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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서 1

by 깜쌤 2016. 2. 12.

 

중경에서의 둘째날이 밝았다.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지(=옛터)에 가볼 생각이다. 바이두 지도를 통해 위치를 찾아두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두는 장소이기에 큰 기대가 되었다. 



호텔 요금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어디가서 아침식사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복도끝에 가서 아래를 살폈더니 아침부터 안개가 가득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슬비같기도 했다. 충칭(=중경) 날씨가 이게 뭔가 싶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은 25층과 26층을 쓰는 것 같다. 복도에는 카펫이 깔려있었다. 카펫 무늬가 독특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오니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엄청 긴 줄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건물이 높으니 여러 회사나 단체의 사무실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나한사를 앞에서 바라보니 위용이 대단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산을 들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마천루들을 호위무사 마냥 거느리고는 턱 버티고 서있는 절이니만큼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침 9시가 넘었는데도 길거리가 컴컴하게 느껴졌다. 날씨탓인지 아니면 경도상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원인을 잘 모르겠다. 중국은 그 큰나라에서 하나의 시간대를 쓴다. 그러니 경도의 차이에서 오는 시간차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임시정부유적지를 가려면 중경시내 중심부를 거쳐가야만 했다. 중경의 최고 번화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만두국 가게를 발견했다. 잘됐다. 만두국이라도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음식 주문하는 것이야 식은죽 먹기다. 한자를 알고 있으니 뭐가 무슨 음식인지 기본은 알고 있기에 큰 고민을 할게 없었다.



일단 담백한 것으로 주문했다. 잘 알다시피 중국인들은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는 편이다. 죽가 함께 기름에 튀긴 꽤배기 비슷한 간편식인 요우타이를 먹거나 두유 정도에 해당하는 또우장을 마시는 정도다. 사람에 따라서는 국수를 먹기도 한다. 우리는 만두국을 먹기로 했다. 



만두국 한그릇으로 속을 채운 후 해방비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걸었다. 중경의 최고 번화가는 해방비가 있는 곳이다. 비가 좀 더 많이 오는 것 같기에 우산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큰 배낭에 넣어온 것은 2단으로 접을 수 있는 우산이었다. 그녀석을 들고 다니기에는 아무래도 거추장스럽기도 했고 아침부터 판단을 잘못 했기에 우산을 호텔 방안에 놓고 나오는 실수를 해버렸다. 근처 반지하 아케이드에 들어갔지만 우산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가게가 나타났다. 긍덕기라고 이름붙인 중국인들의 센스가 놀랍기만 하다.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가득 단 나무들 때문에 거리가 한결 어둡게 느껴졌지만 이 나무들이 밤이 되면 풍경을 일변시키는 구실을 한다.

 

 

꽃양배추들도 심어두었다. 제법 예쁘다.

 

 

중경의 번화가다. 해방비가 있는 거리가 중경 최고의 번화가로 알려져 있다.

 

 

마침내 내 눈에 해방비가 들어왔다. 거리 한복판에 보이는 탑같은 것이 해방비다. 빌딩 사이에 끼어 장난감 작은 바늘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엄연한 탑인 것이다. 

 

 

멀리서 잘못 보면 이집트산 오벨리스크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무가지마다 엄청난 수의 전구알이 염주 주렴을 드리운듯이 매달고 있었다. 밤이 되면 장관을 이룰 것이다.

 

 

빌딩 꼭대기는 비구름에 가리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거리가 어두컴컴했기에 광고판이 조명구실을 했다.

 

 

가로등 밑둥치에 꽃양배추를 매달듯이 심어 놓은 것은 처음보는 장면이다. 중국인들의 상상력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희래(薄熙來) 사건이 기억나는가? 보시라이 사건말이다. 그가 바로 중경시 당서기였다. 중경은 직할시다. 중앙에서 직접 관리하는 직할시는 중국에 4개뿐이다. 북경, 천진, 상해, 중경!

 

 

중국 4대 직할시의 당서기였다면 엄청난 자리다. 그런 중책에 있던 박희래(薄熙來 보시라이)가 걸려든 사건이라면 초대형사건이라는 말이 된다. 

 

 

중경이라는 도시가 차지하는 위상이 보통 넘는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직할시에 거주하는 인구만도 3천만명이 넘고, 면적 또한 우리나라 남한만하니 그저그런 시시한 도시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어마어마한 도시의 중심부에 발을 딛고 서있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사방의 빌딩에는 명품을 소개하는 광고판들이 줄을 이었다.

 

 

구찌!

 

 

까르띠에!

 

 

명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명품점들 사이에 턱 끼어든 스타벅스 커피점! 나는 21세기를 대표하는 미래도시에 와있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구경하는 김에 해방비 부근 건물들을 조금더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이 자랑하는 4대 직할시의 번화가니까.

 

 

빌딩들 틈비구니에 광장이 하나 자리잡았다. 국태광장이다. 국태광장 한켠에 멋진 유리건물이 들어서있다. 투명한 유리 구조물 속에 매달린 사과 하나!  누가 봐도 애플이다. 지하에 애플매장이 있는 것이다.

 

 

거리에는 담배꽁초하나 보이지 않았다. 비에 젖은 돌바닥이 반들거렸다.

 

 

빌딩 한쪽면을 커다랗게 채운 광고판에는 한복입은 아가씨가 두손을 잡고 공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밑에 정형이라는 낱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성형광고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기분이 착잡했다.

 

 

한국여성들은 모두 성형미인이라는 말인가? 외국인들가운데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듯 하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를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니 아이들의 체형과 얼굴 생김새가 변화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꾸준하게 관찰한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단언컨데 우리 아이들의 얼굴은 확실히 백인형으로 변하고 있으며, 장차 미녀와 미남이 될 소지를 가진 아이들이 엄청 많아졌다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건 얼마든지 장담할 수 있다.

 

아이들의 체형도 엄청 많이 달라졌다. 여자아이들은 5학년 2학기가 되면 신체가 부쩍 커오르기 시작해서 6학년 2학기 정도가 되면 거의 다 커버리는 경우가 많다. 성장이 빠른 아이들은 뒤에서보면 아가씨인지 초등학생인지 구별이 안된다. 그런데 하나같이 늘씬하다. 늘씬한 체형을 지닌 아이들의 비율이 예전과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   

 

 

수십년을 봐왔으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여성들을 싸잡아서 성형미인으로 인식한다면 그건 엄청난 오해며 엄연한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내가 만약 얼굴과 체형변화를 연구하는 학자였다면 우리 아이들의 옆모습과 앞모습, 그리고 신체검사 자료를 해마다 수집해서 보관해왔을 것이다. 


아이들의 신체검사결과는 나이스(NEIS)라고 하는 곳에 다 저장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쉽게 변화상을 분석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 모습을 조직적으로 사진 찍어두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약 오십여년 정도의 세월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면 얼굴과 신체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나갈 것인지 대강 짐작해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소득과 영양상태, 식생활 모습과 주위환경과 위생상태 및 혼혈여부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정밀분석하면 우리 민족의 얼굴과 신체변화 추이를 얼추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연구해볼 것도 많은게 인생이지만 이것 저것 다 할 수 없었다는게 유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생을 낭비한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 동안 세계 여러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확실히 우리 민족이 중국인과 일본인들과는 다른 그 어떤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듯 하다는 것이다.

 

그러길래 우리 조상들은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우선 나라부터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을 것이다. 나는 지금 대한민임시정부 옛터를 찾아가는 중이다. 얼굴과 신체 관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닌 것이다.

 

다만 우리 민족의 외모에 대한 일부의 오해를 풀어나가려는 것 뿐이다. 성형이 과다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여성들 모두가 성형미인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다.   



대형 유리로 단장한 애플매장에 들어가보려다가 아직 개점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는 돌아나와서 부근의 대형수퍼마켓에 가서 3단으로 접는 우산을 하나 구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그저 해방비 부근을 뱅글뱅글 도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원래 중경이라는 도시는 언덕위에 건설된 도시였다. 그러니 도로가 반듯반듯하지 못했다. 도로가 격자모양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말은 길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된다. 거의 한시간동안이나 주위를 맴돌다가 마침내 해방비가 있는 번화가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말았다. 그러면 구체적인 상황파악을 위해 아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지도가 작다고 불평하지 말고 클릭해보기 바란다. 그러면 제법 크게 뜰 것이다. 두개의 강으로 둘러싸여 강아지 대가리(짐승은 대가리라고 해도 천한 말이 아니다)나 개 혓바닥처럼 보이는 곳이 중경의 중심부다.  가운데 찍혀있는 빨간점이 양로구 지하철역을 나타내고 오른쪽의 빨간색 점은 소십자 지하철역을 의미한다.


두개의 지점 사이를 빨간색 선이 연결하고 있는데 이는 지하철 노선을 나타낸다. 그 노선 가운데를 보면 교장구라는 지명이 등장할 것이다. 그곳 위치를 파악해두면 앞으로 임시정부를 찾아가는데 엄청 도움이 될 것이다.  두번째 지도를 보자.




지하철 역 교장구 2번 출구를 나오면 큰길이 보이는데 화평로다. 화평로에서 갈라져 나온 길이 신민가인데 신민가를 따라가다가 골목으로 접어들어 한두번만 모퉁이를 꺾어돌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나오게 된다. 바이두 지도를 보니 위치는 표시되어 있어도 실제 길찾기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세번째 지도를 보자.




이번에는 칠성강 지하철역에서 찾아가는 방법을 표시해두었다. 중산1로를 따라가면 되는데 그게 더 쉬울 것 같다. 우리는 해방비에서부터 출발하여 찾아가느라고 고생을 많이했다. 길도 꼬불꼬불해서 더 힘들었다. 해방비에서 찾아갈 경우에는 신민로를 찾는게 급선무가 될 것이다. 



몇번이나 실패를 한끝에 해방비 부근에서 근무하는 경찰에게 신민가의 위치를 물어 방향을 잡았다. 빌딩 뒤에 숨어있는 시장통을 지나고나서야 마침내 신민가를 찾을 수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길은 산으로 올라가는지 약간 경사도가 있는 길이었다. 중경이 언덕위에 만들어진 도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옛날 성벽이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갔더니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골목이 또 나타났다. 이제 다 온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서 골목끝에서 돼지고기를 파는 난전 아줌마에게 종이에 써서 위치를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켜주었다. 우리가 미심쩍어하자 아줌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앞장서서 걸었다.



바로 이 분이다. 난전에서 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골목 안쪽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냥 찾아갔더라면 또 한참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돌아올때 살펴보니 돼지고기를 팔던 난전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다음 글에서 계속하자.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