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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터키 중부 산악지대의 숨은 보석 디브리 2

by 깜쌤 2016. 3. 7.

 

호텔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조금 걸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4차선 도로를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섰더니 갔더니 마을 중심부가 나왔다. 

 

 

제법 많은 가게들이 나타났다.

 

 

펜시온이라고 불리는 건물도 손님들을 받을 것이다. 소규모지만 호텔들이 몇개 있었다.

 

 

이런 숙박시설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마을 안에 들어와서 하루밤을 묵었을 것이다. 

 

 

'는느'호텔로 발음하는지 '닌니'호텔로 읽어야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름을 가진 호텔도 있었다.

 

 

우리는 호텔을 오른쪽옆으로 놓아두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는 하는 것은 울루 자미다.

 

 

우리는 저 밑에서부터 도로를 따라 걸어왔던 것이다.

 

 

현대화된 골목을 벗어나 안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옛날 집들이 나타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디브리를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해두고 있었다.

 

Divriği, historically known as Tephrike (Greek: Τεφρική Tephrike, Armenian: Տեւրիկ Tewrik) and formerly sometimes called Divrik, is a small town and a district of Sivas Province of Turkey. The town lies on gentle slope on the south bank of the Çaltısuyu river, a tributary of the Karasu river.

 

 

디브리는 옛날부터 테프리케라고 불려왔단다. 때로는 디브릭이라고 불렸던 모양인데 찰트수유 강가의 경사진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소개를 해두었다. 

 

 

동로마제국 시대 이전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영토였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뒤에도 아르메니아인들이 살았다. 

 

 

이제는 이슬람화된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아르메니아인들의 흔적은 거의 사라진듯 하다.

 

 

조금 더 올라가자 또 다른 폐가 한채가 나타났다.

 

 

오스만 투르크 말기의 건축물인가보다.

 

 

폐가 안을 살폈더니 남은게 거의 없었다.

 

 

동네는 고즈넉했다.

 

 

집 앞에 세워둔 차는 꽤 오래된 디자인을 지녔다.

 

 

동네 한쪽엔 양철로 사방을 두른 집도 보였다.

 

 

사방에 가득한 갈색대지와 붉은 지붕이 잘 아울리는 동네였다. 

 

 

이런 집에는 누가 사는 것일까?  이 집은 에비 하우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안내판을 보니 서기 1800년에서 1825년 사이에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우리는 울루 자미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성채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성채로 가는 길은 다 파헤쳐두었다.

 

 

젊은이들이 일을 하고 있길래 다가가보았다. 영어를 조금 말할 줄 아는 젊은이가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발굴 작업중이라고 한다. 내가 울루 자미에 가는 길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산꼭대기에 있는 또 다른 자미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앞장서서 걸었다.

 

 

굳게 잠긴 철망 문을 열고 우리를 안쪽으로 이끌었다.

 

 

아침에 호텔방에서 보았던 산비탈의 벽은 성채였던 것이다.

 

 

잠깐 뒤돌아보았더니 디브리 마을이 발밑으로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우리를 끌고 온 젊은이는 위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하더니 허락을 얻어냈다. 그들의 친절이 고마웠다. 

 

 

디브리는 확실히 산비탈에 자리잡은 마을임에 틀림없다.

 

 

이런 동네에 세계문화유산이 남아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조금 위쪽으로 성벽이 보였다. 

 

 

산비탈은 발굴 작업의 원활화를 위해 일부러 태운듯 하다.

 

 

그 와중에 이 나무가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듯 하다.

 

 

이제 성문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여기 이 산비탈에 성채를 쌓아올린 사람들도 정말 대단하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도 보이고 기차역도 보였다.

 

 

지금은 갈색이 주류를 이루지만 풀이 자라나는 계절에는 푸르름이 가득하리라.

 

 

성문이 보인다.

 

 

더 아래쪽에도 성벽이 있었던 모양이다.

 

 

성문 앞에서 내려다보니 호텔과 기차역이 더 확실하게 보였다.

 

 

성안은 발굴중이므로 발굴지의 사진촬영은 금해 달라는 당부를 받았다.

 

 

이제 성채 안으로 들어간다. 성문은 아치 모양이었다.

 

 

이 성채를 쌓아올린 것은 아르메니아인일까? 아니면 비잔틴 제국의 군민들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투르크 사람들이었을까?  

 

 

우리는 방금 저 문을 통과해서 성채 안으로 들어왔다. 

 

 

발굴 연장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긴 집터였던 모양이다.

 

 

더 이상 쵤영은 허락되지 아니했기에 젊은이를 따라 산 꼭대기의 자미를 향해 걸었다.

 

 

정상 부근에 다가서자 강줄기가 얼핏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미 근처에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디브리 방문의 보상은 충분히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곡을 따라 흐르는 강은 구비구비 이리저리 마구 감돌아 흐르고 있었다. 강비탈을 따라 작은 길이 실핏줄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눈앞에 이슬람사원이 단아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지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도를 클릭하면 아주 크게 새로 뜰 것이다.

 

 

 

1 - 디브리 기차역

2 - 시영 호텔

3 - 울루 자미 : 세계문화유산이다

파란색 점 - 산꼭대기의 자미

초록색 점 - 시외버스 터미널(=오토 가르)

 

지금 우리는 3번 지점을 향하여 산비탈을 걸어 오른 것이다.

 

 

산비탈에는 성벽을 쌓고 안에는 예배장소를 만들었다는 말이겠지.

 

 

한쪽면은 완벽한 절벽이었다.

 

 

그런 절벽 꼭대기에 자미가 있었던 것이다. 내부는 출입금지였다. 아쉽다.

 

 

자미 너머로 산비탈에도 마을은 이어지고 있었다.

 

 

절벽 밑에서 치밀어올라오는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중천에 떠오른 해가 강줄기에 빠져있었다.

 

 

디브리 마을의 전모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