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귀를 만나러 갔다.
벌써 우리 일행 두분이 나귀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장면이 무언가 수상하게 느껴졌다. 내 눈에 지짐(=부침개, 전)이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검은 옷을 걸친 산타클로즈(?)가 등장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산타클로즈다.
그새 당나귀 사진을 많이도 찍어두었는지 스마트폰을 같이보며 산타 할아버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분은 음악적 소양과 유머가 대단한 양반인데, 소신있기로 유명한 보수기독교단에 소속된 교회의 장로다. ㄱ장로와 까만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가 그사이에 단단히 정이 든 모양이었다.
그걸 고집세기로 유명한 당나귀는 다 지켜보았던가보다. 녀석은 흐뭇한 표정으로 잔잔한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당나귀 주인이 다시 돌아왔다. 손에 들고있는 것은 기름통이다.
포장안된 도로 끝에 있는 하얀 집이 당나귀 주인의 집인가보다.
나귀 주인은 나귀몸에 기름을 발라주고 있었다. 그래야만 피부병도 덜 생기고 기생충도 적게 붙으며 튼튼해진다고 한다.
나귀는 말보다 덩치가 작다. 체구는 작아도 말보다 오래 산단다. 나귀를 donkey나 ass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특히 ass라는 말 속에는 고집쟁이 혹은 멍청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 <슈렉> 1편에는 말하는 당나귀가 슈렉의 친구로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슈렉에 등장한 동키(donkey)는 아주 지혜로운 녀석으로 처신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당나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속의 캐릭터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나귀는 제법 영리하다고 한다. 말보다 확실히 더 영리하다고 하는데 그 근거로 위험을 느끼면 주인의 명령에도 불복종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고집도 세어서 주인의 행동이 만만해보이거나 덜 떨어진 존재로 한번이라도 인식해버리면 고집을 부리기 일쑤란다. 그러니 당나귀고집이라는 말이 생겼는가 보다.
주인이 일을 시키려고 나귀 등에 얹을 안장이라도 찾는 기미를 보이면 어떨 때는 슬며시 가출하기도 한단다. 이 정도면 완전히 눈치 구단에다가 농땡이 기질을 가미한 짐승임이 틀림없다. 당나귀 대가리라고 함부로 부르면 인간이 당할 수도 있겠다.
나귀는 말보다 체구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허리가 튼튼해서 사람을 태우고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덩치 커다란 사람이 작은 당나귀를 타고 다니면 볼썽사납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문제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퀴즈 하나 들어가자. 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는 말이름은 무엇일까? 그러면 돈키호테의 몸종인 산초가 타고다니는 짐승은 무엇일까?
로시난테다. 비썩 마르고 못생긴 말, 로시난테! 그런 말이 돈키호테의 눈에는 천하의 명마로 보였다는게 문제다. 산초는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 주인은 버쩍 마른 말을 타고 종은 당나귀를 타고..... 그 모습이 가관이지 않겠는가?
깜장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는 나귀 주위 맴돌기를 그만하고 수도원의 나무 그늘쪽으로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나도 물론 따라갔고.....
깜장 산타는 ㄱ장로를 극진히 사랑하기 시작했는지 같이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두사람은 떨어짐없이 붙어다녔다.
이날 하가르친 수도원의 히어로는 단연 산타할아버지와 나를 뺀 나머지 한국인들이었다. 깜쌤도 까맣기는 마찬가진데 까만 산타만큼 인기가 없었고 심지어는 아르메니아사람들에게도 별로 안좋은 존재로 비친 것 같았다.
잘 생긴 ㄱ사장도 그날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인기가 별로였다. 그러니까 인기순서를 매기면 이렇게 된다.
1위 - ㄱ장로와 깜장 산타
2위 - 덩치좋고 풍채좋은 사진사 양반
3위 - 미남 ㄱ사장
4위 - 깜쌤
그 증거는 아래 사진속에 다 드러나있다.
두사람 주위에는 아르메니아 현지인들이 바글거리는데 내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다. 확실히 사람은 인물이 잘나고 볼 일이다. 그날 ㄱ장로는 스타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보고 채키챈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채키챈이 누구냐고? 홍콩의 전설적인 무술스타 성룡을 영어로 그렇게 부르지 않는가? 아마 깜장 산타도 ㄱ장로를 채키챈으로 알았거나 아니면 그의 뛰어난 유머감각에 넘어갔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확실히 그날 수도원 분위기는 짱이었다. 까만 옷을 입은 수도사를 살펴보자. 그정도 인물이면 산타할아버지를 닮았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채키챈이 나타났다는 소문때문에 사람들이 나무 밑으로 제법 모여들었다.
얼굴 노란 동양인들 가운데 세계적인 무술스타가 끼어있다고 소문(?)이 났으니 안몰려들고 되겠는가?
신이난 산타할아버지는 마침내 어린아이 하나를 골라 급기야는 무등을 태우기까지 했다.
잠사니마 그날 우리들은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쇼를 감상했던 것이다.
누구하나 불쾌하게 여기는 않는 아름다운 장면이 벌어졌던 것이다.
영화 <34번가의 기적>을 보는 듯한 날이었다.
아참, 당나귀 임신기간이 364일 정도 된다는 이야기를 안했다. 사람보다 더 길다. 오래 사는 녀석은 한 오십년 정도 산단다.
이제 당나귀는 저 멀리 산비탈 도로에서 다른 손님들과 놀고 있었다. 우리는 산타 할아버지와 놀고.....
미국 민주당을 나타내는 동물은 당연히 당나귀다. 공화당은 코끼리고....
우리가 당나귀와 깜장 산타를 보고 신기하게 여겼듯이 확실히 그들은 우리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던가보다.
덕분에 우리는 숱하게 사진 찍혀주어야했다.
이제 다시 진지모드로 들어가자. 검은 옷을 입은 그분은 수도사였으리라. 어쩌면 신부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르메니아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무 그늘을 벗어났다. 다음 행선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사와 관광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는 택시가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나와 차에 올라탔다.
다음 목적지는 고샤방크다. 가다가 철교를 만났는데 철교위에 누렁소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기차가 오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고샤방크로 가는 길에 참한 마을을 하나 지나쳤다.
길은 어느덧 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참한 광장을 가진 산골마을에 도착했다.
광장을 겸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고개를 위로 돌렸더니 바로 앞에 멋진 예배당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바로 고샤방크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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