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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조지아의 자랑, 츠민다사메바를 향하여 2

by 깜쌤 2015. 12. 3.

 

카즈베기 마을을 끼고 흐르는 물줄기가 바로 테르기강이다. 강물은 러시아 영토로 흘러간다.

 

 

우리는 테르기강을 끼고 있는 커다란 솔숲옆을 지났다. 나무 밑에는 캠핑족들이 둘러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게르게티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여긴 벌써 가을내음이 짙게 배여있었다. 고산지대의 여름은 원래 짧은 편이다. 

 

 

카즈벡 봉우리가 구름속에 신비로운 자태를 살며시 드러냈다가 다시 감추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묵고있는 카즈베기 마을을 안고 있는 암봉위로 구름이 지나가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산자락에 떨어뜨려놓고 있었다. 

 

 

구름이 머리 위로 지나갈 때마다 햇빛이 났다가 짙은 그림자가 지나갔다가 하는 것을 반복했다. 

 

 

테르기강쪽에 붙은 게르게티 마을의 일부분은 하늘로 치솟은 미루나무로 인해 우수가 담긴 러시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카즈베기 마을이 반대편에 떠올랐다. 아까 우리가 민박집을 찾아 다녔던 곳은 길쭉하게 네모난 큰 건물 아래 산자락에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능선에 소떼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목가적인 풍경이다.

 

 

구름떼들이 산을 마구 타넘어가고 있었다. 구름이 빚어낸 그림자들이 초원을 휩쓸고 지나다녔던 몽골족의 기마부대를 연상케했다. 

 

 

 몽골의 기마병들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휩쓸고 다녔다면 누가 믿겠는가?

 

 

우리는 마을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맞은편 봉우리 위로 츠민다 사메바 교회 건물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아가씨 둘이 마을 안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시골풍경을 떠올리는 광경이었다.

 

 

츠민다 사메바로 올라가는 길은 서너가지가 된다. 제일 흔한 것이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마을 한가운데를 통과해서 곧장 산봉우리로 치달아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방법을 택했다.

 

 

일단 마을로 들어갔다가 골짜기 길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사실 말이지 우리가 제3의 그 길을 알고 갔던 것은 아니다.

 

 

그냥 걷다가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게르게티 마을에 있는 카페쪽을 향해 걸었다. 카페는 이 길 끝머리에 있었다.

 

 

상당수의 집들이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돌이 흔하기도 하겠거니와 겨울에는 그만큼 봉우리에서부터 아래로 바람이 사납게 불어온다는 말이 아닐까?

 

 

이런 곳에 살려면 벽이 두터워야할 것이다.

 

 

사방에 돌이 많기도 했다. 

 

 

골목끝에 게르게티 카페가 나타났다.

 

 

카페쪽으로 걷다가 골목에서 수도를 만났다. 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근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미국이 상수도 사업을 위해 지원해준 돈으로 만든 것이란다.

 

 

미국이 조지아에 들인 공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구소련에서 하나의 공화국을 이루었던 조지아를 서방세계에 편입시킬 수 있다는 말은 러시아의 턱밑에 비수를 들이댈 수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것은 1960년대에 공산화되어버린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한 소련의 역할에 대한 보복일 수도 있겠다. 차이점은 조지아에 미국이 아직까지는 미사일 기지를 확보하지 않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미국이 조지아를 서방세계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조지아보다 남쪽에 자리잡은 아르메니아에 러시아의 미사일 기지가 있다는 점이다. 

 

 

츠민다 사메바 교회당으로 걸어올라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카페가 눈앞에 다가왔다.

 

 

나즈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에는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커피도 파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골짜기로 난 길이 실타래처럼 한가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는 못볼 풍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아쉬움을 달래고자 나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도랑을 이루었다. 

 

 

골짜기 안 초입에 감시탑 비슷한 건축물이 보였다.

 

 

여긴 정말 척박한 곳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부족하니 주민들은 목축을 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조지아를 잇는 길목에 자리잡은 곳이었기에 여러 종류의 이민족 침략자들에게 시달리며 살았을 것이다.

 

 

주민들의 삶이 괴롭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안봐도 알 수 있다.

 

 

방화와 파괴, 약탈과 착취속에서 생존자체가 힘들고 다급했기에 주민들은 요충지마다 성을 쌓고 감시탑을 만들었지도 모른다.

 

 

우리가 방금 지나온 게르게티 마을이 저만치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리 높은 봉우리는 아니었지만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발걸음을 뗄때마다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 

 

 

방금 우리 곁을 스쳐지나간 커플들은 벌써 저만치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 위로 올라갔다. 길바닥에 잔자갈들이 많아서 잘못 밟으면 미끄러져 다치기가 쉽다.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감시탑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커플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내려가는 사람들이 그리 드물지는 않았다.

 

 

앞에 올라갔던 ㄱ사장은 벌써 감시탑 밑에까지 가있었다.  

 

 

언제 만들었으며 언제 무너져 내렸을까? 조지아의 험한 산골짜기 마을에는 이런 시설들이 심심치않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모양의 감시탑은 아프가니스탄에도 있고 중국 서부의 사천성 골짜기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던 날은 내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에나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그 푸른 하늘 밑에 자라는 야생화는 청초하기 이를데 없이 맑기만 했다.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살면 아무 탈이 없으련만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은 전쟁과 살륙을 위한 무기 개발과 전쟁기술뿐이었다.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길이 비탈을 따라 외줄기로 뻗어있었다. 토끼길처럼 보이는 작은 길들은 양과 염소떼들의 발자취이리라. 

 

 

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세찬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앞쪽으로는 천연목장이 나타나고 있었다.

 

 

고지대여서 그런지 기온은 쾌적한 상태였다. 땀으로 범벅 될 일이 없으니 그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감시탑이 벌써 저만큼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ㄱ사장은 선구자마냥 앞으로 묵묵히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이 산골짜기에는 우리만 남은듯 하다. 우리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