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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코카서스 산중의 멋진 휴양지 딜리잔에 도착했다

by 깜쌤 2015. 10. 5.

 

딜리이니, 딜리잔이니 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거기가 뭐 그리 대단한 곳이길래 그러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사실 딜리잔이 어떤 곳인지 나도 잘은 모른다. 론리 플래닛의 정보 하나만 믿고 찾아가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봐도 우리나라 사람가운데 딜리잔을 세밀하게 구경한 분은 드문것 같았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길은 마냥 내리막을 이루고 있었다. 산에 나무들이 가득했다. 기후대가 슬며시 바뀐듯한 느낌이 들면서 스위스 스타일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는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더니 산중 마을 삼거리 로터리 형식의 교차로 부근에서 멈추어섰다. 운전기사는 딜리잔에 다왔다고 했다. 내심 짐작은 했지만 목적지에 너무 쉽게 와버린듯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싱거워졌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호텔을 찾아야했다. 친절한 운전기사는 우리들을 보고 정해놓은 호텔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없다고 하면 삐끼짓을 할까봐 살짝 신경이 쓰이는 질문이었지만 그는 그런 짓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론리 플래닛을 읽어보고 미리 찍어놓은 데가 있었다. 나는 거기를 가보고 싶었다. Magnit B&B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마그니트 비앤비!  아침식사가 3,000드람 이상의 가치를 가진 곳이라고 론리 플래닛에 나올 정도라면 아침 식사 하나는 잘 준다는 말이겠다. 거기다가 방도 깨끗하다니 가보기로 했다. 

 

 

운전기사는 우리를 마그니트 비앤비(B&B) 앞에다가 내려놓고 사라져갔다. 그는 꽤나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세반호수에서 넉넉하게 기다려준 것이 고마워서 1,000드람을 팁으로 얹어주었다. 어제는 그와 함께 타테브를 다녀왔고 오늘은 그가 우리를 딜리잔까지 실어다준 것이다. 그의 명함에 나타난 이름과 주소 및 전화번호를 소개해드린다.  

 

 

기사 이름    Harutyunyan Harutyun

이메일주소  Harutyunyan75@mail.ru

전화번호     374 9542 1476,     374 9842 1476,     374 9942 1476

 

 앞에 붙어있는 374는 국제전화를 걸때 필요한 아르메니아국의 코드번호임을 기억해 두면 편하다. 그가 준 명함을 자세히 살펴보니 택시대절 가격은 1킬로미터에 99드람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참고로 하시기 바란다. 우리가 오늘 그에게 지불한 가격은 팁 포함해서 16,000드람이었다.

 

 

사진 속의 어떤 사람이 깜쌤인가 싶어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죄송한 이야기지만 내 모습은 여행기 속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적당하게 생겨서, 잘난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인간이라고만 생각해두면 틀림없다. 

 

 

나는 안에 들어가서 주인아줌마를 만나보았다. 영어가 그런대로 통하는 기품있는 분이었다.  1층에 있는 4인용방 한칸과 2층에 있는 4인용방을 각각 한칸씩 쓰기로 하고 가격은 1인당 8,000드람으로 교섭을 끝냈다. 물론 아침식사가 포함된 가격이다. 

 

 

영수증 발급이 안될 것 같아서 돈을 지불했다는 증거로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트러블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 이제부터 실내를 구경해보기로 하자.

 

 

내가 묵는 2층 방이다. 4인실인데 두사람이 쓰기로 했다. 4인실을 두사람이 쓰니 널널해서 좋다.

 

 

방에는 옷장도 있다. 텔레비전은 어느 회사 제품인지 모를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쓰고 있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해주어야 한다.

 

 

방안에서 복도를 본 모습이다. 이 집은 4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잘 지은 집이다. 이만하면 저택이라고 할만하다.

 

 

뒷마당으로 나가는 복도를 따라 가보았다. 복도에는 카펫이 깔려있었다. 통로 왼쪽주방에는 손님용 조리기구들과 그릇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뒷마당에는 바베큐시설이 되어 있었고.....

 

 

어린아이를 데려온 가족을 위해 뒷마당에서도 그런대로 쉴 수 있게 해두었다.

 

 

뒷 정원에서 바라본 마그니 B&B의 모습이다.

 

 

뒤뜰에서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닭장도 숨겨져있었다.

 

 

제법 많은 수의 닭들이 닭장안에 보였다. 레그혼종 같기도 하다. 

 

 

이만하면 멋지지 않은가? 뒷마당을 둘러본 나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2층에 있는 응접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2층 통로 끝에서 밖을 본 모습이다. 마당앞쪽으로 바나드조르(=바나조르)로 이어지는 도로가 지나간다. 현지에서는 이 길을 칼리닌포고츠라고 부른다. 칼리닌 거리 정도로 옮겨도 무방할 것이다.  

 

 

응접실 바닥에 깔린 카페와 피아노, 탁자와 의자들이 한결 고급스럽다.

 

 

국민소득 3천달라 정도의 국가에서 이 정도로 해두고 산다면 정말 잘 사는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3층으로 올라가는 통로계단은 대리석으로 깔려있었다. 내부시설을 보고 있노라면 우습게 보기에는 너무 곤란한 그런 민박집이다.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본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러시아 귀족들의 집을 보는듯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우리 일행이 머무는 방에 들어가보았다. 여기도 4인실이다. 창문이 없어서 그렇지 역시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처음에 우리가 들어온 통로를 따라서 마당으로 가보았다.

 

 

칼리닌포그츠쪽에는 또다른 식당이 자리잡았다. 

 

 

대단한 규모다. 아래쪽이 마당이다.

 

 

집구경을 마친 우리들은 일단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집을 나섰다. 처음에 도착했던 로터리 부근에 가야만 레스토랑이 있을 것 같았다. 

 

 

마을의 구조를 살펴두어야 오늘과 내일 할 일을 결정할 수 있겠다싶었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쪽으로 내려갔더니 아파트가 보였다.

 

 

바나드조르쪽에서 흘러오는 개울이다. 개울물이 그런대로 맑았다.

 

 

개울을 따라 도로가 나있고 아파트와 단독주택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하류쪽의 모습이다.

 

 

개울에 걸린 작은 다리를 건너면 학교라고 생각되는 건물이 나타난다.

 

 

소련방시절에 지어진 것인지 최근에 지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산골 휴양지에 아파트들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신기하게 여겨졌다.

 

 

아르메니아 문자와 함께 영어간판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서방에 개방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는 한때 소련땅이었다.

 

 

사실 말이지만 나는 세상이 이런 식으로 변하리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소련이라는 나라가 존재할 때 모스크바를 가본다는 것은 상상을 못했었고 카프카즈 산골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고 살았다. 

 

 

소련과 중국은 악의 축을 이루는 국가들로만 여기고 살았는데 세상이 이런 식으로 뒤바뀐 것이다. 이런 여행이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그만큼 신장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아르메니아의 딜리잔에서 마주친 것은 1980년대 초반의 모습이었다. 나중에 산골에 들어가서 나는 1960년대 후반의 풍경을 마주치게 된다. 개울길을 따라 걸었는데 얼마되지도 않아 마을 중심부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마을 중심부의 로터리 부근이다. 어찌보면 사거리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삼거리같은 기분도 드는 길이다. 저 조각품은 누구를 묘사한 것일까?

 

 

수돗물이 나오는 곳인데...... 

 

 

세반에서 넘어온 길이 하나는 이제반으로 이어지고 하나는 바나드조르(=바나조르)쪽으로 이어진다고 보면  삼거리가 틀림없다. 또 다른 길 하나가 호텔들이 있는 마을쪽으로 연결되기도 하므로 사거리라고 봐도 되는 것이다.   

 

 

하가르친수도원이 제법 유명한가보다. 나는 그 지명을 기억해두었다. 

 

 

 이제 중심부에 다 온듯하다. 우리가 제일 처음에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저 앞에 작은 레스토랑이 있다는 것을 아까 봐두었다.

 

 

얇은 빵 라바시에 고기를 싸서 주는 요리 정도로 점심을 때울 생각인데 콜라 한병까지 곁들여 800드람이라는 말이겠지? 

 

 

나는 간판에 있는 음식을 상상하며 가게로 들어섰다. 얇고 납닥하게 구운 빵이 라바시라면 라바시에 고기를 썰어서 싸서 주면 터키식 터키식 케밥이 되는 것 아니던가? 그렇게되면 뭐라고 불러야하는지 헛갈리게 생겼다. 

 

 

나는 간판에 있는 음식 모습을 사진찍어 주인에게 보여주고 음료수도 한병 시켰다. 사진에 나타나있는 하얀색 음료는 아르메니아 전통 요거트라고 보면 된다.

 

 

나온 음식은 이런 식이었다. 그렇다면 이름을 샤우르마 정도로 붙여도 될 것 같다. 속에 고기가 듬뿍 들어있다. 음식을 내어주는 주인 아줌마의 몸매는 훌륭한데 도통 말이 없었다. 처음부터 말이 없는 사람인지 아니면 기분나쁜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음식을 다 먹고나서 밖에나와 간판을 살펴보았더니 아무래도 우리가 먹은 음식의 이름은 샤우르마같다.

 

 

옆집 간판을 살펴보았더니 대형 샤우르마가 3000드람이란다. 치킨도 있다고 해서 미리 점찍어두었다. 오늘 저녁은 통닭이다. 아르메니아 휴양지 비앤비에서 통닭파티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었으니 오후 시간을 이용해서 숙소에서 가까운 산골 교회를 가보기로 했다. 놀면 뭣하던가?

 

 

아르메니아 운전자들의 매너는 그런대로 좋았다. 차량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도로에 그어진 길고 좁은 횡단보도지만 사람이 들어서면 차들이 멈추어 설줄 알았다. 

 

 

개울을 따라 형성된 산비탈 마을에는 멋진 집들이 숨어있었다. 그런 곳이 딜리잔이다. 딜리잔에는 고급 호텔과 좋은 숙소들이 가득해서 최성수기가 아닌한 숙박시설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노란색 마슈르카 한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컬버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고물도 이런 고물이 없다. 디자인은 또 어떻고...... 구소련시절에 생산된 차량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괜히 마음이 아려왔다. 잘못된 체제가 만들어낸 비극의 산물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순박했다.

 

 

그늘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던 사람들이 자기들 모습을 사진찍어라는 뜻으로 제스추어를 보이며 자세까지 잡아주었다.

 

 

햇살이 따가운 한적 산골마을 오후의 한장면이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