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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중경의 보석 자기구 2

by 깜쌤 2016. 3. 8.

 

돌로 포장한 골목 양쪽으로 전통양식을 지닌 집이 양쪽가로 가지런히 늘어선 곳! 자기구는 그런 곳이었다. 골목으로 면한 곳은 하나같이 가게들이었다.

 

 

별별 음식들이 다 팔리고 있었다. 오리대가리 요리들이겠지. 어찌보면 몬도가네 스타일이다.

 

 

자기구라는 동네를 따라 이어지는 중심 골목이 강변을 향해 길게 뻗어있다면 이번에는 그 중심부에서 방향을 90도로 틀어 걸어보기로 했다.

 

 

솜사탕가게라고 해야하나? 이름 하나는 예술적으로 붙여두었다. 예술면화당!

 

 

나는 달인이 만드는 솜사탕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달인이라 칭할만 하다. 그녀의 손끝에서 솜사탕이 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두개를 사서 뜯어먹어보았다. 연한 핑크색만큼이나 맛도 연하고 달았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덩어리처럼 만들어 손에 들고 빠른 속도로 칼로 베어 끓는 물에 던져넣어 익히는 묘기를 보이는 국수! 그건 도삭면이고 이집은 단단면 집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도삭면과 단단면을 착각했었다.

 

 

단단면 집을 지나 조금 더 동쪽으로 내려가자 입구가 나타났다. 그렇다. 여기가 정식 입구다.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중국 입장료는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할 정도로 비싸다. 비싸도 지나치게 비싸다.

 

 

정문 앞으로는 4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그 건너편에도 전통양식을 살려지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호텔도 있었다. 자기구만을 볼 생각이라면 여기와서 하루쯤 묵어보는 것도 좋겠다. 중국공산혁명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홍암촌도 자기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므로 여기 와서 묵으면서 사적지를 찾아보는 방법도 괜찮겠다.

 

 

입구를 보고 섰을때 왼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나는 다시 정문을 지나 골목으로 발을 내디뎠다. 

 

 

서양인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글씨가 바로 예술이 된다는 사실이다. 서양인들도 필기를 하지만 글씨를 가지고 예술품으로 인정해주는 나라가 서양에는 거의 없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예외다. 글씨도 어엿한 예술이 된다. 당신의 이름이 바로 그림이 된다는 광고판을 내세우고 손님을 모으고 있었다.

 

 

종가원! 종(鍾)씨 집안의 살림집이겠지만 규모가 으리으리한 모양이다. 입장료를 받기에 들어가지않았다.

 

 

온갖 그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오드리 헵번, 해리 포터 영화의 주인공 배우...  왜 이름이 가물가물해지는지 모르겠다. 마를린 먼로, 마이클 잭슨, 스티브 잡스.... 많기도 하다.

 

 

청나라시대의 서당격일까? 한림이라는 글자가 다 보였다. 용은서화사라는 간판도 보이고 안에는 차를 판다는 깃발까지 나부꼈다. 그렇다면 안들어가볼 수가 없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집이 은근히 깊었다. 용은이라고 하면 용이 숨었다는 말이다. 알고보면 여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용안, 용상, 곤룡포

 

이 낱말에는 모두 공통으로 용 용(龍)자가 들어간다. 임금과 관계있는 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렇다면 용은이라고 했으니 왕이나 황제가 숨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명나라의 초대황제는 주원장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기를 명태조 홍무제라고 한다. 그의 아들이 일찍 죽었기에 장손을 2대 황제로 앉혔다. 그가 혜제다. 혜제는 숙부가 되는 연왕에게 황제의 자리를 뺏기고 도망을 쳤다. 

 

연왕에서 3대 황제로 등극하여 신분을 바꾼 영락제는 조카를 찾아내서 죽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혜제는 중경으로 탈출하여 자기구 부근에 있는 보륜사에 숨어 승려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그 정도만 알면 왜 이 부근에 용은이라는 말이 많은지 이해가 될 것이다. 청나라 시대의 서당을 나온 나는 계속해서 골목을 떠돌았다. 

 

 

어라? 보라색 국수면발을 아주 특이하게 뽑아내는 곳이 있다! 그는 흥에 겨워 노래를 불러가며 반죽을 두드렸다. 보라색 면발이 굵은 빗줄기마냥 밑으로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나라가 커서 그런지 별별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다 있다. 동작 자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도 좋았던데다가 고귀한 느낌을 주는 보라색 면발까지 좔좔 뽑아내고 있으니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많은 이들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물론 어리바리하기 짝이 없는 나도 그 가운데 한명이었다.

 

 

온갖 것들이 다 있다. 워낙 먹거리가 다양한 나라여서 그런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식재료들이 다 팔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골목으로 돌아왔다.

 

 

이게 뭐지? 나는 눈을 의심했다. 진주다. 진주! 양식진주다.

 

 

일본에서 바다조개를 이용한 양식진주를 대량으로 생산하는데 성공한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진주값이 폭락하면서 그 귀한 진주를 소비자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 수십년 전 일이 아니던가?

 

양식진주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일반화되어 이제는 민물에서도 조개를 이용하여 진주를 대량생산해낸다. 어떤 이들은 민물조개를 이용하여 진주를 양식한 것은 중국이 먼저였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모우고기라고 했으니 틀림없이 야크고기다. 별별게 다 있다.

 

 

천천히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끝이 가까웠다. 골목 끝머리는 공사중이었다.

 

 

유난히 손님이 바글거리는 가게가 있었다. 작은 꽈배기같기도 하고 라면땅같기도 한 주전부리를 파는 집인데 유독 이집에만 손님이 들끓었다.

 

 

 우리나라 발음으로 하면 이 명품 꽈배기(?) 맛집의 이름은 진마화다.  

 

 

계단을 내려가니 강변이 나왔다. 

 

 

가릉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 맑은 강물도 한번씩은 범람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구 위치는 강변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았다.

 

 

자기구는 옛날부터 중경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홍애동이나 자기구는 일찍부터 상업으로 번성한 곳이었지만 홍애동은 상전벽해가 되어 중경 제일의 번화가로 변했고 자기구는 아직도 전통적인 삶의 흔적을 지닌 곳으로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자기구로 몰려든다. 자기구의 또 다른 강점은 맛집들이 몰려있는 곳이기에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먹거리에 관심이 있다면 자기구 방문하기를 놓치지 말자.

 

 

며칠 동안 잠을 못잔데다가 날씨마저 흐리고 가는 비가 오락가락해서 그런지 몸상태마저 안좋았다. 어디 들어가서 따뜻한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가릉강변 계단부근에서 그런 곳을 찾았다. 유스호스텔이 있었던 것이다. 유스호스텔이라면 영어가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다른 곳보다 싼값으로 커피 정도는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유스호스텔 전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그런대로 따뜻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유스호스텔 맞은편은 찻집이었다. 아메리카노를 한잔 주문했다. 25원이었다. 어느 정도 몸을 녹인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보다는 골목 뒷쪽을 살펴보기로 했다. 언덕위에 살림집들이 보였기에 민가들이 있는 골목탐방에 나서기로 했던 것이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오르자 아이들이 그려진 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부근에 학교가 있다는 뜻이 되겠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 안쪽 끝머리에 학교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방향을 바꿔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언덕의 도시 중경답게 자기구 마을도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골목안에 채소를 키우는 작은 상자들이 보였다. 이런 작은 공간에도 채소를 심어가꾸는 서민들의 알뜰함이 돋보였다.

 

 

서민들의 삶은 어디를 가나 다 비슷비슷하다.

 

 

이번에는 비탈을 따라 옆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걸어보았다. 삶의 터전은 후줄근할지 몰라도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인간이 사는 장소는 더럽지 않아야한다는게 내가 가진 신조가운데 하나다.

 

 

가난과 더러움이 같이있다면 그건 게으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환경이 깨끗하다면 의미가 사뭇 다른 것이다.

 

 

담배꽁초, 휴지하나 떨어져있지 않았다. 이런 것을 보면 중국인들은 우리들보다 한 수 위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의 시민들을 보면 오만정이 떨어질 때가 너무 많다.

 

 

왜 그리 지저분하게 더럽혀놓고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래놓고도 세계적인 관광지 운운하는 것을 보면 침을 뱉고 싶어진다.

 

 

밑으로 내려오자 아까 내가 지나온 골목이 보였다.

 

 

나는 다시 인파로 북적이는 골목으로 돌아왔다.

 

 

골목에는 삶의 열기가 넘쳐흘렀다. 변검을 하는 분일까? 얼핏 보기에는 샌드위치맨같아보인다.

 

 

여기서는 무슨 영화를 찍었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벽에 조화를 달아두었다. 젊은이들이 조각작품 옆에 붙어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불관언(吾不關焉)? 그는 중인왕래(衆人往來)하는 가운데서도 유유자적했다.

 

 

아까 내가 엽서를 샀던 집 앞에는 아가씨 둘이 붙어앉아서 엽서 한장에 낭만어린 글을 날리고 있었다. 

 

 

이심전심?

 

 

자기구 골목에 사는 서민들 어깨 위에는 철학이 살아숨쉬는듯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