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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터키 동부의 오지 마을 카르스를 향하여

by 깜쌤 2016. 2. 2.

 

아르트빈은 댐밑 산비탈과 골짜기에 묻어있는 산골도시다.

 

 

당연한 소리지만 댐을 지나면 그때부터 거대한 호수가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가 탄 대형버스는 댐 부근의 휴게소에 들어갔다. 휴게소라고 말하기조차도 부끄러운 간이휴게소다. 

 

 

점심먹을 시간도 없었기에 우리는 뭐라도 사서 먹어야했다. 간이휴게소에는 주전부리로 군것질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과자 봉지 몇개를 집어드는 것으로 만족했다.

 

 

버스여행을 하는 백인 두명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한사람은 체코인이고 다른 한명은 슬로바키아 사람이었다. 공산주의를 했던 여러 나라들이 붕괴하기 이전에 그 두나라는 하나의 국가로 묶여있었지 않았던가?

 

 

바츨라프 하벨!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었다. 체코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그는 벨벳혁명으로 유명해졌던 분이 아니었던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갈라서서 각각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세계적인 모범사례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두명의 백인 청년은 나라는 달라도 친한 친구사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북한은 아직까지도 어찌 그렇게 유치한 놀음을 노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버스는 다시 산을 감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르트빈 마을이 저멀리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며 숨바꼭질하기를 반복했다.

 

 

저 언덕에 버스터미널도 있었고 상점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은 편 언덕 위에는 못보던 건물이 섰다.

 

 

아르트빈 안녕! 우리가 탄 버스는 아르트빈을 뒤로 남겨두고 산모퉁이를 감아돌며 앞으로 나아갔다.

 

 

산비탈을 비스듬하게 잘라낸 도로가 만들어낸 모습이 압권인 곳이 아르트빈이다.

 

 

호수가 사라지고 난 뒤 버스는 산비탈을 따라 한없이 달려나갔다. 예전 요새터라고 짐작되는 폐허가 골짜기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다. 여긴 한때 아르메니아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터키가 강점하고 있는 곳이다.

 

 

이스탄불도 그렇다. 원래는 그리스인들의 터전이었지만 지금은 터키 영토가 되었다. 이스탄불이 그리스 영토라고 말하면 터키인들은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그런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렇게 달려나가던 버스는 다시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한없이 고도를 높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주변 풍경이 고산초원지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무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초원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쯤되면 전형적인 알프스 지방의 경치가 아니던가?

 

 

해발고도가 높아지면 어느 지점부터는 나무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산에는 천연잔디가  깔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리저리 감아오르기를 한없이 반복하더니 마침내 엄청나게 너른 고원지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해발고도가 이천미터는 족히 될 것이다.

 

 

더 높은 곳에 오르자 마침내 사방이 탁 터지기 시작했다. 일망무제!

 

 

땅도 높았지만 하늘은 더 높았다.

 

 

어느 순간부터 멀리 있던 산들은 물결치는 듯한 언덕으로 변했고 언덕과 언덕사이에는 너른 밀밭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트랙터가 추수를 하는 곳도 있었다. 누가봐도 여긴 곡창지대다.

 

 

가끔씩은 방목지가 나타나기도 했다.

 

 

겨울에는 기후가 혹독하게 추울지 몰라도 고산지대의 풍광하나는 끝내주게 아름다운 법이다.

 

 

이렇게 들이 너른 곳에서는 인간의 손으로 농사를 짓는다는게 불가능하다. 기계화 농업은 필수적이리라.

 

 

그러다가 도시가 하나 나타났다.

 

 

아르다한이다. 손님 한두명이 어쩌다가 오르내리기도 했다.

 

 

대학교 건물이 지나갔다. 도대체 카르스는 어디쯤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아르다한을 지나자 4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아스팔트 상태를 보면 새로 만든 도로가 틀림없다. 

 

 

초원의 절개면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두터운 진흙층이 풀밭 밑에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곳에서는 언덕의 경사면을 따라 벌통이 가지런히 놓여있기도 했다. 카르스의 꿀과 유제품은 터키 안에서도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단다.

 

 

하늘이 푸르러서 너무 좋았다. 괜히 내 마음조차 상쾌해지는듯 했다.

 

 

둥근 언덕의 한면에 누가 초대형 걸개 그림을 아름답게 그려 걸어놓은듯이 그런 모습으로 개간을 했다.

 

 

그렇게 또 한참을 달렸다. 신기하게도 울창한 숲이 나타나기도 했다.

 

 

초원위에 주유소가 나타나더니.....

 

 

얼마 뒤에는 참한 도시가 나타났다. 마침내 카르스에 도착한 것이다. 스마트폰을 켜서 구글 지도를 불러낸 뒤 우리 위치를 확인했다. 혹시 시내로 승객을 데려다주는 세르비스버스(=서비스 버스)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더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시내 중심가는 그리 멀지 않은듯 했다. 우리는 걸어서 시내로 들어갔다.

 

 

카르스는 크게 번화한 도시가 아니었다. 촌스러운 냄새가 폴폴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시골 도시였다. 우리는 론리플래닛에 소개된 테멜 호텔에 들어가 방을 구했다.

 

 

오토가르에서 가까웠다.

 

 

도시는 촌스러워도 테멜 호텔은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호텔이었다. 카운터에서 근무하는 청년은 미남이었지만 영어는 거의 할 줄 몰랐다. 1박에 80리라다. 우리돈 3만 3천원 정도라는 말이다.

 

 

체크인을 할때 키가 자그마한 사나이가 엄청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놀랍게도 그는 론리 플래닛에 소개를 해둔 미스터 첼릴이었다. 카르스 여행업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한 사나이다. 그는 흰옷을 입고 있었다. 통통하기도 했고....

 

 

만약에 아니 유적지를 탐방할 계획이라면 자기를 불러달라고 했다. 1인당 50리라로 가능하다고 했었다. 그와 헤어진 뒤 나와 미남 ㄱ사장은 카르스 기차역을 향해 걸어갔다.

 

 

카르스를 떠날 경우 기차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행선지로 카파도키아를 대표하는 도시인 카이세리를 찍어두었었다. 호텔에서 카르스 역까지는 1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기차역 광장 앞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동상좌대 위에 올라선 사나이는 잡초로 가득한 화단을 굽어보고 있었다. 

 

 

카르스 기차역은 노란 색으로 칠해져있었다. 역 앞마당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었다. 싸구려 냄새가 풀풀났다.

 

 

기차역 대합실 출입문은 닫혀있었다. 벌써 근무시간이 끝난 것일까?

 

 

해가 기울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터키 변방의 기차역에서는 러시아적인 분위기가 사방에 깔려있었다.

 

 

다시 시내로 걸어들어왔다.

 

 

시내 뒷골목은 어수선했다. 터키 특유의 분위기다.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의 정확한 위치가 궁금하다면 아래 지도를 눌러보기로 하자.

 

 

 

위에 있는 빨간색 점은 오늘 아침에 출발한 호파의 위치를 나타내고 밑에 있는 빨간색 점은 카르스의 위치를 나타낸다. 카르스는 터키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소도시인 것이다.

 

 

여기 주민들은 어느 민족이 주류를 이루는 것일까? 터키인들일까? 아니면 쿠르드족일까?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여긴 확실히 러시아풍이 강했다. 한때 러시아인들이 점령해서 터잡고 살았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러니 러시아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동부지역 산골짜기에 외롭게 자리잡은 외딴 도시가 이렇게 세련된 색감을 가질리가 없는 것인데 말이다.

 

 

건물들이 왜 파스텔 색조를 가진 것인지 이제 그 궁금증이 풀렸다. 우리가 왜 엄청난 고생을 해가면서까지 이렇게 외진 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아래에 올려둔 지도속에 있다.

 

 

 

나는 지금 터키 동부 산악지대에 숨겨진 아니 유적지를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의 한이 녹아서 스며들어있는 곳이다. 터키정부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버려둔(?)상태다.

 

그나마 국제사회의 이목이 두려운지 요즘은 약간 손을 보아두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돈때문일 것이다. 워낙 널리 알려지고 유명해진 곳이어서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클릭해서 크게 해두고 보는 것이 여러모로 이로울 것이다. 

 

 

도시 한가운데 해바라기가 자라고 있었다. 소피아 로렌과 마스트로 마스트로얀니가 주연했던 영화 <해바라기>속의 분위기가 이 도시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은 인근의 되네르케밥집에서 먹었다. 고기와 납닥한 빵을 주었다. 수프 한그릇과 함께 먹었는데 17리라였다. 호텔방에 돌아와서 뒷골목을 본 풍경이다.

 

 

호텔에서 미스터 첼릴을 다시 만났다. 가이드없이 아니유적지를 방문할 경우 차량을 제공해주고 3시간을 대기할테니 150리라를 달라고 했다. 좋다고 했다.

 

 

                                   <호텔 부근의 길거리 찻집>

 

길고 긴 하루였다. 일찍 쉬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일기를 쓰고나니 그래도 10시가 넘었다. 잠자리에 들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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