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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위쪽 나라 조지아를 향해 달리다 1

by 깜쌤 2015. 10. 22.

 

아르메니아를 떠나서 조지아로 넘어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뒷마당에 가서 이제 다시는 못볼 풍경을 눈에 담아두었다. 

 

 

같은 지구위에 살아도 너무도 아득한 거리에 터잡은 채로 다른 공간에서 각기 다른 삶을 영위해나가기에 다시 볼 기약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만남도 그와 비슷하다. 선한 인연으로 아름답게 맺어지고 싶지만 떨어지면 못보게 되고 안보면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사다.  

 

 

어제 주유소부근에서 아르메니아 영감들에게 받은 깨금 열매는 숲속에 던져서 남겨두고 가기로 했다. 여기서 한포기라도 더 벌어나가도록 해야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게 자연의 섭리를 어기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아침식사는 먹고 떠나야한다. 이런 진수성찬을 두고 그냥 가버리면 너무 아쉬워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먼길을 가야했으므로 무엇이든지 먹어두어야 했다. 

 

 

눈이 동그랗고 얼굴 윤곽이 뚜렷해서 예쁘기만한 주인 아줌마는 정성스레 상을 차렸다. 오늘은 다른 팀도 식사를 하는 모양이다.

 

 

무슨 일이든지간에 몰두하는 모습은 아름답다못해 거룩하다. 우리 밥상은 제일 안쪽 테이블에 차려져 있었다.

 

 

아르메니아에서 이런 정도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상류층에 속할 것이다. 음식솜씨가 있고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커다란 능력을 지닌 것이다. 그러길래 이런 수준의 B&B를 운영할 수 있겠지.

 

 

우리들은 의자에 앉아 식사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거룩한 의식을 먼저 치러나갔다. 사진찍기 말이다. 

 

 

어제처럼 잼이 나왔다. 이게 있어야 빵을 먹기 편하다.  

 

 

이것도 잼의 일종같다.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계란에다가 허브를 넣은 요리다. 나는 처음에 쑥을 넣어서 만든 줄로만 알았다. 어렸을 때 밥대신 하도 쑥버무리를 많이 먹은 덕분에 뇌리 깊숙하게 박힌 인식때문이었으리라. 

 

 

치즈! 요즘은 피자에 얹은 치즈 덕분에 사람들이 특별히 치즈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서양인들에게 치즈는 어쩌면 우리나라의 김치 정도에 해당하는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종류도 많거니와 맛과 향이 만드는 집집마다 다르고 모양새와 색깔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요거트였는지 버터였는지 아직도 기억이 아삼삼하다. 하여튼 맛있다.

 

 

후식용 과자였지만 우리야 전식 후식 가리지 않고 기분나는대로 집어먹었다.

 

 

그리고 햄! 짭조름하면서도 뒷맛이 깊었다.

 

 

이게 요거트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위에 소개한 하얀색 음식은 버터였으리라.

 

 

아침을 푸짐하게 잘 챙겨먹은 뒤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눈이 예쁜 주인아줌마는 자기 집에도 벤츠승용차가 있어서 국경너머 조지아 수도까지 데려다준다면서 아쉬워했다. 진작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집 차를 사용해주었을 것이다.

 

우리를 데리러 온 운전기사는 어제 고샤방크를 다녀올 때 만났던 그 차의 소유주다. 50대 후반으로 기억하는데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중에 국경을 넘을 때 하는 행동을 보니 그는 국경너머로는 처음 가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반 방향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나는 딜리잔의 서쪽에 있는 바나드조르 쪽으로 먼저간 뒤 다시 북상하며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사이의 국경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동쪽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운전기사가 어디로 국경을 넘을 것인지에 대한 감을 잡았다. 미리 지도를 보고 방향을 파악해두었기에 헛갈릴 일이 없었다. 여행에서 방향을 파악해두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특히나 도시에서 방향을 잃어버리면 길찾기가 불가능해진다.

 

 

작은 마을을 지난 뒤에는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반으로 가는 길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길가로 나타나는 풍경은 우리나라 산골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참 이상도 한 일이다. 어찌 그렇게 닮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고개마루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들을 만났다.  차 안 스피커에서는 옛날 팝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아마 기사가 우리를 배려해서 틀어주는 음악이리라.  

 

 

고개를 올랐으면 그 다음에는 내려가야 하는 법이다. 산봉우리들이 강원도 영월이나 정선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에는 소나무숲도 보였다. 단풍이 들면 제법 예쁘게 보일 것이다.

 

 

얼마쯤 달려나가자 기찻길이 다시 나타났다. 이제반으로 이어지는 길은 긴 계곡을 따라 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기찻길과 만날 수밖에 없다.

 

 

오른쪽으로는 강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주 드물게 마을이 하나씩 지나갔다. 

 

 

마침내 조금 큰 마을이 나타났다. 이제반이 가까워지는가 보다. 

 

 

이제반은 인구 2만이 넘는 도시다. 부근에서는 제법 큰 도시여서 그냥 지나치기가 조금 아쉬웠다.

 

 

시가지를 통과하는 중심도로 가에서 연자주색 꽃이 소복하게 달린 무궁화나무를 보았다.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기사에게 세워달라고 하려다가 더 있겠지 싶어서 참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큰 무궁화꽃나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시가지가 끝나는 곳 부근에 커다란 여신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아르메니아나 조지아에는 저런 동상들이 심심치않게 보였다.

 

 

이제반을 지나자 풍광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건조기후대가 다시 나타나는듯 하다.

 

산비탈에 자리잡은 마을 앞 산봉우리에 커다란 수도원이 남아있었다. 확실히 이쪽은 건조 기후대다. 산에 나무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곳도 있었다. 그늘이 짙어서 좋았는데....  우리나라 시골같으면 매미소리가 흐드러질 것인데 여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어렸을땐 도로가에 심겨진 아카시아나무나 포플러나무 이파리들은 먼지를 수북하게 덮어쓰고 자랐다. 그런 나무줄기에는 까만 매미들이 제법 달라붙어있었는데 워낙 사람 손을 안타서 그런지 아이들이 손을 가져가도 날아가지도 않았다. 

 

 

북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산에는 나무들이 적어져갔고 어떤 곳은 화재가 난 흔적이 언덕 전체를 뒤덮고 있는 곳도 있었다.

 

 

낮은 언덕은 전체가 밀밭으로 개간되어 있기도 했다.

 

 

한번씩은 작은 교회가 나타났다가 사라져갔다.

 

 

도로는 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량통행이 뜸해서 드라이브하는 맛이 났다. 자동차는 고도를 서서히 높여가며 달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엄청 높은 고개를 지나게 되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언덕 저 너머로 제법 신기하게 생긴 산봉우리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혼자서 볼록 솟아오른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슬쩍 다시 쳐다보았더니 그 앞에는 호수까지 있는게 아닌가? 멋진 경치였는데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다. 아쉬웠다. 일단은 포기하는 수밖에.....

 

 

산골마을을 지나는데 덩치가 큰 돼지 한마리가 도로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긴 돼지도 놓아서 기르는가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돼지를 혐오하길래 돼지구경하기가 그리도 어렵고 힘들지만 여긴 기독교국가다.

 

 

고개를 넘어가는데 놀랍게도 내가 포기하고 있었던 경치가 오른쪽 산밑으로 나타나는게 아닌가? 나는 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멋진 경치를 놓치고 그냥 지나가면 너무 아쉬워진다.

 

 

높은 곳에 차를 세우고 아래로 펼쳐지는 경치를 보니 장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 운남성 대리에서 여강으로 가는 길에도 이와 비슷한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백족이 많이 모여사는 도시인 학경 못미쳐 고갯마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런 풍경이 나타나리라.

 

 

호수와 산봉우리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다. 나는 인터스텔라 영화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구글 위성지도를 검색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저기 보이는 호수의 일부는 아제르바이잔 영토였고 일부는 아르메니아 영토였다. 우리는 지금 양쪽나라의 국경지대를 아슬아슬하게 걸쳐가며 달리고 있는 중이다.   

 

 

저 밑 골짜기로 조금만 더 가면 아제르바이잔 영토가 될 것이다. 육안으로는 어디가 아르메니아 영토고 어디가 아제르바이잔 영토인지 구별이 안된다.

 

 

국경이 어떤 식으로 그어져 있든지 간에 나는 넋놓고 마음껏 경치를 살폈다.

 

 

우리가 카메라에 경치를 담느라고 정신이 없는 동안 기사는 엔진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마 어떤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이런 산중에서 고장이 나면 대책이 없다.

 

 

도로가에는 산딸기 덤불이 가득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딸기열매들이 이제 막 익어가는 단계로 가득 달려있었다. 

 

 

잘익은 놈을 골라 수북하게 따서 모은 뒤 한입에 털어넣었더니 양쪽 뺨이 약간 얼얼해지면서 단맛이 섞인 시큼새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언제 또다시 이런 경치를 대할 수 있으랴? 아르메니아에 다시 올 수나 있긴 한것일까?

 

 

큰 고개를 넘고나자 이젠 내리막 길이 나타났다.

 

 

이리저리 커브를 틀어가며 고개를 내려간다. 대지는 바싹 말라있었다.

 

 

아무래도 5월이나 6월경에 다시 와봐야 내가 원하던 초록빛 대지를 볼 수있을 것 같다. 길은 건너편 산으로 끝없이 휘감아 올라가고 있었다.

 

 

고개 밑바닥에서 자라는 키큰 포플러 나무 한그루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 부근에 마을이 있는듯 했다.

 

 

고개를 다 내려가자 수도원이 나타났다. 참으로 큰 고개였다.

 

 

이만큼 내려왔으면 다시 올라가야하지 않을까? 트빌리시로 가는 길은 멀기도 했다. 

 

 

 수도원을 뒤로 남겨두고 우리가 탄 차는 계속해서 조금 더 내려갔다.

 

 

고개 밑에 자리잡은 골짜기는 제법 비옥하게 보였다. 갈색 대지 사이사이에 푸르름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그 작은 푸르름때문에 마음까지도 안온해지기 시작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