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이 밝았다. 오늘은 8월 15일 토요일, 광복 70주년을 맞는 의미깊은 날이다. 압박과 설움속에서 역사를 가꿔온 것은 우리나라나 아르메니아나 크게 다를바 없다.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횡포와 일본이라는 섬나라 인간들의 잔혹함 속에서 기적적으로 독립을 유지해온 우리나라가 아르메니아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았다고 표현해도 그른 말은 아닐 것이다.
어제 구한 지도에 여러가지 소중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딜리잔에서 이제반, 바나조르, 예레반, 그리고 조지아의 트빌리시로 연결되는 교통편이 나와 있었다. 우리는 내일쯤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로 갈 생각이므로 이런 정보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우리가 묵고있는 마그니트 비앤비의 정보도 담겨있었다.
지도속에 담겨있는 정보를 훑어보다가 아침식사시간이 조금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동네에 나가보기로 했다.
아무리 보아도 우리가 묵고있는 마그니트비앤비의 시설은 고급져보인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집에는 벤츠승용차를 가지고 있었다. 트빌리시로 이동하는 장거리 손님들을 태워주는 모양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우리는 이 집에 고급승용차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나중에 다른 차를 교섭해야만 했다.
일행 한분은 집에 남기를 원해서 나와 ㄱ사장이 마을 구경에 나섰다.
차고 옆 화분에는 밝은 선홍색을 지닌 봉숭아가 자라고 있었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에는 내가 어렸을때 수도 없이 보았던 그런 꽃들이 가득했다. 그런 꽃들은 마치 유년시절의 시골집에 온듯한 느낌을 만들어주었다.
아련한 추억과 가슴 저리도록 그립기만한 소중한 기억들을 아무리 되살려내려고 해도 이젠 그런 노력조차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이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서 대문밖으로 나갔다.
바나(드)조르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고요함과 평화로움만 가득했다.
집앞 도로에는 승용차 몇대가 세워져있었다. 아마 비앤비에 묵는 손님들이 타고온 차량들 같다.
도로 건너 맞은편 집 마당에는 멋진 승용차 한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도로가에는 집집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이 흉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직사각형으로 멋없이 지은 아파트들이 개울가에 자리잡았다. 그래도 건물 색은 통일되어있어서 색상조화는 이루는듯 했다.
이게 지금은 작은 개울이어도 나중에는 국제하천이 된다. 지도를 따라가보았더니 조지아로 흘러가다가 나중에는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개울물은 그런대로 맑았지만 고기들이 보이지 않았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자 학교 건물이 나타났다. 아무리 살펴봐도 학교다.
평생을 아이들과 살아서 그런지 학교만 봐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직업이 만들어준 습성은 무섭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선생이 되지 싶다. 언어학이나 역사학을 전공해서 강의를 하고 글을 쓰면서 사는 인생도 좋다.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방에 숲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나는 주민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엿볼 길이 없었다.
학교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여기도 지금은 방학기간인가 보다.
학교앞을 흐르는 개울을 따라 이면도로가 남북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상류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하류쪽으로는 어제 가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참 희한한 광경이 내 시선을 확 끌어당기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소들이 나타난 것이다. 녀석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운동장으로 들어가더니만 천연덕스럽게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천하태평이다. 어떤 녀석들은 풀을 뜯기도 했고 어떤 녀석들은 우물거리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딴데서 뜯어삼킨 풀을 되새김질하는듯 했다.
나는 이런 평화로움이 좋았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평화로움을 깨뜨리고 싶지 않기에 조용히 지나치기로 했다.
아까 내가 건너온 작은 다리부근에 체육복을 입은 아가씨가 나타났다. 운동화끈을 고쳐매는듯 하더니 이내 조깅을 시작했다.
뒤로 묶은 짧은 꽁지머리카락이 좌우로 달랑거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아가씨는 아닌듯 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니면 중학생이리라. 오랜 직업생활에서 터득하게 된 마음의 눈은 속일 수가 없다.
처음에는 도로를 따라 뛰다가 곧이어 인도로 올라와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귀엽다.
그 아이의 발소리가 사라지고 나자 인도에는 벽화속의 소녀가 남긴 소리없는 미소가 고요하게 내마음 속으로 번져나갔다.
학교에는 언제 합세했는지 개 한마리가 소들과 어울려 함께 놀고 있었다.
소들은 여기서 아침 배를 불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 귀에 영어 소리가 들렸다.
"Hi !"
소녀가 먼저 영어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Inesa 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여자중학생이었다. 영어발음도 좋고 문장도 제법 유창했다. 엄마가 영어선생님이어서 쉽게 배울 수 있었단다. 이 아이는 겸손하게도 자기들 학교 선생님들도 실력이 좋아서 영어를 더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고 자랑아닌 자랑을 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어찌 하나같이 이렇게 순수한지 모르겠다.
"이네사! 보고 싶어요.(= Inesa! I really want to meet you again.")
그 아이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아까 보았던 작은 공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식사전의 산책으로 이런 만남만큼 멋진 선물이 또 있을까 싶다.
학교뒤로 이어지는 담벼락에는 사람들의 얼굴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아주 사실적이다.
작은 공원에 버티고 서 있는 은빛 조각물이 나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저 작품은 어디서 본듯하다. 어디서 보았을까?
쓰러진 동료병사를 일으켜세우고 있는 또 다른 병사의 모습이 처절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싶었다.
조각물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다가 뒤를 살펴보았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비앤비가 보였다. 참한 동네다.
언덕 위는 공동묘지 같았다. 언제 어떻게 죽은 사람들을 모셔놓은 곳인지 명확하게 밝혀둔 설명은 없었지만 일부는 참전용사들의 무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비석에 새겨진 얼굴들은 하나같이 선명했다. 아제르바이잔과의 영토확보를 위한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일까? 자세히 보니 여자들도 있었고 죽은 연도가 모두 달랐다. 어찌보면 단순한 공동묘지일 수도 있겠다.
나는 조각상의 병사들 표정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그런데 관리상태가 부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각상 부근에 마구 자란 풀이라도 뽑아두었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그게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다.
괜히 내가 마음이 아려왔다. 죽은 자를 기리는 마음은 말로만 되는게 아니다. 옛날 로마인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콰이(쾌)강의 다리'로 유명한 태국의 칸차나부리에 가면 연합군(유엔군이 아니다) 병사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주로 영국군 전사자들의 무덤이 많은데 거의 예외없이 예쁜 꽃이 꽂혀있었다.
태국인들이 일부러 돈을 내어 새꽃을 갈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돈을 대어주고 사람들을 시켜 갈아주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부산에 있는 유엔군 묘지에도 선진국 병사들의 무덤에는 새 꽃이 꽂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있는 곳에 꽃 한송이라도 꽂혀있는 법이다.
딜리잔 마을의 뒷산이 건너편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뒷산의 트래킹 트레일이 그렇게 좋다는데 거기를 못걸어보고 아르메니아를 떠나고 말았다.
"애고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일정에 쫒겨 너무 무식하게 여행을 해버렸네."
여행기를 쓰면서 나는 새로이 탄식을 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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