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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타테브 - 잊을 수 없는 절경 2

by 깜쌤 2015. 9. 28.

 

우리가 탄 케이블카가 맞은 편 절벽에 접근하자 가파른 벼랑끝 왼쪽편에 교회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저기인가보다. 

 

 

마침내 케이블카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케이블카가 왕복하는 선로 밑으로는 얼마전에 장만해둔 것같은 건초더미가 보였다.

 

 

지름 4센티미터짜리 외줄 하나에 매달린 철 상자에 목숨을 담아가지고 온 사람들은 공포감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 아니면 땅바닥에 발을 딛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가지는 안도감을 재빨리 맛 보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모두들 후딱 내려버렸다. 우리와 함께 온 러시아 커플이 제일 뒤에 내린듯 하다.

 

 

맞다. 우리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며 종일토록 함께 움직여야 하는 러시아 커플, 그 사람들이 맞다. 그들과 우리는 몇시에 만나자는 말도 없이 그냥 헤어져서 사람들 틈사이에 섞여들고 말았다. 시간을 맞추어두어야 행동하기에 편할 것이지만 서로들 알아서 행동을 잘 하는 사람들이니 신뢰감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린 사람들이 사라지자 타테브에서 나가는 사람들이 탑승을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의 수를 대강 짐작해두었다. 나갈 때를 대비해서다.

 

 

케이블카 도착지 부근은 출발지처럼 하나의 거대한 언덕이자 산자락이었다. 케이블카 부근에는 작은 마을도 존재했다. 구글 지도를 가지고 검색해보니 타테브 마을에는 B&B도 몇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서 숙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타고온 케이블카의 공식 명칭은 윙즈 오브 타테브(Wings of Tatev 타테브의 날개)다. 제원이 상세하게 나타난 안내판이 있길래 사진을 찍어두었다. 스위스의 가라벤타 회사와 오스트리아의 도펠마이어 회사가 만든 모양이다. 25인승이고 한번 건너는데 12분에서 15분 정도가 소요된단다.

 

 

타테브 수도원으로 가는 짧은 길가에는 현지인들이 차려놓은 작은 난전들이 통로가에 줄을 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강원도 산골 절마을 입구에 있는 산나물파는 가게같은 곳이리라.

 

 

우리같은 나그네들 입장에서는 뭐 하나 팔아드릴 것이 없다.

 

 

엄청나게 큰 빵도 팔고 있었다. 저런 것들은 어떤 맛을 가지고 있을까싶어 괜히 궁금해졌다. 한덩어리정도는 팔아주고 싶어도 처치할 자신이 없어서 참기로 했다.

 

 

 

요새같은 느낌을 주는 수도원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돌로 쌓은 벽으로 둘러싸였으니 성같은 느낌을 준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성문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벽도 엄청 두텁다.

 

 

안마당에는 우리보다 먼저 온 많은 관람객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우리야 급할게 없는 사람들이니 천천히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성문처럼 생긴 수도원 입구를 통과하자 돌로 만든 교회 건물들이 나타났다.

 

 

벽으로 둘러싸인 구역안에는 모두 세 채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중심건물은 '수르프 포고스 페트로스'라는 이름을 가진 예배당이다. 지금 보는 건물이다. 영어로 옮기자면 'St Paul and St Peter' 정도일 것이다. '성 바울과 베드로 예배당'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리라.

 

 

구역 전체를 두터운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데 성벽 안쪽에는 건물이 덧대어져 있었다.

 

 

입구 오른쪽 건물 속으로 먼저 들어가보았다. 둥근 천장을 가진 긴 회랑이 나타났다.

 

 

타테브는 행정구역상으로 예전부터 시우닉(Syunic, 슈닉)지방에 속했던 곳이다. 시우닉(=슈닉)에는 주교가 있었기에 이 지방의 중심지 노릇을 하다가 서기 848년에 시우닉 지방을 다스리던 필립왕자의 도움으로 예전 성당이 있던 곳에 새로운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아르메니아는 4세기 초(서기 301년)에 기독교 국가가 된 전통이 있었기에 타테브의 수도원은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급속하게 성장했다고 전해진다. 한때는 약 1천명의 수도사들이 거주했을 정도로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성장하기도했지만 이를 시기한 이슬람세력의 침입으로 서기 1044년경에는 철저히 파괴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고난은 계속되었다. 셀추크 터키 세력의 침입과 핍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서기 1136년의 지진으로 인해 기껏 복구해놓은 건물들이 무너지기도 했다. 서기 1170년에는 셀추크 터키가 수도원에 보관중이던 필사본 약 1만여점을 불태우기도 했으니 고난의 기간은 길기도 했다.

 

 

나중에는 몽골 군대의 침입으로 인해 엄청난 고난을 겪기도 했고 티무르의 침입으로 인해 철저히 약탈당하기도 했던 역사를 가진 곳이 바로 타테브의 수도원이다.

 

 

나는 수르프 포고스 페트로스 예배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가 규모에 비해 참으로 웅장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 건물을 지은 아르메니아인의 신앙심도 보통은 넘을 것이다.

 

 

천장에는 종이 달려있었다. 그렇다면 입구겸 종루라는 말일까?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매끈한 대리석으로 깔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죽여가며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를 마친 뒤에는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벽면을 따라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머리에 수건을 얹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미인들이었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지만 얼굴 윤곽하나는 아주 또렸해서 못난 얼굴을 찾기가 어려웠다.

 

 

기념촬영을 다하고 단체 팀이 떠난 뒤 비로소 나는 예배당 앞쪽으로 다가가보았다. 

 

 

꾸민것 하나 없는 소박함 그 자체였다. 예배당이 크고 화려하고 웅장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출입하는 자들의 경건함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마음가짐을 더 중시하시는지도 모른다.

 

 

실내에는 경건함이 가득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 경건함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밖으로 나왔다.

 

 

가바잔(Gavaz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돌기둥이 마당 한쪽에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기 1390년경부터 타테브의 수도원은 대학으로서의 구실도 감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랬기에 엄청난 필사본들을 수집하고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셀추크 터키 세력같은 약탈자와 파괴자들에 의해 애써 수집해놓은 고대의 필사본들이 불타기도 했다. 

 

 

IS세력에 의해 시리아 내의 세계문화유산인 '팔미라의 사자상'이 파괴되는 것이나 탈레반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의 대석불'이 파괴되는 것과 무엇이 달랐으랴? 왜 누구는 파괴해야하고 누구는 보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하는가?

 

 

나는 가바잔 앞에 서서 용도를 짐작해보았다. 가바잔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려진 기념물이지만 원래 용도는 지진을 예측해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미세한 흔들림이라도 생기면 진동을 미리 파악해서 다가올 대재앙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이 수도원이 대학의 기능을 할 때 학생들의 과학실험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높이 약 8미터에 이르는 돌기둥인데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새겨진 돌을 얹었다. 별다른 조각도 없는 수수한 모습이지만 처음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 오랜 세월을 버텨온 기특한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남쪽 성벽에 붙여서 지어놓은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여긴 누가봐도 거대한 식당이다. 많은 수도사들이 경건한 자세로 검소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잠깐, 내가 여기서 매미소리를 들어보았던가?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르메니아서는 매미소리를 들은 것이 몇번 안되는 것 같다.

 

 

러시아 커플도 타테브 수도원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배당 벽 앞에는 십자가와 석류, 포도같은 것을 새겨놓은 돌판 카치카르가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시원한 바람이라도 좀 쐬어볼 요량으로 수도원 끝부분의 절벽으로 다가가 보았다. 보로탄 계곡으로 이어지는 또다른 골짜기가 발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른쪽 산중턱에는 붉은 지붕을 가진 마을이 하나 숨어있었다. 아마 탄자탑 마을이리라.

 

 

대단한 오지 마을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길이 절벽으로 고립되다시피한 산자락을 이리저리 휘감아가고 있었다. 

 

 

타테브로 오기 위해 케이블카를 탄 곳은 앞에 누워있는 봉우리 너머에 존재한다. 나는 계곡을 기어오르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한참동안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