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홍애동 절벽에 기댄 명승지 - 홍애동 2

by 깜쌤 2016. 3. 1.

 

홍애동건물이 조각루 양식이라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당연히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여겼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긴 한데 도로까지 내려와서 가릉강곁으로 가보고나서야 조금 깨달았다. 이 도로는 가릉강변을 따라 달리지만 알고보면 허공에 떠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로 밑은 콘크리트로 만든 다릿발이 수두룩한 것이다.

 

 

벽에 기대어 세운 건물은 단층이 아니다. 홍애동에 만들어진 건물은 11층 높이가 된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한다. 나중에 귀주성을 가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묘족을 포함한 일부 소수민족들이 만든 건물을 보면 기본이 삼층이었다.

 

 

제일 아래층은 가축을 기르고 그 위층은 주거공간과 저장고로 쓰는 것 같았다. 조각루는 그런 형식을 띄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지금 홍애동에 새로 만든 건물을 그런 용도로 쓸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진실이 어떻든간에 절벽에 기대어 세운 홍애동은 중경의 명물임에 틀림없다. 안보고 지나친다면 많이 억울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단순한 쇼핑센터로 여기기도하는 모양인데 그런 식으로만 파악한다면 너무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리라.

 

 

옛날부터 홍애동 절벽에는 폭포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폭포수가 흘러 내리도록 해두었다. 나는 절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올랐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가릉강에 걸린 다리는 어디서 봐도 아름답다.

 

 

폭포옆에 새겨진 글짜는 홍애적취(洪崖滴翠)다. 홍애동 폭포에서 날리는 물줄기가 그렇게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어떤 이들은 중경12경 혹은 파유12경에 '홍애적취'가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하는 모양인데.....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중국 바이두에 접속해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분명히 '홍애적취'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원문을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자가 연이어 길게 등장하기에 보기 쉽도록 살짝 편집했음을 알려둔다.

 

 

古巴渝十二景

  

金碧流香    黄葛晚渡    桶井峡猿    歌乐灵音    云篆风清    洪崖滴翠
海棠烟雨    字水宵灯    华蓥雪霁    缙岭云峡    龙门浩月    佛图夜雨

  

6.洪崖滴翠

 

洪崖是指重庆渝中区沧白路以下,临嘉陵江的崖壁,因崖上还有一洞,此处也唤作洪崖洞。在崖顶上的新华路一带曾经是林木苍翠,树多则蓄水,于是一条小溪从山林间渗出,沿大阳沟、会仙桥一直流到洪崖洞附近,形成一道瀑布悬空而下,落至崖间再顺着岩石自上而下地汇作涓涓细流。在少雨的秀节,水就呈星星点点往崖下滴,水珠儿被阳光映透得个个如绿珠碧玉,便有文人骚客们将其称为“洪崖滴翠”。

 

이하생략

 

 

무슨 말인지 대강은 이해하겠으나 우리말로 멋있게 옮길 능력은 부족하므로 원문을 소개하는 정도로만 그치고자 한다. 다시 한번 더 읽어봐도 중국인들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심미안과 표현양식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옛날 건물을 헐어내고 새로 만들면서 해적을 모티브로 삼아 세운 모양이다. 풍만한 몸매를 지닌 여자 해적은 그 자태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제 옥상부근까지 거의 다 올라왔다. 아직도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홍애동 건물의 제일 꼭대기층은 옥상겸 전망대구실을 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왕래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흐름이 살짝 끊어졌을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나는 다시 꼭대기 층에 마련된 옥상난간쪽으로 가보았다. 난간 끝머리에도 도로가 있으니 건물 아래에도 도로요, 건물 위에도 도로가 달리는 기묘한 형상을 갖춘 곳이 홍애동이다.

 

 

기와골을 최대한 살려 조명을 해두었다. 하기사 중국의 기와집과 우리나라의 기와집은 기와 모양이 달라서 기와골을 살렸다고 표현하기가 조금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운치가 흘렀다. 

 

 

파유지방의 십이경(12景) 가운데 하나라는 '홍애적취'를 감상했으니 홍애동에 온 본전은 뽑은 셈이다.

 

 

심미안을 가지고 새로운 미를 찾아내어 관광명소로 만들어나가는 것도 창조경제의 한부분일지도 모른다.

 

 

홍콩야경이 그렇게 좋다고 말하면서 홍콩까지 구경갈 생각만 할게 아니라 서울야경을 세계 최고로 만드는 것은 왜 못하는 것일까?

 

 

관광산업은 공무원들이 어떤 시설을 기획하고 추진한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활력있고 품격있는 삶의 모습과 질, 그 자체도 얼마든지 관광자원화할 수 있겠다. 

 

 

나는 거리를 따라 걸었다. 해방비가 있는 번화가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밤에 보는 해방비 거리는 중경의 또 다른 속살을 보여주었다.

 

 

박석을 깐 거리에 빗방울이 묻어 묘한 질감을 선사해주었다. 경주시내 중앙상가 거리 일부 구간에 박석을 깔았다가 이삼년뒤에 홀랑 걷어내는 것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던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몇년이나 할말을 잊었다.

 

 

빛의 거리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애플 회사 매점 출입구에 해당하는 유리기둥 건물이 단연 으뜸가는 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니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전구로 장식한 거리를 걸으면서 프랑스 영화를 떠올렸다.

 

 

내가 프랑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길거리 스피커에서 샹숑만 흘러나오면 그런 기분과 분위기는 더 완벽해질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중경의 밤거리에는 잔잔한 음악이 없었다. 사람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애달픈 목소리가 없다는게 흠이었다.

 

 

에디뜨 삐아쁘의 음악이 흐르면 환상적일 것이다. 아니, 아다모의 노래도 좋을 것이다.

 

 

카메라를 갖다대는 곳마다 엽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 전체가 흐느끼는 것 같았다.

 

 

야경에서 이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는 도시가 얼마나 되던가?

 

 

나는 아다모의 샹송 가사를 바꿔 <비가 내리네>로 바꿔부르면서 거리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잘 있었어?"
"그냥 그냥 너한테"
"미안해"

 

 

 

 

꿈에 그리던 따스한 미소가 안개비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이슬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빗속에 사라지네

랄라...우우우우..

 

 

  

 

비가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비가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

 

  

 

에 그리던 따스한 미소가 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보슬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빗방울에 가리네
라라...우우우우..


 

빨간색 글자는 원래 샹송이 가진 가사를 바꾸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앞에 걸어가는 사내는 휘청거렸다.

 

 

그는 우산도 받지 않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듯 했다.

 

 

등이 넓은 그 사내는 이러저리 휘청대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조차 그는 외로워보였다. 

 

 

무엇이 그를 휘청거리게 만든 것일까?

 

 

박완서의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의 사연이 그를 슬프게 만든 것일까?

 

 

억만금의 가치를 지닌 명품을 안겨준다고 해도 그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홍콩 영화 <중경삼림 重慶森林>속에 등장하는 중경과 중경직할시의 중경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그렇게 걸어 숙소부근의 식당까지 갔다.

 

 

이젠 저녁을 먹어야한다.

 

 

나는 돼지고기 볶음과, 밑에는 계란찜을 깔고 위에는 고추를 듬뿍 올린 수상한 반찬을 골랐다. 18원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300원짜리 식사일 것이다. 

 

 

함께 했던 분은 채소 중심으로 식단을 짰다. 

 

 

식사후 호텔에 돌아와 몸을 눕혔다. 나는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이대로 중경을 떠나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개비에 젖어있는 이 도시를 그리 쉽게 휙 떠나는 것은 백범 선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도 여겼다. 내일은 중경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리라.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