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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아! 아니(Ani)! - 1

by 깜쌤 2016. 2. 3.

 

새벽 5시가 지나자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둠과 고요함에서 드러난 사물들 속에서부터 소란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묵고있는 방은 골목쪽으로 붙어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적었다. 새벽부터 모스크에서 울려퍼지는 아잔 소리가 제일 시끄러웠다.

 

 

오늘은 아니 유적지에 가보기로 한 날이다. 우리 일행이 터키 동부의 오지까지 찾아온 이유는 그것 하나뿐이다. 8시에 출발하기로 어제 약속했었다.

 

 

어제 저녁에 사두었던 넓적한 빵 피데 반조각과 토마토 1개, 자두 1개, 오이 1개로 아침을 때웠다. 호텔비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는줄을 미쳐 몰랐다. 아깝다. 한번씩은 나도 그렇게 바보짓을 하기도 한다.

 

 

우리 일행들이 첼릴씨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밖으로 나가서 동네 분위기를 살폈다.

 

 

남자들은 아침부터 길거리 카페에 모여들어 차를 나누고 있었다. 어딜 가나 불쌍한 것은 여성들이다. 하물며 회교권에서 여자들의 처지는 말해서 무엇하랴? 여성들이 사람 대접을 못받는다는 그런 실상을 잘 모르는 우리나라 여성들 가운데 얼굴 생김새만 보고 회교권 남성들과 결혼을 하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은데 자칫 잘못하면 비극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들을 따라 회교권 국가로 살기위해 가는 순간부터는 한국에서 누리던 자유로운 생활과는 영원히 이별할 각오를 해야한다.  

 

 

미스터 첼릴은 정확한 시간에 우리들을 만나러 왔다.

 

 

IS라는 괴물국가(?) - 사실 그게 나라라고 말하는게 맞는 표현이던가?) - 가 저지르는 테러활동을 통해 이슬람의 호전성과 폭력성을 깨달은 분들이 많았으리라. 나는 코란을 가지고 있기에 한번씩은 읽어보기도 한다.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들이 일반 상식으로 아는 꾸란(=코란)의 내용과는 엄청 차이가 많이 남을 알 수 있다. 

 

 

그가 몰고온 차를 타고 일단 카르스 기차역부터 새로 가보았다. 아무래도 기차표를 먼저 확보해두어야할 것 같았다. 미스터 첼릴부터 그런 면을 정확하게 짚어주니 고마웠다.

 

 

오늘은 대합실 안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크고 넓고 깨끗했지만 이용객이 워낙 적어서 그런지 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다음 행선지는 카이세리였지만 차표가 벌써 매진되고 없었다. 도착시간도 문제였다. 배낭여행자의 경우 어지간하면 목적지에는 아침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숙박지를 찾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자 했던 그 기차는 한밤중에 카이세리에 도착하는 것 같았다.

 

 

미리 호텔 예약을 해두고 가면 좋겠지만 마구 돌아다니는 주제에 그게 어디 사람 마음먹은대로 되는 일이던가? 잠시 고민에 빠진 나는 미스터 첼릴과 상의해서 디브리에 가보기로 했다. 디브리! 거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디브리에 관한 정보는 빈약했지만 '프렌즈 터키'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 여행안내서에 나오는 정보만을 의지하여 한번 가보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일단 내일 아침 7시 45분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확보해두었다. 디브리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아래 지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도를 클릭해보시기 바란다. 그게 이해하기도 좋고 보기에도 훨씬 좋다. 지도를 확대해놓고 보면 현재 우리가 묵고있는 카르스의 위치가 정확하게 드러난다.지도 오른쪽의 빨간색 점이 찍힌 곳이다. 오늘 우리가 가볼 아니 유적지는 분홍색 점으로 표시해두었다. 

 

아니 유적지와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를 짐작해보시라는 뜻에서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의 위치를 파란색 점으로 찍어두었고, 아르메니아인들이 한국인들의 백두산처럼 여기는 아라랏산의 위치는 초록색 굵은 점으로 나타내두었다.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가 플랫폼의 분위기를 살펴두었다.

 

 

내일 아침에는 이 승강대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라도 미리 살펴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다시 대합실로 들어갔다. 동료들과 첼릴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역 앞 마당의 풍광이다. 역구내가 넓어서 세밀하게 관리하기가 어려워 그렇겠지만 역사 앞 화단에는 잡초가 가득했다.

 

 

나는 첼릴의 사진을 찍어두었다.

 

 

카르스에서는 나름대로 유명인사이기도 했고 다음에 이곳을 여행할 우리 한국인들을 위한다는 뜻으로......

 

 

우리는 그의 차를 타고 아니로 이동했다.

 

 

벌써 햇살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이 이렇다면 한낮은 엄청 뜨거울 것이다.

 

 

아니로 이어지는 도로 양쪽은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이었다.

 

 

한번씩은 언덕과 언덕이 만들어내는 작은 골짜기 품에 안긴 마을이 나타나기도 했다.

 

 

차를 타고 달리는 중에 미스터 첼릴은 1915년에 벌어졌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경청했다. 문제는 그가 철저히 터키인의 시각에서 터키의 입장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나는 미스터 첼릴의 인간성을 탓하는게 아니다. 그가 터키인이기에 터키인의 입장에서 1915년의 대학살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사건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르게 쳐다보는 객관성이 문제인 것이다.

 

 

독일인이 아우슈비츠에서의 학살이나 유태인 탄압을 부정하고, 일본인이 중국 남경에서의 대학살 사건이나 하얼빈에서의 731부대 사건을 부인하며, 일본인들이 위안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면 유태인(=유대인, 유다인)이나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가만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스터 첼릴은 미국이나 한국의 크리스찬들이 아니 유적지를 찾아가 아르메니아인들이 당한 비극적인 사건을 전해듣고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오도된 정보를 통해 잘못 알고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그런 식으로 말했었다.

 

 

우리 민족도 일본에 의해 탄압을 받고 수많은 희생을 당해보았기에 가해자가 하는 주장은 별로 신빙성이 없어보인다. 차라리 깨끗이 인정을 하고 잘못을 반성하는게 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터키정부가 과오를 인정하는게 옳은 행동이겠지만 아직도 사건의 핵심을 비켜나가고 있다는게 국제사회의 판단이기도 하다. 

 

프랑스 국회에서 이 사건의 책임은 터키에게 있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이유로 터키 정부는 프랑스와의 여러 부문에 걸친 협력 관계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탄 차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터키의 마지막 마을이다. 대형 터키 깃발이 휘날리는 담장 안에 주차장과 휴식 시설이 존재한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아니 유적지를 향해 걸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 안에 아니 유적지가 존재한다.

 

 

입구부근에 황인종 그룹이 보이길래 나는 우리나라 단체관광객인줄로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들은 중국인과 홍콩인, 그리고 대만인들이었다.

 

 

중국인들이 여기까지 단체로 찾아오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이제 입구로 들어간다. 나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나 오고 싶어했던 장소였던가?

 

 

저 많은 중국인들이 떼거리로 몰려들기 전에 미리 들어가야만 한다. 그들과 휩쓸리게 되면 소란함속에 탐방을 해야하는 비극을 당할 수 있다. 와글거리며 모여있는 단체관광객들은 하나같이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입구로 쓰는 성문은 복원했으리라.

 

 

입장권을 샀다. 8리라였다. 3,500원 정도다. 중국같았으면 0을 하나 더붙여 받았을 것이다. 하얀색 부스 위에 사자 조각상이 보이는가? 중동 지방에 사자가 있었던가 하는 식으로 물어본다면 자신의 무지함을 폭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인도에는 사자가 살고 있다. 지중해 인근의 유럽에도 한때 사자가 살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로마시대 때만 해도 수많은 사자들이 사로잡혀서 원형경기장에서 죽어갔다. 그러길래 예전부터 사자는 왕권과 위엄의 상징이었다. 사자후(吼)를 토했다는 말이 그냥 생겼겠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두시간 반 정도다. 그 안에 그 많은 유적지를 한바퀴 다 돌아야하는 것이다. 찬찬히 보면 한나절은 걸릴 것이기에 대강이라도  보기위해서는 몇시간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성벽은 이중이었다. 너른 평원에 지어진 성채같지만 한쪽면은 강을 끼고 있다. 그것도 비탈이 절벽으로 된 강이다.

 

 

성문을 들어서면 폐허로 변해버린 고대의 도시가 나타날 것이다. 나는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게 정석이란다.

 

 

드디어 안으로 들어섰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누런색으로 말라비틀어진 풀밭과 군데군데 보이는 몇개의 언덕과 그 사이에 숨은 몇개의 돌무더기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무너진 성벽 조금.....

 

 

영토와 종교와 금전을 둘러싼 다툼으로 날을 지새는 인간군상들을 말없이 굽어보는 하늘 아래 한정된 삶을 사는 인생들이 존재하는 곳! 거기가 지구다. 나는 지구위에 붙어사는 개미같은 존재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사랑과 명예와 금전과 쾌락을 쫓아다니는 수많은 인간군상들 가운데 하나인 나!

 

 

아니 유적지에서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폐허때문이었으리라. 우리가 방금 걸어들어온 성문이다.

 

 

나는 성벽을 따라 걸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흩어지고 있었다.

 

 

왼쪽 끄트머리 언덕은 아르메니아 영토다. 사실 아르메니아 영토는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검게 보이는 것들은 단순한 돌같지만 사실은 옛 건축물에 사용되었던 재료들이다.

 

 

저 멀리 보이는 돌무더기 너머가 아르메니아 영토인 것이다.

 

 

나는 무너진 성벽위로 올라갔다.

 

 

우리가 차를 세워두고 온 휴게소가 보였다.

 

 

붉은 색 터키깃발이 허공을 가르며 솟아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렸더니 강변 쪽으로 무너진 예배당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