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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중경의 보석 자기구 1

by 깜쌤 2016. 3. 3.

 

자기구(磁器口 Ciqikou 츠치커우)에 가보기로 했다. 자기구는 중경시 외곽에 있는 전통 마을 이름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게 편하기에 우리는 지하철 1호선을 탔다. 하지만 몸 컨디션이 문제였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비싼 돈 들여 멀리까지 와서 누워만 있을 수 없으니 움직여야지. 아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지도가 작아서 보기 어렵다는 분들은 지도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화면을 채울 정도로 크게 뜰 것이다. 몇번 이야기한대로 중경시의 핵심지는 위쪽의 가릉강과 아래쪽의 양자강이 합류하는 지점부근이다.

 

1 - 조천문 : 장강 유람선들이 이 부근에서 출발한다.

2 - 홍애동 : 자타가 인정하는 상업구역이며 관광지이기도 하다. 

3 - 해방비 : 중경최고의 번화가이다. 

4 - 임시정부옛터 : 상해(上海 상하이) 임시정부의 마지막 종착점이다.  

5 - 자기구 : 중경의 옛날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마을로서 한번은 꼭 가볼만한 멋진 곳이다.  

 

 

자기구까지는 중경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지하철 1호선을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지하철 1호선의 출발지인 조천문역에서 17번째 정거장이니 제법 멀리 가긴하지만  2,30분만 투자하면 되므로 망설이지 말고 가보시기를 권한다. 소십자역에서 탔더니 지하철요금은 5원이었다.

 

 

자기구 역은 지상에 건설되어 있었다. 다른 역들은 지하에 만들어져 있었기에 지상으로 올라오니 속이 다 시원해졌다.

 

 

자기구역 밖으로 나와서 뒤를 돌아보았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보잉사의 거대 점보여객기 몸통이 철로 위에 그대로 내려앉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떨어져서 살펴보았더니 또다른 느낌이 났다.

 

 

우리는 역을 빠져나왔다. 비가 슬슬 뿌리고 있었다. 참, 중경의 날씨도 제법 지저분한 편이다. 아래 지도를 살펴보자.

 

 

 

빨간점을 찍어둔 곳이 자기구역이다. 역밖으로 나온뒤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큰 도로를 만난 뒤에는 그대로 직진하면 된다. 그러니 자기구 옛마을을 찾아가는 것은 식은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역을 나온 뒤에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중국에서는 옛날 마을을 고진(古鎭)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우리가 찾아가려고 하는 그곳은 자기구고진이 되는 셈이다.

 

 

기차역과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나이든 길거리 가수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분인가보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걸었다. 우리라고 해봐야 달랑 두사람뿐인 초미니 그룹이다.

 

 

도로위에 세워진 자기구 입구를 지나자....   그런데 가만, 이 양반은 선풍기를 메고 가는게 맞는가?

 

 

왼쪽으로 옛날 마을이 보였다. 나는 도로를 건너 자기구 입구라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른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식 입구는 다른 곳에 있었다.

 

 

기억자기구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아 자기구 마을의 변화모습을 전시한 진열관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직접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우리는 남북으로 뻗은 작은 골목을 따라 걸었다. 골목은 놀랍게도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아직까지 아침을 먹지 못했기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집에 들어가 아침을 먹기로 했다. 다른 가게들을 살펴보니 이제사 모두들 슬슬 문을 열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선 곳이 미선집이니 국수를 주문하는게 옳은 일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만두국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만두국을 주문했다.

 

 

12원이다. 문제는 종이컵에 담아준다는 거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볶은 콩을 몇알 넣어주어서 그런지 맛은 국물까지 고소했다. 

 

 

아침을 해결했으니 이젠 슬슬 걸으면서 구경할 차례다. 골목 양쪽으로는 기념품 가게와 길거리 음식점들이 수두룩했다.

 

 

엿을 판다는 말이겠지? 자기구 특산품이란다.

 

 

옷을 빌려입고 기념촬영을 하는 곳인가보다.

 

 

마을 이름이 자기구라는 것은 옛날부터 도자기가 유명했다는 뜻이겠다. 도자기 가게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다.

 

 

자기구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이쁜 자기(自己)야, 자기(瓷器) 하나 사줄까?" 젊었단 날, 아내와 함께 여길 왔더라면 그런 말장난을 했을 것 같다. 

 

 

대나무로 만든 컵이 보였다. 하나 사려다가 참았다. 배낭여행자의 짐은 가벼울수록 고생을 적게하기에 참았던 것이다.

 

 

비를 맞으면서 가게앞을 손보는 노인이 보였다. 추울텐데.....

 

 

찻집이 보였지만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사방이 다 트여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은 고개를 넘어갔다. 어느새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모여들었다.

 

 

고갯마루 찻집 부근에 부겐빌리아 꽃이 피어있었다. 이 겨울에....

 

 

가게마다 별별 요상한 것을 다 판다. 그만큼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있다는 말이겠지.  

 

 

골목 곳곳에 조각품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굵은 막대기 하나를 이용해서 물건을 옮겨주고 생계를 이어가는 쿠리(苦力)이리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워낙 쓰다듬어서 그런지 코와 모자와 팔부분이 반들거렸다.

 

 

오늘날에도 중국 대도시의 시장에 가보면 짐꾼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중국이라고 빈부의 차가 없을까? 겉만 사회주의이고 속은 자본주의로 변해버린 중국의 빈부격차는 우리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가 항상 그렇게 흐르지 않았던가? 사회혼란기에는 반드시 관료들의 무능과 부정부패가 있었고 거기에 수반되는 극심한 빈부격차는 항상 혁명을 불러왔다는 사실말이다. 혁명에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었다.

 

 

최근 수십년동안 눈부시게 성장한 중국경제의 발전상 뒤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암덩어리가 커져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골목에서 예쁜 엽서가게를 발견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같이 예쁘기만 하다.

 

 

나는 엽서 한 통을 샀다. 12장들이 한통에 20원을 주었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엽서라도 한장 보내주기 위해 샀다. 지난 연말에 내가 주최한 음악회에 참석했던 아이들에게만 보낼 것이다. 

 

 

엽서를 사서 작은 가방에 넣은 뒤 나는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덩치좋은 사내가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위로 그리고 어깨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이 삶의 무게가 되어 밑으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