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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아! 아니(Ani)! - 2

by 깜쌤 2016. 2. 4.

 

터키가 자랑하는 역사도시 이스탄불에는 톱카피 궁전이라는 걸출한 문화재가 존재한다. 톱카피 궁전 내부와 궁전안의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을 잘 살펴본 사람이라면 어디에선가 동양적인 향취가 풍겨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가 잘 아는대로 터키민족의 기원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아시아라는 말이 가지는 개념부터 잘 살펴두어야 오해하는 일이 없다. 원래 아시아라고 하면 오늘날 터키지방의 일부만을 의미했다.

 

 

현대의 세계인들이 쓰는 용어 Asia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을 포함하는 동 아시아와 동남아시아와 남부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중동) 지방을 아울러서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원래의 아시아라는 말과는 엄청 다른 뜻을 가진 낱말인 것이다. 

 

 

그래서 용어가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한하려는 사람들은 아시아소(小)아시아를 구별해서 쓰기도 한다. 소아시아라고 하면 현재 터키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의 대부분 지역을 의미하는 듯 하다.

 

 

현대의 터키를 이루고 있는 핵심민족은 투르크인(Turk人)들이다. 쿠르드인이 아니다. 투르크(=튀르크)의 한자식 표현이 돌궐이고 영어식 표현이 Turkey다. 돌궐이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표현이 아니던가? 

 

 

고구려와 돌궐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우즈베키스탄이 자랑하는 역사도시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에는 고구려 사신들의 왕래를 증거하는 멋진 벽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시지 싶다.

 

 

 

<사진 출처 : 문화일보, 관련기사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12101033730000001>

 

바로 위 그림이다. 너무나 유명한 그림이어서 어지간한 한국인들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지 싶다. 그림 속의 아래 오른쪽 두사람은 허리에 환두대도를 차고 머리에는 깃꽂은 모자를 쓰고 있는데 바로 이들을 고구려의 사신들로 추정한다.

 

 

아니(Ani) 유적지의 사진을 소개하면서 무슨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고 반문하실 분도 많지 싶다. 터키의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면 이런 유적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니 유적지를 두고 가슴아파하는지, 터키가 무엇때문에 이런 귀중한 유적지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투르크인들이 오늘날의 중앙아시아를 떠나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약 천년전의 일이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투르크인들의 조상이 누구였던가를 알기 위해서는 흉노의 역사부터 이야기를 꺼내야하지만 그렇게되면 한도 끝도 없는 글을 써야한다. 나도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하려면 들은 풍월을 읊어야하는 수준이 되고 만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 투르크인들이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일천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전에 여기를 차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였던가하는 의문을 품어야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원래 동부 아나톨리아와 코카서스 남부의 주인은 아르메니아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쿠르드민족의 시조라고 알려진 메데인들도 원래의 주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무게 중심이 기울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굴러온 돌에 해당하는 투르크인들이 박힌 돌에 해당하는 아르메니아인들과 메데인들을 빼냈다는 것이 역사적인 정설이다.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나라에서 만주벌판이 우리나라 영토였다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불성설이 되고 만다. 역사는 엄연한 역사이고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서기 1071년 8월 26일 알프 아슬란이 지휘하는 셀주크 투르크의 군대와 비잔틴 제국의 군대사이에 역사적인 전투가 있었다. 이 만지케르트(=말라즈기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투르크가 승리함으로써 아나톨리아에서 투르크인들의 지배권이 확립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소아시아 지방에 투르크인들이 전면적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알프 아슬란! 아슬란은 사자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한다. 알프 아슬란이 아니(Ani)에 터잡고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을 결정적으로 패퇴시킨 인물이다. 아니 유적지에 입장할 때 성문 위에 있던 사자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지케르트 전투보다 7년 앞선 1064년에 알프 아슬란이 지휘했던 군대가 아니를 수도로 삼고 번성하던 아르메니아 왕국을 멸망시켰던 것이다. 여긴 그런 사연이 깔린 곳이다.

 

 

참고로 투르크족은 그전에 이미 회교로 개종해있었다는게 정설이다. 알프 아슬란은 술탄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음이 그 증거다. 이야기가 엄청 장황하게 길어졌다. 

 

 

나는 성벽위에 올라서서 역사의 흐름을 반추해보았다. 

 

 

이곳 아니가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통한의 땅이겠지만 투르크민족에게는 영광의 땅이 될 것이다.

 

 

고개를 돌렸더니 폐허로 변한 터 위에 간신히 골격만 남은 교회가 보였다.

 

 

"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혹시 이 노랫말을 아시는가?

 

 

이 노래가 들어있는 레코드판은 1932년에 발매되었다. 84년 전에 나온 노래라는 말이 된다.

 

 

이애리수라는 분이 불렀다고 전해진다. 제목은 <황성옛터>!  원래의 제목은 <황성의 적(跡)>이란다.

 

 

나는 아니 유적에서 황성옛터 노랫말을 떠올렸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황성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 그러니까 오늘날의 개성을 의미한다.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아니 유적이 황성옛터나 다름없으리라.

 

 

아! 정말 덧없는 것이 인간사일지도 모른다.

 

 

이런 싸구려 감상에 젖은 삼류 따라지 여행기를 남기는 깜쌤이라는 어설픈 나그네도 나중에는 사라져 흔적조차 없어지리라.

 

 

후세 어느 누구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 것인데 괜히 천년만년 살것같이 악다구니를 치며 사는가보다.

 

 

검게 불탄 언덕이 보이는가? 그쪽이 아르메니아 영토다. 오른쪽 폐허를 지나 수십미터만 더 가면 강이 나타난다. 지금은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깊은 골짜기가 부근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너머가 아르메니아 영토다.

 

 

미스터 첼릴은 계곡 건너편에 러시아군의 미사일 운용을 위한 레이더 기지가 있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아르메니아에 러시아 군대가 들어와 있으면서 터키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도 했다. 성문 안으로 보이는 건너편의 아르메니아 영토를 보며 나는 숨을 죽였다.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때문이었으리라.

 

 

벌판에 우두커니 솟아있는 '순례자의 교회'(혹은 구세주 교회라고도 부름) 건물이 나그네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1957년에 번개를 맞아 구조물의 반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이 허허벌판에 이보다 높은 구조물을 찾기는 어려우니 들판 위를 방황하던 번개인들 그냥 비켜갈 수 있었겠는가 싶다.

 

 

아르메니아의 번영하는 수도였던 아니가 남겨준 돌덩어리들은 따로 모아두었다.

 

 

철강재로 내부를 보강한 반쪽 유적이 간신히 붕괴를 면하고 있었다.

 

 

나는 서글픔을 느꼈다. 설명에 의하면 교회는 서기 1035년경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나는 두나라가 국경을 삼고 있는 협곡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에 타버린 검은색 흔적을 갖고 있는 쪽이 아르메니아 영토다. 일부러 태운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화재였을까?

 

 

절벽쪽에 남겨진 교회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 옛날 목욕탕 하맘의 흔적이 있었다.

 

 

목욕탕 벽체는 흔적만 남았다. 멀리 휴게소가 보였다.

 

 

아니 유적지를 둘러싼 철조망이 나그네의 마음조차 가두어버리는듯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