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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터키 중부 산악지대의 숨은 보석 디브리 1

by 깜쌤 2016. 3. 2.

 

기차는 협곡을 따라 달렸다. 포플러가 심겨진 마을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가기도 했고 이리저리 주름지고 파인 골짜기들이 슬며시 다가왔다가 뒤로 밀려나가기도 했다.

 

 

야쉴레르 기차역에 도착한 것이 오후 6시 12분이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강원도 첩첩산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오후 6시 17분에는 귈뤼바으역을 지났다. 이후로는 계속해서 터널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는 숨바꼭질을 반복했다. 산악이 그만큼 험하다는 말이 되겠다. 

 

 

오른쪽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가 계속되고 있었다.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었다. 울퉁불퉁한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진 산들이 한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란의 이스파한에서 시라즈 가는 길목에 이와 비슷한 경치를 지닌 곳이 있었다.  

 

 

이런 황량한 곳에 호수가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그게 다 케반댐 덕분이겠지만.....

 

 

내 앞자리에 앉은 젊은이는 일리취역에서 내렸다. 그는 나에게 친절한 미소를 남기고 사라져갔다.

 

 

해넘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나는 속이 타기 시작했다. 목적지에는 밤에 도착하면 여러가지로 곤란해진다. 나는 배낭여행 안내서를 꺼내 호텔을 검색해두었다.

 

 

디브리역 부근에 어떤 호텔이 있는지 미리 확인해두었다. 오후 6시 52분경에 해가 졌다. 아다테페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 5분이었고......  스마트폰으로 확인해본 지도에 의하면 거의 다온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이 여름이라는게 천만다행이다.

 

 

마침내 디브리 역에 도착했다. 오후 7시 40분이다. 사방이 컴컴해졌다. 

 

 

 디브리에서는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았다.

 

 

역플랫폼에는 불이 환하다. 지도를 살펴보니 시가지는 기차역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일행을 재촉해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내가 점찍어둔 곳은 타쉬바쉬 벨레디예 호텔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호텔이지만 워낙 인기있는 곳이라 예약은 필수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윌를 위해 남겨둔 방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택시를 타고 호텔 이름을 적은 종이를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운전기사는 역뒤쪽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를 달려 간단히 벨레디예 호텔에 도착했다. 방이 없으면 다른 호텔에 가서 찾아봐야했기에 택시를 대기시켜두고 로비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천만다행으로 방이 있었다. 그리 멋진 시설은 아니었지만 밖이 캄캄하니 다른 대안이 있을리가 없었다.

 

택시 요금은 10리라였다.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처음에 그렇게 약속하고 타고 왔으니 번복할 수 없었다. 기분좋게 지불했다. 호텔 요금은 트윈베드룸이 80리라였다. 1인당 40리라를 주고 묵는 셈이다. 

 

 

하루 종일 기차를 탔으니 몸이 많이 피곤했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한다. 호텔 뒷마당에 야외용 테이블을 깔아두고 부분 조명을 하는 전등을 켜둔 가운데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아다나 케밥을 주문했더니 음식과 함께 빵이 나왔다. 12리라다.

 

 

저녁을 먹고나니 벌써 밤 9시가 되었다. 많이 늦었지만 일행을 모아 예배를 드렸다. 그날 밤 나는 참으로 이상한 경험을 했다. 스마트폰은 분명 패턴암호로 잠겨져 있었고 방안의 텔레비전 스위치도 꺼두었는데 내가 스마트폰의 스위치를 건드리는 순간 암호가 풀리면서 저절로 스마트폰이 켜진 것은 물론이고 거기다가 텔레비전에 전원이 들어오면서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어서 한참을 생각해보았지만 도저히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다른 글에서 슬며시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살아오면서 참으로 신비한 경험을 많이 해본 사람이다.

 

젊었던 날 점쟁이 생활을 할 때는 내가 죽을 날짜를 알아내기도 했고, 의사선생님도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내린 병이 깨끗이 낫는 기적을 체험했으며, 인간이 아닌 영적인 존재를 내 두눈으로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벌어졌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아침 7시반에 식사를 하기로 했기에 일찍 눈이 떠졌다. 창가에 붙어서서 호텔 주위의 환경부터 살폈다. 어제 밤에 잔치가 벌어졌던 공간은 뒷마당 끝머리에 있었다. 

 

 

 몽골인들의 파오처럼 보이는 둥근 천막속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열렸던 모양이다. 우리가 호텔에 들어섰을땐 파장 분위기였다.

 

 

초록 지붕을 가진 곳이 요리대다. 우리는 어제 야외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었던 것이다. 검게 타버린 언덕 밑으로 철길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영동선의 승부역을 떠올렸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골짜기만 두고 살핀다면 유년 시절의 추억이 아주 조금, 딱 한 장면으로만 남아있는 승부역 철도관사옆 분위기였다. 그게 벌써 몇십년전의 추억이던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험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어제 저 골짜기를 따라 왔었던 것이리라.

 

 

맞은 편 산 위에 성채 비슷한 것이 보였다. 나중에 우리는 저기에 올라가보게 된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산꼭대기의 건물은 자미였고 산을 둘러싼 벽은 성벽이었으니 성채가 맞았던 것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디브리 마을이 보였다. 그리 큰 마을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 세계문화유산이 하나 숨겨져 있다. 우린 그걸 보기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의 글을 검색해보았는데 디브리에 관해 글을 쓴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냥 슬쩍 스쳐지나간 여행자는 있어도 실제 와서 자세하게 살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험준한 산에 가려서 그런지 아직 호텔마당에는 아침햇살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호텔 복도끝에 가서 동북쪽을 살폈다.

 

 

사방이 산이었다.

 

 

호텔 부근에만 푸르름이 조금 살아있었다.

 

 

드디어 마당에도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은근히 기대가 된다. 호텔에 관한 전반적인 느낌은 관리가 좀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디브리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시와스라고 하는 큰 도시가 나타난다. 지금 눈에 보이는 곳이 시와스방향이다.

 

 

디브리 기차역도 저 아래로 보였다.

 

 

어느 정도 호텔 주위를 살펴본 뒤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개인이 직접 운영한다면 이보다는 상태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열쇠가 부실해서 그런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힘이 들었다.

 

 

식당은 1층에 있다. 호텔 요금속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던가?

 

 

계란과 치즈, 오이와 토마토, 그리고 올리브 절임..... 

 

 

빵은 무제한 공급되니 배부르게 먹을수 있었다.

 

 

속이 촉촉해서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빵맛이라면 단연 터키가 으뜸일 수도 있다. 

 

 

방에 올라와서 외출 준비를 하면서도 눈은 연신 뒷마당으로 향했다.

 

 

호텔 앞마당에 가서 나는 다시 기차역 방향을 살폈다. 기차역에서 이 호텔까지 10리라를 받았다면 그 택시기사는 요금을 적게 받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과 호텔 사이의 마을 풍경이다. 어제 텔레비전을 보았더니 황당한 장면이 나왔다. 경남 거제에 사는 이탈리아인이 철물점에 가서 못을 사려고 했는데 6개에 만원을 달라고 했던 쓰레기같은 인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바가지를 씌우는 그런 인간들이 나라망신을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관광산업의 앞날을 망치는 장본인들이다. 관광산업의 핵심은 인간이지 시설과 경치가 아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앞마당의 모습이다. 미남 ㄱ사장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울루 자미의 위치를 찾아내서 미리 확인해두었다.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걸어가기로 했다. 

 

 

성채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것으로 파악했기에 일단 마을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내리막길을 따라 가면 디브리 기차역에 이른다. 반대쪽으로 가면 디브리 마을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마을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이 산악지방의 집들은 거의 다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을 지닌 집에 살고있었다.

 

 

도로가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인도는 넓고 크지만 관리상태가 열악했다.

 

 

성채 아래 위 풀밭은 일부러 불태운듯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산비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슨 공사중인것 같았다. 성채를 재건하는 것일까?

 

 

어느덧 마을까지 쉽게 걸어와버렸다.

 

 

시골동네 버스승강장이다.

 

 

마을 초입에 공용수도가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마을 안에 게스트하우스와 호텔들이 몇개 보였다. 진작 알았더라면 마을 안에 와서 묵는 것인데......

 

 

우체국과 은행도 있었다. 가만있자, 아무래도 환전을 해두어야 할 것 같은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