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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홍군가를 걸어 봉황산 문화광장으로

by 깜쌤 2016. 3. 28.

 

우리는 준의회의회지(=준의회의구지) 후문으로 나왔다.

 

 

맥도널드 가게를 준비중인가보다. 이 정도같으면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리가 상당히 깔끔했다.

 

 

이 거리를 따라가면 홍군가(紅軍街)가 나온다.

 

 

장사속에 밝은 중국인들도 세계를 주름잡을 그 어떤 체인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준의회의회지 후문 바로 옆에 박고와 오토 브라운(=이덕)이 살았던 집이 있었다.  

 

 

들어가보기로 했다.

 

 

박고와 이덕이 오래 살았던 집은 아닐 것이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여기에 터를 잡고 오래 살 이유가 없었다.

 

 

대장정의 와중에 잠시 머물렀다는 말이리라.

 

 

박고(博보구) 소개했으면서 왜 진방헌이라는 이름이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박고의 원래 이름이 진방헌이다.

 

 

박고와 이덕이 머물렀던 집에서 보았더니 바로 옆에 또다른 집이 보였다.

 

 

여기서 내려가면 그 다음 집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이덕의 원래 이름은 오토 브라운이다. 중국 공산당의 고문 역할을 했던 독일계 러시아인이다. 이덕, 박고, 주은래 이런 사람들이 대장정 초기의 지도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이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주은래의 공이 컸다.

 

 

어쩌면 진정한 연구대상은 주은래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모택동이 실권을 잡았다는 말은 이덕과 박고가 권력을 잃어버렸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준의회의회지 후문쪽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양류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수양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한겨울인데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버들가지가 보였다.

 

 

보구와 리더(이덕)의 거처를 보고 난 뒤 옆집으로 갔다.

 

 

마당에는 학자풍으로 생긴 점잖은 인물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원판 사진 자료를 가지고 아무리 확대를 해봐도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으로만 보면 이선념(李先念)의 얼굴같기도 한데......  어찌보면 진운(陳雲 천윈)같기도 하다.

 

 

이선념은 호북성 홍안현 출신이다.

 

 

이선념 아니면 진운일 것 같은데.....  진운(陳雲)은 강소성 사람이다.

 

 

나도 한번씩은 바보짓을 한다. 자료확보를 위해 사진은 찍었는데 누구인지 기억을 못하는 바보짓!

 

 

나는 맥없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맞은 편에 중국 술문화박물관이 보였다. 준의 부근에서 나는 유명한 술이 마오타이주다. 모태주(茅台酒, Maotai-jiu)말이다.

 

 

수수(=고량)를 주원료로 해서만드는 술인데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택동이 이 술로 대접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가히 중국의 국주(國酒)라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부근에 노성파출소가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홍군가 거리가 나온다.

 

 

총정치부 건물에 들어가려다가 입장을 거절당했다. 준의회의회지에 들어올 때 주는 티켓을 받아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입장을 거절하면 안들어가면 된다. 꼭 봐야할 것도 아니니 아쉬울 것도 없다. 

 

 

부근에 중학교 건물이 있었다.

 

 

자기들이 보여주기 싫다면 나도 안보면 된다. 내 입장에서는 하나도 아쉬울게 없는 것이다.

 

 

준의회의회지 부근은 온통 홍군에 관한 유적 투성이였다. 만약 국민당군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했더라면 그들은 모두 반역자들이 되어 매국노와 같은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그래서 아이러니다. 그게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고......

 

 

나는 홍군가를 따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혁명의 성지역할을 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간결하고 깔끔했다.

 

 

우리나라 음식을 파는 곳도 있었다.

 

 

홍군가의 출구가 보인다. 거리에는 어딘지 모를 딱딱함과 엄격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오타이주는 마오타이진에서 생산된다. 안동소주가 안동에서 생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술을 안마셔본지가 정말 오래됐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알콜 냄새만 맡아도 취할 정도다.

 

 

홍군의 상징은 붉은 별이다. 곳곳에 붉은 별이 수두룩했다.

 

 

점심을 먹어야하는데 먹을 만한 음식점이 없었다. 물론 음식점이 있긴 있다. 나는 뜨끈한 국물이 있는 국수같은 음식을 원했다.

 

 

홍군가 바로 옆에는 준의기념공원이 있다. 홍군투쟁사를 기념한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보았더니 제법 예쁘게 꾸며두었다.

 

 

홍군가와 붙어있으므로 다시 더 자세하게 볼 필요가 없었다. 조금 둘러보고 돌아나왔다.

 

 

공원옆에는 아주 깔끔하게 손을 본 개울이 흐르고 있다. 나중에 나는 이 개울을 따라 호텔로 향해 걸었었다. 개울 이름? 상강(湘江)이다.

 

 

페튜니아였던가? 한겨울인데도 꽃이 피어있었다.

 

 

개울에 걸린 다리를 지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전같은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 앞의 너른 광장이 봉황산 문화광장이다. 저 멀리 보이는 탑에 이따가 한번 올라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황산과 준의회의회지가 있는 양류가와 홍군가 사이에 흐르는 개울이 상강(湘江)이다. 장사 시내를 흐르는 상강과는 다른 강이다.  

 

 

광장 오른쪽 구석에 음식을 파는 난전이 보였다. 우리는 국수를 먹기위해 찾아가 작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귀여운 녀석들..... 중국 초딩이라고해서 인간이 지닌 본성에서 예외의 존재가 될 수 있으랴?

 

 

8원짜리 국수다. 국수를 말아주는 아줌마에게 매운 고추 양념을 넣어도 좋다고 대답했었지만 막상 먹어보았더니 눈물날 정도로 매웠다. 결국 국물을 남겼다.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점심을 먹고난 뒤 광장을 지나 상강을 따라 위로 조금 걸어올라갔다. 왜 그랬을까?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