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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동네한바퀴 - 딜리잔

by 깜쌤 2015. 10. 21.

 

우리는 딜리잔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미아스니키안 거리를 따라 걸었다. 중심부가 그리 큰 것이 아니어서 조금만 걸어서 더 교외쪽으로 나아가면 이내 한산한 모습으로 바뀌고 만다.

 

 

 

도로를 따라 배치해둔 여러가지 조각상이 심상치 않았다. 인구 1만7천명이 산다는 도시에서 이런 조각이 늘어선 거리를 만나다니..... 어찌보면 조악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느낌을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정감있는 호랑이를 떠올렸다.

 

 

어머니상이라고 해야하나? 아르메니아 작가들이 표현하고자하는 감정은 우리들이 느끼는 어떤 감정과 어디에선가는 일맥상통하는듯 하다.

 

 

딜리잔은 계곡속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골의 읍보다 작을 수 있다. 마을은 산비탈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다. 계곡쪽으로 내려가서 우리가 머물고 있는 마그니트 B&B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이런 조각에서 우랄 알타이계열의 사람들이 느끼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남이 만들어놓은 조각작품 속에서 내가 가진 감정을 이입하여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무가지 사이로 도로 밑으로 자리잡은 고급호텔을 훔쳐보았다. 이런 시설들은 딜리잔의 또 다른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멀리 보이는 기념탑쪽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까 그쪽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위치까지 걸어왔다고 보면 된다.

 

 

이제 딜리잔의 전체모습이 대강 드러났다. 우리는 라디오 송신탑 너머에 머물고 있다. 마을은 아그스테브강을 따라 이어져있다. 강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조그만 개울 정도에 해당하지만 그래도 국제하천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우리들은 개울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바로 앞에서 내려갈 수 있었다.

 

 

함석을 지붕으로 얹은 집들이 후줄근하게 늘어진 모습으로 다가왔다.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뜨거운 땡볕아래 구닥다리 승용차 한대가 더운 김을 내뿜으며 우리 곁을 스쳐갔다.

 

 

골짜기 건너편으로는 기찻길이 지나가고 폭좁은 개울물이 도로 밑으로 물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낮춤한 건물들은 여기저기 한가롭게 터를 잡았다.

 

 

날이 뜨거워서 그런지 이불과 요를 2층 난간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일광소독을 하는 것이리라. 마당을 가로지른 철사줄에 바지랑대로 밑을 바치고 이불을 널어두면 하루종일 따끈따끈하게 열을 받는다.

 

 

학교갔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당 빨래줄에 널어둔 이불 틈사이로 들어가면 얼마나 포근했는지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의 자잘한 추억을 떠올렸다. 이제 그런 날들에 대한 추억은 꿈속에서도 되살리기가 어렵다. 

 

 

이게 아그스테브강이다. '에게게'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지 모른다. 그래도 강은 강인 것이다. 하류로 갈수록 물이 흐렸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어디에 커피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잠시 쉬고 싶었다. 

 

 

길가에 세워둔 빨간색 승용차가 향하는 방향에 커피숍 겸 레스토랑이 숨어있었다.

 

 

들어가보기로 했다. 물가가 싼 나라이므로 크게 부담될 일은 없다.

 

 

건물앞으로 달아낸 테라스에 많은 손님들이 앉아있었다. 거무튀튀한 피부를 가진 남자들과 히잡을 쓴 여인네들이 따로따로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무슬림들이 틀림없다. 그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테라스 앞쪽으로는 블록을 깔고 그 앞으로는 잔디를 키워서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밤에는 초롱을 밝히는 모양이다. 나는 자꾸 우리나라의 시골 잔치집을 연상했다. 

 

 

나는 아르메니아식 커피를 주문했다. 서빙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아르메니아 아가씨들이다. 우리 주위에 진치고 앉은 무슬림 손님들의 인상이 조금 고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들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무슬림 손님가운데 하나가 다가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여성들의 사진을 찍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자기들을 찍는다고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은근히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내가 우리 일행들에게 수없이 강조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절대 여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지 말기를 바란다고 수없이 이야기를 해두었다. 우리팀 멤버 어느 누구도 그런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자기들이 지레짐작해서 우리들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떠나가고 난 뒤 나는 종업원들에게 어느 나라 사람들이냐고 물어보았다. 어쩌면 이란사람들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란인 여부를 떠나 중동지방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건방진 것들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어느 정도 쉬면서 여름날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피한 우리들은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커피 한잔으로 기운을 다시 차렸다. 

 

 

삼거리의 주유소 부근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났다. 잠시 쉬었다가 가란다. 이런데서 나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속깊은 정을 느낀다.

 

 

노인 한사람이 개암열매를 보여주며 먹어보라고 한다. 사투리로 깨금이라고 부르는 개암이 틀림없었다. 속열매는 고소하다. 얼마만에 먹어보는지 모르겠다. 아마 수십년만에 맛보는 열매이리라. 

 

 

어른들과 헤어지고 난 뒤 우리들은 주유소 앞을 지나 걸었다. 미남 ㄱ집사와 나는 삼거리부근 케밥집에서 저녁을 사가기로 하고 일행 두분을 먼저 호텔로 올려보냈다.

 

 

샤우르마를 사갈 생각이었다. 터키의 되네르케밥 비슷하게 생긴 것인데 한끼 식사로 아주 훌륭하다.

 

 

주인은 얇고 납닥한 빵을 꺼내더니 그 위로 채썰듯이 깎아낸 고기를 수북하게 넣고 양파와 토마토도 집어넣더니 이내 소스를 스윽스윽 뿌렸다.

 

 

이제는 예쁘게 말면 된다. 그는 칼질에서부터 소스뿌리기까지 지금껏 그가 갈고 닦아온 현란한 솜씨를 이방인들 앞에서 멋지게 시연해보였다.

 

 

아르메니아 전통 요거트인 탄도 샀다. 시큼한 맛이 나면서 털털하기도 한 음료인데

샤우르마와 함께 먹으면 맛이 기막히다. 

 

 

샤우르마를 사서 비앤비로 돌아가는 길에 길가에서 수도를 만났다. 페트병으로 수도꼭지를 대신한 아이디어가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뒷마당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었다. 손님용 쟁반을 꺼내오고 미리 구해둔 과일을 꺼내왔다.

 

 

맛있다. 낮에 점심을 잘 먹었으므로 저녁으로는 이 정도만 먹어도 충분하다. 샤우르마 하나가 800드람, 탄 한병이 300드람이었다. 3천원짜리 식사라고 보면 된다.

 

 

그뿐이랴? 온갖 과일을 함께 먹는 식사이므로 저절로 배가 불러온다.

 

 

포도까지 곁들였더니 정말 근사한 식사가 되었다. 내일 아침에는 여기를 출발해서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까지 갈 생각이다. 국경을 넘어야하므로 짐 정리에 신경을 써야했다.

 

저녁을 끝내고 짐을 정리해둔 뒤 나는 뒷마당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별들이 소복하게 널렸다. 아르메니아에 더 머물면 좋았을 것을....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버렸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가야했으므로 내일은 조지아(=그루지아)로 반드시 가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