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을 출발한 자동차는 시가지를 달려서 외곽으로 나가야했다. 어제 우리들이 아르메니아 남부지방을 둘러보았다면 오늘은 북동부 지방을 둘러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 일정은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는 식이 될 것이다. 그렇게 표현하고나니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연출한 무슨 영화제목 같기도 하다.
도로 한가운데서는 트롤리용 전선을 손보고 있었다. 예레반의 또다른 면모를 보는 것 같아서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예레반의 인구가 100만명이라고 하던데 그 정도면 이 나라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이 도시에 몰려산다는 말이 된다.
나머지 땅에 200만이 흩어져 사는 나라이니 시골에서는 사람구경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겠다. 조선시대 세종때 조선의 총인구가 500만가량이었다고 하니 비교가 되기도 한다.
마슈르트카(=마슈르카 mashrutka)! 아르메니아를 누비고 다니는 미니버스를 이르는 말이다. 세반이나 딜리잔으로 갈 때 사용할 수 있는 마슈르트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큰 버스가 아니다- 정류장이 도심에서 4킬로쯤 떨어진 북쪽 어딘가에 있다고 하던데 어딘지를 모르겠다.
아르메니아말로는 마슈르트카 북부 정류장을 Hyusisayin Avtokayan라고 한다던데 지나치면서 살펴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슬쩍 지나친 풍경 가운데 터미널처럼 보인 곳이 있긴 있었지만 확실치가 않으니 그곳이라고 단정지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택시를 대절하지 않았으면 세반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슈르트카라는 이름을 가진 미니버스를 탔어야한다. 도심에서 미니버스를 타기 위해 교외지역으로 나가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돈이 들어도 택시대절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레반은 이제 정돈되어 가고 있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후지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도로가에는 물놀이용품과 장작을 파는 가게들이 제법 보였다. 아하, 우리는 지금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바다나 마찬가지인 세반호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뻔 했다. 장작은 바베큐용인가 보다.
지도를 보고 확인해보자.
1 -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
2 - 첫번째 목적지 세반
3 - 오늘의 최종목적지 딜리잔
4 -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
5 - 터키 영토인 아르다한. 카르스를 갈때 그냥 지나쳤던 작은 도시였다.
6 - 나중에 우리가 방문하게 될 카르스. 멋진 도시였다.
7 - 카르스에서 택시를 타고 찾아간 아니 유적지.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선 바로 부근에 있다. 꼭 가보기를 권한다.
세반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나 마찬가지였다. 바위 위에 거대한 독수리상을 만들어놓았다. 아이캐쳐용으로는 그저그만이다.
이만하면 멋진 길 아니던가? 차들도 제법 속도를 올려서 달리는듯 했다. 우리가 탄 차는 마슈르트카를 제쳐내기도 했는데 차안을 훔쳐보았더니 조금 복잡한듯 했다. 택시타기를 잘한듯 했다.
능선은 부드럽지만 나무 한그루 없어서 거치르고 메마른 듯한 느낌을 주는 산들이 이어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포플러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진 곳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포플러가 우거진 가로수길은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도로가에 반드시 포플러를 심었다. 늦가을철이면 노란색 포플러 이파리들이 꽃비처럼 마구 떨어졌었다. 바람이 조금 세게 부는 날은 장관을 만들어주었는데....
출발하고나서 한시간 정도 달렸을까? 자그마한 마을이 등장했다. 누가봐도 세반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예배당이 그런 사실을 증명해주는듯 하다.
나무 한그루 없는 낮은 산을 배경으로 자그마한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세반은 세반호수로부터 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것 같았다.
도시라고 했지만 크기로 따지자면 우리나라의 작은 읍정도밖에 안될 것 같다. 제법 번화한 면소재지 크기정도일지도 모른다. 마을을 지나자 자동차는 호수를 옆으로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차는 반도처럼 호수 안으로 고개를 삐죽 내민 곳을 달렸다. 이름하여 세바나방크라고 부르는 곳이다. 길 양쪽으로 나무가 우거져있다. 길 끝머리에 우뚝솟은 교회가 보인다. 세바나방크다.
운전기사는 최대한 교회 가까이로 접근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주었다. 그의 성의가 고마웠다.
우리가 타고 온 차를 나무 그늘에 주차시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언덕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가 그와 약속한 시간은 30분이었지만 사람좋은 그는 얼마든지 더 구경하고 오라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언덕으로 오르는 입구 부근에는 가게들이 많았다. 우리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예배당으로 오르는 언덕길을 걸었다. 언덕길에서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그림을 파는 장사꾼이었다. 사실은 그가 장사치인지 화가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물건을 파는 것으로 보아 나는 장사꾼으로 인정해주고 싶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호수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엄청 크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길이가 80킬로미터에다가 폭이 약 30킬로미터라니까 이 정도면 바다라고 여겨도 되지 싶다. 세반호수는 민물호수다. 민물호수이기에 아르메니아의 보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사는 인기있는 물고기가 이쉬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송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여기 물로 수력발전을 하기도 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그때보다 수심이 20미터정도 낮아졌단다.
지금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이 곳도 예전에는 섬이었다는 말이 된다. 수심이 낮아지면서 2천년전의 요새나 집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 빛을 보는 고고학적인 행운도 가져다 주었다.
환경보호론자들의 노력과 정부의 협조로 2002년보다 수심이 약 2미터 정도 상승했다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물이 더 맑아지고 수자원이 더 많아졌다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한다. 고원지대에 자리잡은 호수여서 관광객들이 몰리는 여름 한철이 지나면 주위도 한산해진다고 한다.
예배당으로 오르는 계단 가에 세워져있는 카치카르를 구경한다음 계단을 올랐다.
저만치 밑에 주차장과 비치가 보였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쪽으로 호수가 육지속으로 파고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이 곳은 반도임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호수 복쪽끝자락의 모습이다. 이따가 우리는 저 산을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왼쪽으로 보이는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서 산을 넘거나 둘중에 하나일 것이다.
언덕 밑 호수가쪽에 깔끔한 예배당이 보였다. 지도를 가지고 확인해보니 성 야곱교회였다.
비둘기를 조롱속에 넣고 기다리는 장수가 보였다. 돈을 내면 비둘기를 날려주는 모양이다. 그때 사진을 찍을 것이고.....
교회로 오르는 계단은 그리 가파르지도 않다. 그리 높지도 않으므로 누구든지 부담없이 오를 수 있다.
호수물색은 날씨와 기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한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의 세반호와 이란의 우르미야호, 터키의 반호수를 연결하면 삼각형이 만들어진다. 거기가 아르메니아인들의 본거지였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의 조상을 성경에서 찾는다.
노아의 대홍수로 유명한 노아의 손자의 손자인 Hayk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우리민족이 우리 자신을 부를 때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것처럼 아르메니아인들은 자기조상들이 살아온 땅을 Hayastsn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익의 후손들이 사는 땅이라는 말이리라.
호수가로 철길이 깔려있었다. 기차가 한대 지나가고 있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했다.
성 야곱교회를 발밑에 두고 우리는 언덕위로 올라갔다.
돌판에 조각을 새기는 사나이는 남에게 신경쓰지 않고 자기 일만 하고 있었다.
몰두하는 사람은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비록 지금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있는 장사치일뿐이지만 연륜이 더 쌓이면 그는 위대한 예술가가 될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는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혼이 없는 작품을 팔면 장사치지만 자기의 혼을 담아낸 작품을 팔기시작하면 그때부터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삼류와 일류의 차이는 거기서부터다. 공산품 속에도 혼이 들어간 작품은 명품이 되고 혼이 없는 작품은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래된 건물이라고 해서 다 문화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가 장인으로 취급받게 되는 날이 어서 속히 빨리 다가오기를 빌며 교회안으로 들어갔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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