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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준의미녀

by 깜쌤 2016. 3. 14.

1월 9일 토요일, 중경직할시의 중심지인 중경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날이다. 목표는 준의(遵義 쭌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렸다. 거리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결국 중경에서는 햇살구경조차 한번도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1층 카운터의 아가씨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누워있다가 허겁지겁 일어나서 보증금 200원을 내어주었다. 소집자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출발지 부근이어서 그런지 좌석은 텅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양로구 역에서 내린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물론 그 비용으로 2원을 지불해야했다.

 

 

아침은 버스터미널 부근에 가서 먹을 생각이었다.중경시외버스터미널 인근 맥도널드점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 한덩어리를 주문했다. 19.5원이다. 3,600원짜리 아침이라는 이야기다. 커피대신 두유를 마셨다.

 

장거리 이동인데다가 버스여행이니 커피보다는 두유가 훨씬 좋은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있긴 있었는데 다른 식당것이라며 할머니가 사용을 못하게 했다.

 

 

화장실을 찾지못한 나는 결국 8번 검표소 맞은편의 야외 화장실을 써야했다. 버스표에는 9시 20분으로 되어 있었지만 나중에 보니 9시 반에 출발했다. 어제 안내소에서도 9시 반에 출발한다고 했었다. 티켓을 자세히보니 발차시간이 아니고 개차시간으로 되어 있었다.

 

 

준의로 가는 차는 대형고속버스였다. 나는 4번 좌석에 앉았다. 앞쪽이어서 편하다. 시내를 벗어나서 그냥 달릴 줄 알았더니 왠걸, 그게 아니었다. 중경시내를 관통하는 양자강 남쪽의 다른 버스정류장을 한군데 더 거쳐서 가도록 되어 있었다.

 

 

거기까지 가는데만 해도 시간을 제법 많이 잡아먹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도대체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아래에 올려둔 지도를 보자. 지도를 클릭하면 아주 크게 뜰 것이다.

 

 

 

우리는 1번으로 표시된 중경을 떠나 2번으로 표시해둔 준의까지 갈 생각이다. 오늘은 준의까지만 간다. 준의가 어떤 도시인지 아는 분들은 중국공산당 혁명사나 중국근대사에 아주 밝은 분임이 틀림없다.

 

3번은 귀주성의 중심도시인 귀양이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가 귀양이다. 4번은 장가계이고 5번이 최종 목적지인 장사다. 6번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봉황의 위치다. 귀양까지 가면 더 남쪽으로 내려가 계림양삭을 가볼 생각인데 아직은 미확정이다.  

 

 

통로쪽에 앉았기에 차창밖의 장면을 사진찍기가 어려웠다. 하기사 산골짜기가 연속되고 날씨까지 흐리기만 하니 좋은 장면을 건지기가 힘들다. 이럴땐 조는게 최고다. 하지만 여행와서 졸기만 한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니던가?

 

 

버스가 휴게소에 들어섰다.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의 바이두 지도도 제대로 뜨질 않았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이제 반쯤 왔다는 말이 될 것이다.

 

 

휴게소 부근은 모두 산골이었다. 건너편 골짝에 집이 몇채 보였다. 그게 다였다.

 

 

집들이 모두 하얀 벽을 가지고 있어서 그나마 보기가 좋았다.

 

 

보통은 휴게소에서 한 이십여분 정도 쉬는 것으로 알고있지만 우리차 기사는 단 10분만 쉬고 출발했다.

 

 

빨리 출발해서 목적지로 가는게 옳은 일이다. 구경할게 하나도 없으니 심심하기만 한데 오래 있을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교통체증이 심한 중경 시내를 벗어나느라고 시간을 너무 많이 까먹었다.

 

 

대륙에서는 뭐든지 규모가 크다. 이 차에 실린 차만도 아마 열두대는 될 것이다.

 

 

지나가는 차를 향해 한줄로 서서 귤비슷하게 보이는 것을 팔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일 것이다.

 

 

오후 2시 반이 넘어서야 준의 시내에 도착했다. 중경에서 여기까지 고속버스로 5시간이나 걸렸다는 말이 된다. 준의 부근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가 또 막혀있어서 버스는 동쪽으로 한참을 돌아서 시내로 들어가야했다.

 

 

우리가 탔던 고속버스는 준의시 제일 남쪽의 충장시외버스터미널에 우리를 토해 놓았다. 충장객운참이라는 글씨가 건물 벽에 선명했다. 터미널 맞은 편에 고층빌딩들이 몇 채 보였다. 멀리 갈 필요없이 이 부근에서 숙박하기로 마음먹었다.

 

 

부근에 널린 몇개의 작은 호텔에 들어가보았더니 외국인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외국인숙박이 허용된 개륭주점(=개융주점)에 가서 방을 구했다. 터미널에서 바로 보이는 육교부근 고층빌딩안에 호텔이 있다.

 

 

시골 도시치고 호텔비가 비쌌다. 2박에 400원을 불렀으니 하루에 200원이라는 말이다. 우리돈으로 쳐도 3만 6천원이라는 거금 아닌가? 아침 식사가 포함된 가격이었다. 그런데 호텔 카운터에서 일을 보는 아가씨가 대단한 미인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사근사근하고 친절했다.  

 

 

이동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려 달리 갈데가 없었다. 오늘은 일단 쉬기로 했다. 빨래도 해두고 어느 정도 쉬다가 저녁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터미널 부근에는 그럴듯한 음식점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호텔로 다시 돌아와 카운터의 미녀와 미녀를 짝사랑하는듯한 총각이 알려주는대로 호텔 2층 식당에 가게 되었다. 

 

 

중국요리를 주문하는 것은 아주 쉽다. 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한자를 보고 고르면 되는 것이지만 한자를 모를 경우에는 그날의 운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나는 요리를 3가지 시켜보기로 했다. 맨처음으로는 가지요리를 주문했다.

 

가지를 중국인들은 가자(茄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풍미가자(風味茄子)를 일단 찍어보았다. 가지를 기름에 튀긴 뒤 매콤한 고추와 파를 총총 썰어서 끼얹었다. 맛있다. 28원이었다.

 

 

토두(土豆)라는 말은 흙에서 나는 콩이니 감자 아니면 땅콩일 것이다. 두번째 요리로는 토두회과육(土豆回锅肉)을 주문했다. 회과육은 삽결살 구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에 감자를 넣었으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도 28원이었다.  

 

 

마지막으로 주문한 것은 어향육사(魚香肉絲 위상러우쓰)였다. 군 설명이 필요없는 중국 명물 요리다. 이집은 26원을 받았다. 외국인 숙박이 가능한 호텔 음식점 가격이다. 일반 시장에 가서 주문하면 더 싼 값에도 먹을 수 있다. 중국음식은 같은 이름을 가졌다고해도 모양이 다르고 맛도 다르고 양도 다르다.

 

 

그리고 밥! 밥은 미반(米飯)이라고 한다. 성조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미판 정도로 소리가 난다. 4원이었다. 이렇게 주문했더니 합계 86원이 되었다.

 

 

이제 먹을 차례다. 중국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음식맛을 살펴보는 것이다. 두명이 3가지 요리를 시켜두고 먹으면 속된 말로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 세명이나 네명이 한팀을 이루어 여행을 하면서 매일 저녁마다 요리종류를 바꾸어가며 4가지만 주문해서 먹어보면 멋진 미식(美食)여행이 된다.

 

둘이서 86원을 썼다면 일인당 43원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7,800원으로 중국요리 3가지를 맛보는 것이다. 적어도 3성급 이상의 호텔 식당에서 먹는 요리니 더 고급스럽지 않을까 싶다. 

 

 

속된 말로 거하게 먹고난 뒤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 배낭을 풀고 짐을 정돈해두었다. 비닐로 된 작은 깔개(당연히 접을 수 있다)를 가지고 다니면서 널어놓고 그 위에 짐을 정리해두는 것이다. 

 

모든 물건은 투명한 지퍼백 속에 들어있어서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열어볼 필요가 없도록 해두었다. 나는 여행자가 짐을 꾸린 것만 보면 프로 여행자인지 초짜인지 단번에 구별할 수 있다.    

 

 

배낭여행자가 이정도 시설에 묵는다면 고급스런 여행이다. 젊었던 날에는 도미토리에서도 자고 싸구려 숙소를 이용했지만 나이가 있으니 몇푼 더 쓰고 좋은 시설에 묵으려고 노력한다. 이 여행기의 처음에도 공개를 했지만 이 정도 시설에 묵고 요리를 먹어가며 여행해도 하루 3만 6천 5백원으로 가능했다. 

 

 

나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거의 사지 않는다. 기념품같은 것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이제는 인생을 정리해나가야 할 나이기에 쓰잘데기 없는 물건들을 자꾸 사모을 일이 없다. 대신 저녁마다 일기를 꼬박꼬박 썼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기록도 하고 스마트폰에 가계부 앱을 깔아 금전 출납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나는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철저히 기록해둔다.  각종 영수증과 차표나 입장권같은 것을 증거물 삼아 일기장에 붙여가며 쓰는 것이므로 볼 때마다 유용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게 귀찮다고 여겨지면 카메라로 찍어두면 된다. 일찍 자기로 했다. 그래도 10시가 훌쩍 넘어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