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를 다 내려간뒤에는 이제 다시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제반이라는 마을을 지났다. 이제 국경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래에 올려둔 지도를 보기로 하자.
우리는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을 떠난 뒤 딜리잔(지도에서 3번 위치)에서 머문 뒤 택시를 잡아타고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지도에 4번 위치)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 중이다.
노이엠베르얀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도시까지 왔다. 여기서는 국경이 그리 멀지 않다. 운전기사는 자꾸만 무엇을 찾는듯 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그는 자동차수리를 위한 정비소를 찾고있었던 것이다.
도시를 살짝 벗어나는 끝머리에서 그는 자동차정비소를 찾아냈다.
그가 기술자를 찾는 동안 나는 카메라를 들고 정비소 뒤쪽으로 가보았다. 골짜기 밑에 커다란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언제쯤 방문하면 진한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중턱 여기저기에 집들이 흩어져 있기도 했다.
나는 자동차정비소 앞에서 사방 경치를 살폈다. 뭐 대단한게 있을리가 없다. 도시끝자락이니 우리 눈앞으로 굉장한 풍경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광활한 대지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우리 눈에 걸려든 골동품이 있었다. 2차 대전때 히틀러의 제3제국 군인이 탔을법한 사이드카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오토바이옆에 부착한 사이드카에는 냄비뚜껑 모양 헬멧을 쓴 독일 군인이 앉아있어야 제격인데.....
누가 탔던 것일까? 우리가 탄 차는 수리점검중이었다.
어찌어찌 손을 본 뒤 우리차는 출발준비를 마쳤다.
이젠 다시 떠나야한다. 오늘 중으로 트빌리시까지 간 뒤 호텔을 구해야만 했다.
우리가 탄 차는 거대한 계곡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골짜기 규모가 굉장했다.
오토바이 여행자가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잠시 쉬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기계에 어두운 나는 기계사용을 겁내는 편이다. 좀더 젊고 시간이 더 넉넉했더라면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끌고 해외여행을 나서고 싶었는데 좋았던 시절은 직장에 매여사느라고 다 날려버리고 말았다.
젊었던 날에 여행자유화가 이루어졌더라면 자전거를 끌고 세계를 한바퀴 돌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요즘 자라나는 젊은이들이 너무 부럽다. 마흔 넘어야 해외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던 시대에 서른아홉까지의 젊음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갈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살았다.
건초를 가득실은 트랙터 한대가 우리차 앞을 달리고 있었다.
사이프러스나무를 닮은 나무들이 줄을 맞추어 서있었다. 담장안은 군사시설이었던 모양이다.
바늘이나 송곳모양으로 생긴 가냘픈 사이프러스나무들이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남부 프랑스의 프로방스같은 분위기가 났다.
운전기사는 개스 스테이션에 들어가서 연료를 재충전했다. 그동안 나는 충전소 부근을 구경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내려 휴게실과 매점 사이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충전소 한쪽에는 능소화가 빨간 꽃을 마음껏 피우고 있었다. 조선시대 양반들 집에만 심을 수 있었다던 능소화를 아르메니아 끝자락에서 발견할 줄이야.....
꽃구경을 하다가 휴게실에 가서 아르메니아 아가씨들에게 딜리잔 산골마을에서 받아둔 주소를 보여주며 영어로 번역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들은 기꺼이 번역해주었다.
우리팀의 회계를 담당한 미남 ㄱ사장은 우리가 가진 아르메니아 잔돈을 모조리 거두어가더니 휴게실 부근 매점에서 물과 음료수를 사와서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졸지에 음료수가 가득 생겼다.
개스충전을 끝낸 뒤 조금 더 달려갔더니 국경이 나왔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아르메니아 출국장으로 우리를 태운채 택시를 몰고 그냥 들어가길래 특별대우를 해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VIP가 아닌 다음에야 예외가 있을 수 있나 싶었다.
국경경비원은 우리쪽을 보고 자동차만 지나가고 승객은 내려서 출국수속을 밟으라는 몸짓을 해주었다. 우리는 배낭을 차 트렁크에다 그냥 놓아두고 간단한 보조배낭만 들고 내렸다. 출국장에서 출국도장을 받고 나갔더니 우리가 타고 온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택시를 먼저 보냈다. 걸어서 국경을 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국경은 데베드 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는 강위에 걸린 철교를 걸어서 넘었다. 아르메니아 경비병들이 강둑을 순찰하고 있었다.
조지아 입국장은 아르메니아 출국장보다 더 깨끗했다. 아르메니아를 다녀오는 조지아 단체관광객들 때문에 많이 혼잡했다. 입국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여권에 입국스탬프를 찍어주는 것으로 수속절차는 끝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조지아 환전소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조지아로 들어선 것이다. 아르메니아 한나라라도 차분하게 여유를 가지고 다녀보아야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조지아측 국경부근에는 화물차량들이 밀려있었다. 아르메니아로 넘어가는 차량들이다. 차량들의 마지막 행선지는 이란이 될지 아르메니아가 될지는 내가 알 수도 없고 알바도 아니었다.
사실 조지아는 두번째 방문이다. 2008년 여름에 조지아에 들른 적이 있었다.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에 도착한지 하루만에 느낌이 너무 좋지않아서 그날 밤에 터키와 조지아의 국경에 있는 바투미로 이동했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택시를 잡아타고 국경으로 이동한 뒤 재빨리 터키로 넘어갔었는데 그로부터 사흘뒤에 러시아군의 조지아 침입으로 인해 두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졌던 것이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정해놓았으니 풍경은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차는 한적한 길을 마음껏 달렸고 운전기사는 한번씩 길을 물어보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내비게이션? 그런 것은 처음부터 차량에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7년전에는 조지아를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와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었다. 까딱 잘못 판단했으면 전쟁터 한가운데 갇힐뻔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찾은 것이다. 이번에는 아르메니아에서 입국했다. 조지아! 이 나라도 한때는 구소련의 영토였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준말이 소련이다. 한때 소련을 철권으로 다스렸던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다.
조지아는 영어식 발음이고 러시아식으로는 그루지아(그루지야)다. 조지아는 소련에서 떨어져나와 독립하면서 나라 이름도 정식으로 영어식으로 바꾸었다. 러시아의 영향권에 벗어나고자 무지하게 노력을 했지만 그것 때문에 러시아에게 밉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거나 간에 우리를 태운 차는 북으로 북으로 마구 달려나갔다. 그래봤자 평균시속 60킬로미터 정도였지만......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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