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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동네 한바퀴 - 고쉬마을과 딜리잔

by 깜쌤 2015. 10. 20.

 

더위에 지친 다른 분들이 고샤방크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서둘러서라도 잠시 고쉬마을을 둘러보고자 마음먹었다. 시멘트 블럭으로 담을 친 시골집을 보며 나는 빈한했던 우리들의 1970년대를 떠올렸다.

 

 

한쪽엔 건초더미가 쌓여있었다. 포장안된 길을 꼬맹이 둘이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내 뒤를 따라 걸어오던 새댁은 내가 유심히 살펴보고있던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낡고 차림새는 가난하게 보였어도 나는 집앞 작은 공터에 꽃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들의 마음만은 넉넉하리라고 여겼다. 텔레비전 시청을 위해 위성방송수신기를 갖추고 있었다.

 

 

마을을 살펴보고자 했던 원래 의도는 마을 뒷산에 보이던 채플을 보기위해서였는데 채플로 올라가는 길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포기하고 마을 구경을 하는걸로 때우기로 했다. 

 

 

거의 모든 집들은 시멘트 블럭으로 만들어져있었다. 벽돌이 아닌 블럭이다. 우리 부모님들도 옛날엔 그런 집에서 살았다. 

 

 

동네 입구 공터 구석에는 꽁지빠진 닭이라는 비아냥섞인 평가를 받던 포니브리사같은 모델을 닮은 승용차들이 서있었다. 이런 승용차들은 구소련시대에 생산된 차들일 것이다.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아가씨가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하며 내앞을 지나쳐갔다. 이런 산골에서 예쁜 아가씨를 만나다니..... 어느집 처자인지는 몰라도 좋은 총각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가자 트랙터가 보였다. 이 가난한 나라에서도 농업기계화 정도는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겠다. 사람 힘으로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중노동이다.

 

 

 

고쉬 마을의 전체분위기는 후줄근했다. 개발이 덜된 7,80년대 우리나라의 깊은 산골마을을 보는듯 했다.

 

 

트랙터 앞바퀴가 다 닳아서 타이어 무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들 풍족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마을안쪽 길에서 자두라고 생각되는 과일을 만났다. 확인해보려다가 괜스레 쓸데없는 오해를 받을까 싶어서 참았다.

 

 

마을 사람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이 분들은 가스관을 조립하고 있었다.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통화를 끝낸 아가씨는 이제 친구를 기다리는 것같았다. 꿈이 많을 한창 나이다. 

 

 

집집마다 건초더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마을 사람 대부분은 목축을 겸하는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빈촌이다. 국민소득 3천달러대니 삶이 오죽하랴? 1960년대의 우리나라 일인당 소득은 200달러가 안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의 우리네 부모들의 삶은 삶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생존하기 위한 발버둥이었을 뿐이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굶기를 밥먹듯이 했으니 다른 것은 꿈도 못꾸었다. 없는 살림에 부모님께서 큰마음 먹고 상급학교라도 보내주었기에 나같은 인간이 여기까지라도 와볼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부모탓을 하기보다는 자기자신 탓을 하고 살자. 그게 건전한 삶의 방식이다. 젊었던 날에는 왜 그런 생각이 안들었는지 모르겠다. 동네에는 젊은 아가씨들이 많은것 같다.

 

 

나는 다시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창틀을 가진 건물 뒤로 채플 꼭대기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른한 한낮이었다.

 

 

이 마을에 이 정도의 활력이 넘칠 수 있는 것은 고샤방크때문이리라.

 

 

관광객들이 더 많이 몰려오면 살림살이 자체가 나아질 것이다.

 

 

언제왔는지 대형관광버스가 회전을 위해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전진후퇴를 거듭했다.

 

 

대절한 승용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중간에 기사가 차를 세워주었다. 경치가 좋은 곳이니 사진을 찍으라는 뜻이다.

 

 

바위 몇개만 늘어서도 분위기가 다르니 경관이라는게 참으로 묘한 것이다.  

 

 

우리차 기사도 채키챈 장로에게 관심이 많은듯 했다. 돌아오는 길은 왔던 길을 그대로 밟아오는 것이니 너무 쉽다.

 

 

우리는 기념탑이 있는 삼거리 부근 로터리에 돌아왔고 약속한 금액을 지불했다. 운전기사의 매너가 좋아서 내일 트빌리시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기사는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접선장소와 시간, 그리고 금액을 확정지어 두었다. 

 

 

기사를 돌려보낸 뒤 우리는 딜리잔 마을 구경을 하러 나섰다. 이제반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오른쪽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 보기로 했다.

 

 

얼핏보면 마을 구경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딜리잔은 명색이 아르메니아의 스위스다. 비경은 곳곳에 숨어있는 것이지 명승지가 우리들 눈앞에 제발로 걸어와 턱 나타나주는게 아니다. 

 

 

삼거리 뒤쪽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가보았다. 산 위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오기에 따라가 보았는데 밑에서 보기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어디가서 점심을 먹어야겠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는 우리들 눈앞에 나타난 멋진 장소가 있었으니.....

 

 

계단식 좌석이 갖추어진 멋진 야외극장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그리스식 열주가 둥근 모습으로 늘어선 무대와 관중석이 있는 야외극장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산비탈에 숲속에 이런 멋진 공간이 숨어있다니.....

 

 

코카서스 산중 나라에서 이런 시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무대 한쪽의 나무그늘이 짙은 공간을 찾아 대강 치운 뒤 점심상을 차렸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김 통닭을 꺼냈다. 빵으로 겉을 싼 음식이니 음료수 정도만 있으면 점심으로 너끈하다. 

 

 

어제 먹다가 남긴 피자도 꺼냈다. 이만하면 진수성찬이다. 

 

 

미남 ㄱ사장과 채키챈 장로가 사온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나는 당분이 제로라는 제로 콜라를 아르메니아 산중에서 처음 마셔보았다. 

 

 

제로 콜라와 환타, 물, 그리고 통닭, 얇은 빵!

 

 

그리고 야외극장! 이만하면 있을 것은 다 있는 셈이다.

 

 

관람석 한쪽 끝에는 어떤 백인이 빵을 뜯고 있었다.

 

 

이런 멋진 야외극장이 있는 도로 맞은편에는 차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멋진 수도가 있다. 어쩌면 지하수일 가능성도 있다.  

 

 

물을 받아와 신나게 들이켰다.

 

 

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가던 길을 계속 가야했다. 길을 걸으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곳곳에 수도가 숨겨져 있었다.

 

 

뭐 이런 식이다. 그러니 잘만 살피면 목마를 일은 없을 것이지만 건성으로 보고 지나치면 물도 항상 사먹기만 해야할 것이다.

 

 

우린 실컷 목을 축였다.

 

 

현지인들도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목을 슬쩍 축이고 가기도 했다.  

 

 

다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저런 곳은 간이환전소역할과 금융기관 구실을 하는가 보다. 디자인이 눈에 쏙 들어왔다. 땡벌 이미지를 기막히게 잘 살렸다.

 

 

가만히 보니 딜리잔에는 금융기관들이 많은 것 같다.

 

 

아르메니아 정부에서는 딜리잔을 금융의 중심지로 키우고 있다고 한다. 사진속에 보이는 건물이 아메리아은행이다. 시청 맞은편이라고 보면 된다.

 

 

아르메니아의 금융중심지로 키우고 싶은 것이 정부의 희망사항인가 보다.

 

 

딜리잔을 금융과 관광중심도시로 키우고자 하는 열망에서 정부에서는 금융기관을  하나씩 이곳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이 은행 앞 분수대에 들어가서 물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금융중심지로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 지나치면 조세피난처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스위스의 몇몇 도시처럼 금융중심지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는 지금 미아스니키안 거리를 따라 걷는 중이다. 여기가 달리잔의 중심거리다.

 

 

딜리잔 곳곳에는 제법 아름다운 건물들과 시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결코 만만하게 볼 도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건물들은 새로 지었던가 보다. 딜리잔의 매력이 조금씩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