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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준의회의회지(준의회의구지) 3

by 깜쌤 2016. 3. 23.

전시실 벽에는 많은 인물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실물자료들보다 사진자료들이 많았다.

 

 

자료들을 훑어보는 중국인들의 표정도 한결 진지하기만 했다.

 

 

수많은 군사지도자의 사진들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10대 원수들과 장성들....

 

 

역사는 혁명을 통해 수많은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그 혁명(?)을 통해 점점 화석화되어가고 있는 정권도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른바 혁명을 이룩했다는 북녘땅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지금은 전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고통받는 것은 인민들뿐이다. 

 

 

 중국공산혁명도 그런 바탕을 배경으로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청나라 황조의 무능과 부패와 시대착오적인 통치로 인해 국민 대부분을 구성했던 농민들의 삶은 노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청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수립되었다고는 하지만 정권을 획득한 자들의 무능과 부패는 사라지지 않았다. 

 

군벌들과 거기에 빌붙은 악질적인 지주계급의 착취와,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가혹하다는 세금 부과는 인민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지주계급의 토지몰수를 통한 공정한 분배와 세금 경감, 그리고 부패청산을 주장하면서 실제행동으로 보여준 소비에트지구의 성공 신화는 중국인민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택동의 성공신화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준의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한 모택동의 홍군은 준의 부근을 흐르는 적수(赤水)를 네번이나 건너다니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낱말이 사도적수(四渡赤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사도적수는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홍군이 국민당군을 마음대로 유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진속의 촌락은 이도적수를 시도했을 당시의 도하지점에 있었던 시골마을이다.

 

 

바로 위 사진은 사도적수 당시의 홍군과 국민당 군대의 포진 상항을 나타내고 있다. 붉은 색 동그라미가 홍군을 나타낸다. 홍군은 포위된 상태에 있었다. 이런 식의 포위망 탈출은 서금소비에트공화국시절부터 시작되어 중국 북서부 섬서성의 새로운 혁명기지에 이를 때까지 줄기차게 반복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어찌보면 기적같은 일이기도 했는데 이게 가능했던 것은 지휘부의 현명한 판단력에다가 인민들의 헌신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모택동은 '인민이 물이라면 유격대원(=게릴라)은 물고기'라고 표현했었다. 부상을 당해 후방에 남겨진 홍군 유격대원들은 농민들의 보살핌을 받아가며 생존에 성공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홍군이 인민들의 민심을 얻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그냥 생긴게 아니다. 

 

 

아래층 관람을 끝낸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층 한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충분히 쉬었다.

 

 

홍군의 성공신화 가운데 압권은 대도하 위에 걸린 노정교를 건넌 사건이다. 나도 한번씩은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데 내가 지닌 한자 실력의 부족으로 엉터리 발음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노정교를 여정교라고 잘못 알고 그렇게 글을 쓴 경우가 있었다. 나중에서야 실수를 깨닫고 수정을 하기도 했지만 한자에 밝은 실력있는 다른 분들이 내가 쓴 글을 읽고서 얼마나 혀를 찼을지를 생각하면 낯이 화끈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 척하고 아는 척 해댔으니 생각할수록 부끄럽기만 하다. 이번에도 중국여행을 떠나기 전에 에드가 스노우가 쓴 <중국의 붉은 별>을 반쯤만 읽고 출발했었다. 이는 물론 시간부족때문이었는데 그 책 안에도 위에서 언급한 노정교 도강사건 과정을 세밀히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부분이 장정과정에서 단연 압권에 해당된다고 본다.

 

 

위 사진은 그림을 찍은 것이다. 에드가 스노우가 홍군의 지도자인 모택동과 주은래를 만나 대장정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들의 만남은 섬서성 연안부근에서 이루어졌다.

 

 

스노우는 이때의 만남을 세밀한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책이 <중국의 붉은 별>이다. 중국공산혁명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읽어둘 필요가 있다.

 

 

책속에는 홍군이 중국 인민들로부터 인심을 얻어가는 과정이 상세히 나타나고 있다. 겸손함과 진실함에서 우러나는 행동을 세상사람들은 저절로 알게되어 있다. 홍군에게는 8대주의라는게 있었다. 잠시 소개해보겠다.

 

 

 

'8대 주의'
 

  1. 묵었던 가옥으로부터 떠날 때는 모든 문짝을 제 위치에 복귀시켜놓을 것.

(문짝을 침대 대신으로 썼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해하기 쉽다)
  2. 잠자리로 사용했던 짚단(혹은 멍석)은 원래의 자리에 갖다놓을 것.
  3. 인민들에게 공손할 것이며 가능한 한 모든 힘으로 그들을 도와줄 것.
  4. 인민에게 빌린 물건은 반드시 돌려줄 것.
  5. 손상된 물품은 고쳐서라도 원상회복시켜 돌려줄.
  6. 농민들과의 거래시에는 정직하게 할 것.
  7. 물건을 살 때에는 반드시 대금을 지불할 것.
  8. 위생처리에 주의하며, 특히 화장실은 인민의 주거지로부터 가능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할 것.


 

 

 

 

홍군은 그런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홍군의 8대 주의사항을 거듭 읽어보자. 실천하기가 크게 어렵고 힘드는게 있던가? 그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기본 양심을 지킨 것 뿐이다. 그런데 그게 인민들에게 먹혀들었던 것이다.

 

 

홍군이 지나가는 곳에는 약탈행위가 없었다. 반면 군벌들의 군대나 국민당 군대가 들어오면 무차별적으로 물자를 강제징발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약탈까지 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전쟁의 승패(勝敗)와 정권획득 성패(成敗)는 거기서 결정되었던 것이다.

 

 

홍군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농민의 자제들이 앞장서서 군복무를 지원했다. 장개석의 국부군에 쫓기면서도 병력보충이 가능했던 이유가 그런데 있었다. 지원병으로 이루어진 군대는 무섭다. 강제징집당한 군인들과는 정신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노정교의 영웅들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노정교(=루딩교)에서 공을 세운 22용사의 으뜸은 유재화라는 인물이다. 梓라는 글자는 가래나무라는 의미를 지닌 글자인데 라고 읽는다. 어떨 때는 라고 읽기도 한다. 그외에도 유금산, 요대주, 왕해운, 이우림 같은 인물들이 노정교에 등장하여 신화가 되었다.  

 

 

대도하((大渡河)를 건넌 홍군은 사천성과 운남성 서부의 눈덮인 설산을 넘어 북으로 진군했다.

 

 

사천성 서부에서는 대초원으로 들어 들어섰다가 습지에서 수많은 병력을 잃기도 했다.

 

 

2003년이었던가? 나는 버스를 타고 사천성 서부의 대초원을 지나갔다.

 

 

송반을 거쳐 구채구와 황룡을 갔었던 날이 어제 일같다. 송반에서는 2박 3일간 말을 타고 야영을 하러 가기도 했었는데...... 

 

 

홍군의 행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려면 밑도 끝도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끝내자. 그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위에서 언급한 책 <대륙의 붉은 별>정도를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길 위에서 읽는 중국 현대사, 대장정>이라는 책도 추천해드릴만하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패배자의 변명도 들어봐주어야한다는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일어나면서 창문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살펴보았다. 뒷문으로 나가는 길을 미리 확인해두는 차원에서 자세히 살펴본 것이다. 

 

 

마지막 전시실에 들렀다. 사천성 고산지대의 대초원에 숨겨진 습지를 통과하는 장면이 보였다. 

 

 

비를 맞으며 홍군이 습지를 통과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나는 이 지역부근을 버스로 통과하면서 초원의 한쪽에만 비가오는 기막힌 체험을 했었다.   

 

 

준의기념관에는 신중국의 통치자들 모습도 보였다.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호요방과 현재 중국을 다스리고 있는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간자로는 习近平)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습근평의 아버지 습중훈(習仲勛)이 모택동의 생명을 살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면 믿어지겠는가?  

 

 

대장정의 종착점인 섬서성 북단에 도착했을때 그곳에서 이미 사회주의 소비에트 구역을 만들어 통치하고 있었던 사람이 습근평의 아버지인 습중훈이었다. 그는 유지단과 함께 젊은 나이에 벌써 사람들의 신망을 얻어 영웅이 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2층 전시실에는 다양한 도서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 중국어로 된 것들 뿐이어서 구하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에드가 스노우(Edgar Parks Snow)를 만났다. 서방 세계에 홍군의 지도자를 소개한 것은 스노우가 처음이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위키피디어에서 소개하는 첫머리 글을 잠시 소개해보자.

 

Edgar Parks Snow (17 July 1905 – 15 February 1972) was an American journalist known for his books and articles on Communism in China and the Chinese Communist revolution. He was the first Western journalist to give a full account of the history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following the Long March, and was the first to interview many of its leaders, including Mao Zedong. He is best known for his book,Red Star Over China (1937), an account of the Chinese Communist movement from its foundation until the late 1930s.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은 1937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나는 그 책의 일부분 - 대도하 도강 장면 - 을 젊었던 날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서 보았었다. 당시에는 그가 쓴 그 책은 구할 길도 없었고, 읽어서도 안되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당국에서는 그를 어떤 식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준의회의회지에 소개된 전시물을 가지고 소개해드린다. 사진속의 글을 읽어보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홍군의 대장정에 관해 글을 쓴 사람들은 그 후에도 제법 등장했다.

 

 

나는 다시 1층 입구로 내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홍군 지도자군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들은 이 인물들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내가 걸어들어왔던 정문쪽에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었다. 기념관을 향해서.......

 

 

Edgar Parks Snow를 우리말로 표기하면서 어떤때는 애드가 스노, 또 어떤 때를 에드가 스노우로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