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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조지아의 상징 사메바 대성당

by 깜쌤 2015. 11. 23.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예배당은 츠민다 사메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흔히 사메바 예배당, 혹은 사메다 대성당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단순하게 사메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자.  

 

 

사메바 대성당이 있는 곳은 엘리야(Elia) 언덕이다. 쿠라강 좌안인데 아직까지 개발이 덜 진행된 일부지역은 촌스런 느낌을 주기도 했다. 

 

 

대성당으로 진입하는 길 양쪽은 서민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었다. 그래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보기에는 좋았다.

 

 

가난한 서민들이 모여사는 곳이라고는 해도 깔끔하니 보기가 좋았다. 이런 동네에도 호텔이 보였다. 

 

 

어느 정도의 시설을 갖춘 것인지는 몰라도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고있는 것으로 보아 묵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성당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대성당의 돔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너편 요새에서 바라볼 때와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모습은 느낌상의 차이가 엄청 크다.

 

 

드디어 사메바 대성당의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출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회구역안으로 들어서자 어떤 신성한 기운이 몸을 감싸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보았던 세인트 그레고리 일루미나티 대성당과 어딘가 조금은 닮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뒤돌아보면 트빌리시 올드시티가 저 건너편에 있다.

 

 

사메바 성당은 성삼위일체 교회라는 의미라고 한다.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말이다.

 

 

건물의 최상부 돔에는 7.5미터 높이의 십자가가 올려져 있는데 금으로 도금한 것이란다. 

 

 

비잔틴양식을 밑바닥으로 하고 여러가지 건축양식을 혼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설계자는 아르칠 민디아쉬빌리라는 건축가다.

 

 

전체 높이는 105.5 미터라고 하니 결코 낮은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 옆문을 통해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건물 앞쪽으로는 거대한 광장이 자리잡았다.

 

 

사메바 대성당은 조지아 국민들이 낸 헌금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국가가 나서서 돈을 크게 댄 것도 아니고 재력가들이 거금을 희사한 것이 아니라 일반 소시민들이 헌금을 해서 지은 건물이라니 더 의미가 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9년 5월 조지아정교회의 총대주교와 트빌리시 시당국이 홀리 트리니티 프로젝트라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설계작품을 공모했다고 한다. 수백편의 응모작 중에서 아르칠 민디아쉬빌리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공사에 들어갔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소련은 1989년경부터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소련방이 해체되는 혼란기를 겪으면서 공사는 6년간이나 중단되었다가 1995년 11월이 되어서야 다시 재개할 수 있었다.

 

 

옆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밖을 한번 더 살폈다.

 

 

예배당 뒷편 도로건너 구역으로도 멋진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빨간색 지붕을 가진 건물은 우리가 들어온 옆문 입구에 세워진 부속건물이다. 일종의 채플이라고 해야하나? 사메다 성당의 지하에는 상당수의 채플이 존재한다고 한다.

 

 

빗방울이 슬슬 떨어지면서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치마자락이 날릴까봐 치맛단을 붙들고 조심스럽게 걷는 여인의 모습에서 그 어떤 정숙함을 느꼈다.

 

 

옆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본다.

 

 

출입구 옆에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다.

 

 

안으로 들어섰더니 엄청나게 높은 천장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바닥은 대리석 타일이다. 기둥옆에 붙어서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여인에게서 나는 깊은 겸손을 배웠다.

 

 

붉은색 성의를 걸친 성직자가 간단한 의식을 집례하고 있었다.

 

 

기도문을 낭독할 때 옆에 선 두사람의 남자가 멋진 화음으로 성가를 불러주고 있었다. 그들의 찬양이 멋진 울림이 되어 사람 마음속으로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두 세 사람이 부르는 찬양이 이렇게 사람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던 적이 언제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제단 일부분은 다시 손을 보는듯 했다.

 

 

너무나 분위기가 경건해서 나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가며 실내 구경을 했다.

 

 

히잡을 쓴 여자와 수염이 텁수룩한 무슬림부부인듯한 사람이 경박스럽게 예배당안을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었다. 남의 성전에 와서는 경건하게 행동하게 해주는 것이 예의다.  

 

 

우리는 다시 옆마당으로 나와서 교회 앞쪽으로 돌아가보았다. 

 

 

바람이 강해지면서 빗방울을 여기저기에 마구 뿌려대기에 호스텔로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겹겹이 쌓인 지붕들과  노랗게 보이는 예배당 벽면이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있었다.

 

 

빗방울때문에 사방을 세밀하게 둘러보지 못하고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조금씩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내일은 또 장거리 이동을 해야하는데 감기라도 걸려서 신체리듬을 어지럽히면 곤란해진다.

 

 

사메바 대성당을 나와서 아까 걸어왔던 도로로 나오자 기어이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긋기를 기다리면서 빵가게 앞 처마밑에 잠시 피신하고자 했더니 주인인듯한 할머니가 가게 앞을 막아서지 못하도록 했다. 출입구도 아니고 쇼우케이스 앞에 잠시 서있었던 것인데 괜히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나 그런 심술궂은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지만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도로가에 곱게 핀 분꽃을 보며 상한 기분을 달랬다.

 

 

비탈길을 걸어 메테키 성당앞쪽으로 내려왔다.

 

 

메테키 성당 앞쪽길은 박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소나기성 빗줄기가 그친 도로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어제 올라갔던 요새가 건너편에 보였다. 자동차들이 전조등을 켜기 시작했다.

 

 

쿠라강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고......

 

 

빨간색 이층버스가 잠시 멈춘 도로 가에는 구걸하는 여인이 가로등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었다.

 

 

우리는 올드타운의 카페거리 앞을 지나서 걸었다.

 

 

어제 오후에 보았던 유대인들이 모이는 시나고그(=회당)도 다시 만났다.

 

 

호스텔에 돌아온 우리들은 주인여자를 만나 러시아와 조지아의 접경지대에 있는 카즈베기로 가는 택시를 교섭했다. 그런 뒤에는 저녁을 먹었다. 장을 보아와서 빵과 과일로 저녁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일기를 쓰고 짐을 정리했더니 밤 11시가 넘었다. 나는 다시 거실 의자침대에 피곤한 몸을 뉘었다. 그렇게 하루가 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