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고샤방크 - 정감어린 곳

by 깜쌤 2015. 10. 16.

 

이제 우리는 고쉬(=Gosa 고시)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고쉬 마을에 있는 수도원이므로 샤방크(Goshavank)가 되겠다. 주차장 앞에는 호텔과 식당 및 기념품 판매점을 겸한 하얀색 건물이 자리잡았는데 매물로 나와있었다. 

 

 

 

지도를 보자. 오른쪽 아래쪽의 초록색 점으로 표시한 곳이 고샤방크의 위치다.  M4도로는 딜리잔에서 이제반으로 연결되는 간선도로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뜰것인데 면밀히 살펴보니 고샤방크에서 딜리잔으로 트래킹 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버킷 리스트에 담아두었다가 다음에 새로 가게 되면 꼭 시도해볼 일이다.

 

 

호텔 앞마당 작은 화분에는 빨간 채송화가 피어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꽃이다. 올해 봄에 내가 사는 집 담장밑에 가득 심어두었더니 매일 아침마다 수백송이의 꽃봉오리를 개화시켜 주어서 정말 원없이 감상했다.   

 

 

나귀와 즐겁게 놀던 ㄱ장로는 파라솔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안내판 뒤 잔디밭 위에 고샤방크가 얌전하게 자리잡았다. 지금은 모두들 고샤방크라고 부르지만 한때는 '고르 게틱'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수도원이다. 

 

 

 

보시다시피 지금도 수리중이다. 영어 위키피디어 자료를 찾아 읽어보았더니 복구자금은 아랍 에미리트(UAE)의 어떤 지도자 개인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아랍인이 돈을 대는 것만 알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하는데...... 하가르친 수도원을 복구하는데 든 비용도 그런 곳에서 나온 모양이다. 그가 지원하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게 궁금했다. 

 

 

호텔 앞 쉼터의 작은 화분에서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채송화를 보며 생명의 강인함과 까닭 모를 애수를 느꼈다. 나는 근본이 감상주의자인가 보다. 

 

 

호텔 앞 주차장이 마을 규모에 비해서는 그래도 너른 편이다. 

 

 

기념품 판매대에서 나는 귀한 물건을 보았다. 사진속의 까만 돌은 흑요석일 것이다. 이런 귀한 물질을 여기서 파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흑요석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지는 천연유리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흑요석의 생산지와 흑요석으로 만든 유물은 고대사에서 문명의 교류 흔적을 밝힐 때 아주 유용한 자료로 사용된다. 청동기나 철기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천연유리로 세공한 흑요석 칼은 오늘날의 요리용칼같은 구실을 했다.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장만하는데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 것이다. 어디에서 생산되는 것일까? 이 부근에 있는 큰 화산이라면 아라랏일텐데 그쪽에서 가지고 온 것일까?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생산지가 이 부근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흑요석 생산지는 백두산부근과 다른 두곳이라고 하던데 그 두곳이 어디인지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여튼 흑요석으로 만든 유물은 아라랏인근에서부터 바이칼 호수와 만주로 이어지는 곳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으므로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고고학에 대해 내가 개뿔도 모르는 주제에 이야기를 너무 거창하게 만들어나갔다. 각설하고.......

 

 

 기념품(?)을 파는 난전에서 나는 카치카르 모형을 발견했다.  아주 세밀하게 만든것 같아서 하나 살까하다가 또 참았다. 이제와서 너무 많이 참았다는 후회가 밀려오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인구가 적은 나라여서 그런지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시골 동네는 항상 조용한 것 같다.

 

 

물건을 파는 난전이 참 소박하게도 생겼다. 두번째 흑요석 사진은 여기에서 찍은 것이다.

 

 

정말 가난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 말기의 우리나라 시장 모습과 참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땐 정말 가난해서 시장에 들고가서 팔것조차 없던 시대였다.

 

 

나는 고샤방크 입구쪽으로 슬슬 걸어갔다.

 

 

건물들은 11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88년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니 그 전에 만들어진 것이 확실하다.

 

 

특이하게도 고샤방크에는 외부 담장이 없다. 개방된 장소라는 말이다. 고요함과 정숙함을 요구하는 수도원에 담장이 없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 아니던가? 예전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예사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입구 왼쪽에 수도사 모습을 한 인물상이 보였다.  

 

 

영어로 한마디만 해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른쪽 건물이 아스트바차친교회다. 왼쪽은 종탑과 도서관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이 건물이 아스트바차친교회다. 1191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1196년에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교회입구에서 본 고쉬 마을의 모습이다. 그리 크지 않은 산골마을이었다. 건너편에 마을 뒷산 숲속에 또다른 교회당이 보인다.

 

 

가만히 보니 이 수도사는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그가 수도사든 신부든 목사이든간에 성도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성직을 감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육체를 지닌 인간의 영혼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자세야말로 성직자가 가져야할 기본 품성일 것이다.   

 

 

교회왼쪽에 무너진 건물터가 보였다. 나는 거길 먼저 들어가보았다.

 

 

안에 들어가보았더니 담장으로 둘러쳐진 안쪽에 나즈막한 돌기둥 몇개가 흙바닥에 박혀있을 뿐이었다. 여기는 예전의 학교터였다고 한다. 수도원에 딸린 학교였지만 지금은 남아있는게 없다.

 

 

학교 바로 뒤에는 종탑과 도서관 구실을 했던 건물이 남아있었다. 종탑과 아스트바차친교회 건물 사이에는 아치로 덮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교회건물 그늘에는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도원 앞 공터에는 그들이 타고 왔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자동차들이 정차되어 있었다. 

 

 

나는 이 수도원의 핵심건물인 아스트바차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앞쪽은 채플공간으로 썼단다.

 

 

입구 오른쪽에는 양초같은 물건들과 작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아라랏산 전경이 들어가있는 엽서를 두장 샀다.

 

 

오른쪽 줄 밑에서 세번째 엽서다. 그 엽서를 이용해서 나중에 조지아로 건너간 뒤 한국으로 보냈는데 수신인은 아직도 못받았다고 하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보았다. 바닥에는 성화가 두개 놓여져 있었고 예배용의자도 단정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천장 돔에서 들어오는 빛줄기가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실내를 밝히고 있는 것은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도들이 켜둔 촛불이었다.

 

 

어디에 계시다가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는 성직자가 성경책인지 기도문인지 모를 글을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굵은 베이스톤이었는데 소리 울림이 탁월했다. 그는 위엄과 경건함이 함께하는 남저음 베이스의 멋진 음성으로 읽어내려갔다. 

 

 

인상이 너무 멋졌다. 고급진 인상이라고나 할까? 자비로움과 평화로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성직자의 얼굴이 냉혹하게 보이면 일단은 불합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합격점을 받고도 충분히 더 넘치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일가족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묵상을 하기도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여기에도 경건함이 넘쳤다.

 

 

아스트바차친 교회를 나온 나는 바로 곁에 붙어있는 성 그레고리 일루미네이터 교회( St. Gregory the Illuminator Church)쪽으로 갔다. 아세그나고르츠라는 이름을 가진 카치카르가 세워져 있었다. 이 작품은 고샤방크를 대표하는 걸작일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전역에서도 정교하기로 소문난 그런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더 마을을 굽어보았다. 평화로운 동네다.

 

 

뒤쪽에도 예배당이 하나 숨어있었다. 참 재미있는 구조다.

 

 

여기저기 숨어있는 작은 채플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뿐이랴? 카치카르를 찾아내서 감상하는 재미는 또 어떻게하고?

 

 

뒤쪽에 있는 교회는 성 그레고리 교회다. 

 

 

내부는 소박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꾸밈이 없는 제단과 단순한 장식이 경건미를 만들어냈다고나 할까?.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빛이 내부를 밝혀주고 있었다.

 

 

이제 고샤방크의 건물들을 거의 훑은듯 하다.

 

 

고샤방크의 옆산은 메말라있었다.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산꼭대기 부근에는 나무가 자라지 않았다. 

 

 

나는 호텔앞 마당을 향해 걸었다. 긴 거리가 아니므로 금방 가버린다. 

 

 

허브를 팔기도 했다.

 

 

차를 끓여먹으라는 말이겠지?

 

 

고샤방크 주위에는 정숙함과 경건함이 넘쳐흐로고 있었다. 산골마을이 만들어주는 정감어린 느낌은 덤으로 둘러쳐진 것이고.......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네한바퀴 - 딜리잔  (0) 2015.10.21
동네 한바퀴 - 고쉬마을과 딜리잔   (0) 2015.10.20
나귀와 수도사 3  (0) 2015.10.15
나귀와 수도사 2  (0) 2015.10.14
나귀와 수도사 1  (0) 201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