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르친 수도원을 구성하고 있는 세채의 교회중에서 첫번째 교회를 살펴보았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후딱보고 치울 일이지 산골짜기 교회에서 무얼 볼게 있다고 그렇게 세밀히 살핀다는 것인가하고 말이다. 그렇게 세밀하게 쓰면 언제 다 쓰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여행기는 기록이다. 기록은 기록이되 단순한 소감과 감상을 넘어서서, 여행기를 쓰는 개인의 역사임과 동시에 제3자의 시각으로 보는 그 나라의 단면이며 분석이기도 하다. 그러니 가능하면 세밀하게 기록해두고 싶은 것이 내 속마음이다. 문제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는 있지만 내가 지닌 실력이 워낙 박약하고 밑천이 모자라니 멋진 여행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 마당에서 건너편을 본 모습이다. 연한 주황색 지붕을 가진 집은 출입금지구역안에 있는 건물이다. 그 위쪽 앞에 보이는 흰색 건물은 개인 주택이었다. 거긴 나중에 가볼 생각이니 지금은 다른 예배당을 더 봐두어야했다.
화가였을까? 그림을 전시하는 이가 있었다.
아무래도 판매용인것 같다. 산중호수는 어디 호수를 묘사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두번째로 큰 예배당쪽으로 다가갔다.
방금 우리들은 첫번째 교회를 보고 나온 것이다.
예배당이 하나같이 아름답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모녀였을까? 예배당 앞에 앉아있던 분들이 사진찍는 것을 허락해주셨다. 사진 찍히기를 이렇게 좋아하는 나라 사람들도 드물지 싶다. 소녀의 눈망울이 맑기만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지나친 낭만에 젖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나도 한번씩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로망에 젖을 때가 있다. 그것은 어린 소녀들의 눈망울과 마주칠 때다. 동심을 담은 아이들의 눈빛은 워낙 순수하기에 나그네의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서기 때문이리라.
나는 앞산쪽으로 다가서서 지어진 두번째로 큰 교회건물 속으로 들어섰다.
앞쪽 공간을 지나면 그 안쪽에 또다른 공간이 하나 숨어있다.
바닥에 무지개가 서렸다. 천장을 통과한 빛이 만들어내는 조화같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살폈다. 그렇다. 빛이 천장을 통해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교회는 왜 출입문을 저렇게 작게 만들어두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었으리라.
나는 제단 쪽으로 다가갔다.
천장의 돔이 교묘하게 마감되어 있었다. 재주도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실과 후실의 개념을 차용한 것일까? 교회안은 두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안쪽 공간에서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성원의 차림새로 보아 일가족인것 같다.
무엇을 기원하는 것일까? 촛불에 비친 그녀들의 얼굴 표정이 마치 성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같아서 성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뜨거웠지만 교회 바깥 뒷면의 모습이 궁금해졌기에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큰 건물 뒤에 작은 건물 하나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으로 쓰는 공간인지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교회 건물들은 좁은 공간에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었다.
교회 뒤쪽으로 돌아가보았다. 짙은 그늘이 져있었다.
벽면 상단에 만들어놓은 십자가가 참 아름다웠다.
하가르친 수도원의 건물들은 회색이다. 다른 곳은 갈색이나 분홍색을 띠었었는데.....
예배당 뒤로 돌아가니 벼락맞은듯한 몰골을 한 나무밑둥치가 남아있었다. 그 옆에는 카치카르가 하나 세워져 있었고........
어찌보면 엄청 오래된 감나무같기도 하다. 하지만 단언컨대 감은 아닐 것이다.
십자가를 새겨둔 카치카르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자연사한 것일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어찌 느낌이 그렇지를 못한 것 같다.
교회에서 조금 더 떨어져서 살펴보았다. 그렇게 해보니 언덕위에 지어진 교회같다.
교회구경을 마친 사람들이 위쪽 도로에 세워둔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작은 교회들이지만 한결같이 십자가 모양으로 지어진 것 같았다. 하가르친에 있는 건물들은 1100년대에 처음 건축을 시작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파괴되기도 하고 가끔씩은 수리되기도 했던가보다.
심지어는 몽골군대에 의해서도 파괴되기도 했단다. 원나라의 군대의 군인들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 험한 산골짝까지 쳐들어와 마음껏 분탕질을 해댔으니 말이다. 오죽 했으면 복구작업을 하며 성모 마리아를 동양인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그려야했을까?
하가르친이라는 말 속에는 '춤추는 독수리 혹은 독수리의 춤'이라는 뜻이 들어있다고 한다. 나무 뒤로 보이는 먼 산봉우리들이 멋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듯 하다.
아까 사람들이 둘러서있던 카치카르의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십자가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뒷면까지 다 살펴보았으니 다시 앞으로 갈 차례다.
수도원 앞마당에는 멋진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가 몇그루 서있다. 그늘에는 아르메니아 관광객들이 따끈한 햇살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그림들이 아직도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그림들이 어느 세월에 다 팔려나갈지 모르겠다.
단풍들이 만들어내는 아르메니아의 가을풍광도 보통은 넘는가보다. 나는 그림속에 등장하는 색깔을 보며 아르메니아의 가을 풍경을 머리속으로 그려보았다.
이 어른을 무엇을 하다가 이렇게 잠시 꿀같은 휴식을 취하는 것일까?
수도원 앞마당에는 그새 사람들이 늘었다. 눈을 돌려 일행들을 찾았더니 한분이 당나귀와 놀고 있는듯 했다.
나귀다. 아니 저 양반이 언제 나귀와 저렇게 친해진 거지? 나는 나귀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나귀라는게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짐승이 아니지않은가?
예전에는 나귀들이 제법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나귀가 등장하는 동요도 남아있는것 아니겠는가?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먹고 맴맴, 담배먹고 맴맴~~"
그땐 교과서 속에 담배가 거리낌없이 등장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게 옛날 이야기처럼 여겨지는가? 내가 어렸을때 어른들이 시키는 심부름이라고 하면 주로 담배를 사러가거나 막걸리를 사러 가는 것이었다.
나는 수도원 구역을 벗어나 산골로 이어지는 작은 길을 따라 갔다.
고물 트럭이 토해놓은 벌통들이 골짜기 속 공터에 줄맞추어 놓여져 있었다.
벌통 쪽에서 살펴본 수도원 건물들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조금 더 걸어들어갔더니 군용지프가 한대 세워져 있었고 출입을 금한다는 뜻으로 금줄이 쳐져 있었다. 이런 나라들일수록 예민한 곳에는 다가서지 않는게 옳은 일이다. 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도로 위에 민가가 한채 있었다. 마당 밑 비탈에도 벌통이 놓여있었다.
개머루였을까? 열매가 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개머루 열매는 까맣게 익어야만 달큰해진다. 하나 따서 맛보려다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참았다.
그렇다면 이제 나귀를 만나러 갈 차례다. 당나귀 말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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