이 나서 나즈막한 호텔을 골라 찾아갔다. 본(Bonn) 호텔에서 228원을 부르는 트윈베드룸을 이틀 머무르기로 하고 200원으로 깎아서 숙박하기로 했다. 

 

근무하는 아가씨가 영어를 할 줄 몰라서 필담으로 교섭을 했었다. 이제 호텔까지 잡아두었으니 점심을 먹으러 가야한다. 오후 시간을 이용해서는 귀양시내 명소구경을 하기로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