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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조지아의 자랑, 츠민다사메바를 향하여 4

by 깜쌤 2015. 12. 7.

 

예배당이 버티고 있는 작은 봉우리 밑에 비스듬하게 난 길이 보이길래 한번 가보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길은 하산할때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기도 했다.

 

 

길위에 서자 아래 경치가 환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바로 밑에 보이는 마을이 게르게티 마을이고 멀리 맞은 편 산비탈에 자리잡은 곳이 카즈베기 마을이다.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아까 우리가 올라올때 사용했던 그 길이 아니다. 지금 보이는 길이 마을로 제일 빨리 질러갈 수 있는 길처럼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과연 절경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자리에 교회를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듯했다.

 

 

아래쪽으로는 가파른 비탈이다. 굴러 떨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위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니 교회가 우뚝 버티고 서있었다. 사람들이 돌로 쌓은 축대 위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도 조금 있다가 저자리에 가서 아래경치를 감상하게되리라.

 

 

밑에서 올려다보니 교회 건물은 크게 두개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예배당과 부속건물 아니었을까?

 

 

좀 더 걸어나가자 멀리 우람하게 턱 버티고 선 카즈벡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뒤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위로 오르려고 하자 수사(修士)로 보이는 젊은이가 나오더니 이 길이 아니니 돌아오라고 손짓을 해주었다.

 

 

결국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아까 보았던 샘터 곁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산봉우리 그늘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해가 기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빨리 살펴보고 내려가야만 했다. 슬슬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기에 츠민다 사메다 교회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조지아 사람들이 성지로 여기는 곳이니 살펴보기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라가는 길을 제법 넓게 닦아두었다.  비포장길이어서 정감이 묻어난다고나 해야할까?

 

 

하나는 예배당이고 하나는 종탑일 것이다.

 

 

입구까지 왔다. 입구에 세워둔 안내판에는 예배당 내부의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금지한다는 내용의 글이 들어있었다. 

 

 

구소련이 조지아를 다스리고 있을 때 마을 밑에서부터 츠민다 사메바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케이블카를 건설했단다. 소련방이 해체될 때 독립을 쟁취한 조지아인들은 케이블카를 아예 철거해버렸단다. 그만큼 츠민다 사메바를 거룩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입구를 들어서자 교회 건물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자그마한 예배당이다. 안을 둘러보기 전에 바깥경치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갈색이라고 해도 영 틀리지는 않는 살짝 붉은 빛이 나는 돌로 만든 건물이다.

 

 

예배당 사방으로는 돌로 쌓은 담이 둘러쌌다. 

 

 

높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돔이 솟아 올랐다. 결코 웅장하게는 보이지 않는 건물이지만 간결미가 담뿍 들어 있었다. 

 

 

나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저끝에 서면 어떤 경치가 보일까?

 

 

아까 보았던 경치와 흡사한 경치가 돌담 밑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발밑으로 보이는 마을은 게르게티고 건너편 산밑에 보이는 마을은 카즈베기다. 이제는 스테판츠민다라고 부른다.

 

 

스테판이라.....  성경에 등장하는 스데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종탑 뒤로 카즈벡 봉우리들이 거인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카즈벡 봉우리는 조지아인들에게 성산(聖山)으로 여겨질만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는 내가 봐도 신령스런 기운이 느껴진다. 

 

 

앞으로는 깊은 골짜기와 그를 건너서 다시 가로막는 또 다른 바위 봉우리들!

 

 

뒤로는 년중 내내 정상에 눈과 빙하를 머리에 인 카즈벡 봉우리! 이만하면 거룩하게 여길 만도 하지 않은가?

 

 

해가 기울자 더더욱 신비스런 느낌이 산봉우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교회안을 둘러본 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교회 안은 그동안 둘러본 다른 예배당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고 돌아나온게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비감을 간직하기에 더 좋은 기회였을 수 있으니까.....

 

 

아쉬움을 남겨두었기에 올라가는 길을 다시 한번 더 카메라에 담았다.

 

 

마지막 남아있던 햇살이 사라지자 예배당 뒤쪽으로 펼쳐진 천연목장 너른 풀밭에도 적막감이 밀려왔다. 여기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의 체력이 부러워졌다. 

 

 

이제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리스 신화속의 프로메테우스도 저 산봉우리 어딘가에 그냥 남겨두고 내려가야만 했다. 

 

 

아까 잠시 걸었던 길을 걸은 뒤 비탈길을 통해 내려왔다. 경사도가 너무 급해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철 지난 야생화들이 군데군데 피어있었지만 자세히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 무릎이 앞으로 자꾸만 저절로 꺾였다.

 

 

마을엔 아직도 햇살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우리가 내려가고 있는 비탈에는 벌써부터 짙은 그늘이 지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니 산으로 오르는 도로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걷지 않고 계속 지름길로 내려갔다. 모퉁이를 돌다가 도로에서 차축과 바퀴가 완전히 돌아가버린 레저용 차를 만났다. 길이 험하니 그런 사고가 일어나는 모양이다.

 

 

한참을 내려왔더니 게르게티 마을 뒤가 된다.

 

 

산자락은 초지였다. 겨울 내내 가축들이 먹을 월동용 풀이 자라는 초지 여기저기에는 벌써 풀들이 베어져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 뒤 산자락에는 작은 규모의 공동묘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묘지 사이로 난 길을 걸어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는 다시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1970년대의 강원도 시골 마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모습들이 많이 닮았다.

 

 

비탈길에 교묘하게 붙여지은 이 이층집에는 누가 사는 것일까?

 

 

마을길에 들어서자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먼저 내려간 ㄱ장로는 벌써 이 소년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워낙 친화력이 뛰어난 분이니 가능한 일이다. 

 

 

테르기 강위로 걸린 다리를 건넜다.

 

 

마을 광장을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피곤했다. 미남 ㄱ사장과 ㄱ장로가 저녁거리 빵을 사왔다. 아까 점심때에 먹은 고기든 빵이 워낙 맛이 있었기에 은근히 기대했지만 막상 구해온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건 점심때나 파는 모양이다. 우리는 약간 건조한 맛이 스며든 빵과 음료수로 저녁을 때웠다.

 

 

먼길을 이동했던데다가 산 봉우리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왔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씻고 쉬는게 최고다. 욕실에 따뜻한 물이 좔좔 나오니 샤워를 하고 나자 온몸이 개운해졌다.

 

 

마지막 남은 햇살 한조각이 먼산 봉우리에 살짝 걸렸다가 이내 사라져갔다. 또 하루가 간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