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인구는 삼백만명 정도다. 삼백만이라고 하면 싱가포르 인구보다도 약 250만명 가량이 적다. 싱가포르는 제주도보다 작은 섬나라이지만 아르메니아는 경상도만한 면적을 가지고 있다.
경제력에서 아르메니아는 싱가포르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르메니아는 그만큼 가난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귀중한 문화유산을 깔끔하게 손보아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관광자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많지만 아르메니아의 관광자원은 자연적인 것이 많다. 유럽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이 아르메니아의 강점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관광업을 기반으로 해서 외화를 벌고 그 다음에 산업화를 도모해도 승산은 있을 것이다.
아르메니아 관광에 관한 홈페이지를 하나 찾아두었다. 혹시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 방문해보기를 바란다.
인력이 돌아간다면 타테브 수도원의 마당만이라도 잡초를 제거해두면 좋겠다. 깔끔함과 청결함과 친절함은 관광산업의 기초다.
나는 입구 부근의 건물에 올라가보았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전체구조는 요새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맞다. 처음부터 타테브가 요새모습으로 조성한 것은 아니다. 높은 담장을 둘러침으로서 요새처럼 변한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건너편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마을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확실히 아르메니아는 산악국가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너른 평야를 많이 확보한 국가가 식량수급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산악국가라고 해서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스위스를 보면 산악국가가 가진 장점이 단번에 드러난다.
건너편에서 케이블카를 탈 때 만났던 아가씨들을 다시 만났다.
하나같이 미녀들이다. 기독교국가에서 태어났기에 이렇게 발랄한 모습들을 보이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만약 이들이 이슬람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이 정도 나이에는 온몸을 천으로 가리고 살아야한다. 이런 모습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차가 있으므로 내 생각이 다 옳다고 우길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이번 여행까지 포함해서 터키는 다섯번 방문했다. 모두 배낭여행으로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리스에서, 불가리아에서, 조지아에서, 이란에서 입국을 해보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 직항편으로 똑바로 날아가 이스탄불에 도착해보기도 했다. 터키가 이슬람국가 가운데서는 가장 개방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여성들이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때 느끼고 보았던 그런 여성차별이 아직도 일상화된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번 뿐이다. 한번뿐인 인생길이기에 모두들 자기가치를 실현해가며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제도와 인습으로 인간을 지나치게 구속하는 것은 범죄행위일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나가기 위해 지켜야할 도덕과 삶의 기준은 있어야하는 것이지만 종교나 정치가 인간의 삶을 모두 지배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죄악에 가깝다. 죄악을 넘어서 그것은 범죄행위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수도원에서 나와서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음식점이 보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관광음식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번잡함이 없었기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수도원 건물이 저 밑에 보였다. 우리는 나무그늘에 놓인 식탁을 차지하고 앉았다. 돌아나가는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손님들 가운데 하루 종일 같이 다녀야하는 러시아 커플이 보이길래 내가 쫒아가서 우리가 조금 늦을 것이라고 말하고 양해를 구해두었다. 그게 예의 아니던가?
그리고는 아르메니아 가정식 요리를 먹었다. 제일 먼저 음료수와 함께 얇게 만들어 구운 빵이 나왔다. 여러가지 요리를 쌈싸듯이 싸서 먹으라는 말이지 싶다.
쟁반과 포크, 나이프와 컵은 항상 기본으로 준다. 그렇다. 이게 사람사는 방식이다. 뭐든지 손으로 마구 집어먹지 말고 인간답게 품위를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무기로 여기는 인간들과는 상종하기조차 싫어한다. 테러범들 때문에 기내식을 먹을 때 플라스틱 수저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니던가?
무슨 줄기일까? 맛은 좋았다. 먹을만 했다.
서양식 음식에 항상 따라나오는 토마토와 오이도 나왔다.
그 다음은 치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치즈다.
가지와 토마토 요리도 함께 나왔다. 아, 정말 먹음직스럽다.
양고기 같았다. 양파를 살짝 곁들였다. 맛있다. 이젠 이것들을 얇게 구운 빵에 쌈사서 먹으면 된다. 케이블카 때문에 마음이 급했지만 체할까 싶어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했다.
점심을 먹고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갔다. 사람들이 제법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르메니아 아가씨들을 다시 만났다. 윙즈 오브 타테브에서 일하는 직원 아가씨가 나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졸지에 인터뷰를 하게 생겼다.
물론 영어로 이루어지는 인터뷰다. 아르메니아의 인상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물었는데 느낌대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르메니아의 관광에 대해 평점을 매겨달라고 해서 최고점을 주었더니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쳐주면서 좋아해주었다. 인터뷰를 끝낸 뒤에 박수까지 받다니...... 케이블카를 기다리며 둘러서서 구경했던 모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내가 최고점을 준 이유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모두 선량했기 때문이다. 오랜 여행경험을 통해(자랑을 조금 섞어 이야기하자면 이번 여행이 26번째 해외여행이었다. 두번의 인솔여행을 빼면 나머지 24번이 배낭여행이었고......) 나는 나름대로 여행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에 준 점수였는데 의외로 현지인들이 너무 좋아했다.
나와 인터뷰를 한 여성직원의 영어 실력이 너무 유창해서 놀랐다. 바로 이 아가씨다. 어쩌면 아줌마일지도 모르겠다. 내 뒤에 서있던 분은 나와 동갑내기인 미국인 남자였는데 나이에 비해 내가 너무 젊게 보인다면서 놀라워했다. 케이블카를 탑승할 때 참으로 공교롭게도 바로 나까지만 탈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더 오래 기다릴뻔 했다.
오고갈때 보는 경치야 다 같은 것이겠지만 이번에는 다른쪽 방향을 보기로 했다. 산골마을이 아득하기만 하다.
마을 입구에는 대단한 폭포가 하나 숨어있었다. 가까이가서 보면 대단하리라. 골짜기의 규모도 크지만 저런 곳에 터를 잡고 살겠다는 엄두를 낸 사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를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중에 이란(Iran)을 다시 한번 더 갈 수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이란에서 나갈 때는 반드시 아르메니아로 입국해볼 생각이다. 이란도 참 좋은 나라였었다.
중간 산마루를 지났다. 산꼭대기에 거대한 밀밭이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현지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동양에서 온 나그네에게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기에 신기한 일로만 비친다.
다음에 온다면 꼭 걸어보고 싶은 경치를 가진 곳이다.
할리드조르 동네 한가운데 제일 큰 집은 학교일 것이다. 그래야 사회가 정상이다. 교육을 게을리하는 나라치고 선진국이 된 나라가 있었던가?
건너편 산꼭대기에도 마을이 있는 모양이다. 바르드츠라반(=바르츠라반)마을인가보다.
우리는 다시 원래의 탑승장으로 돌아왔다. 이미 오후 세시가 훌쩍 넘었다. 이젠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여기에서 예레반까지는 280킬로미터 정도가 된다는 것은 글을 쓰면서 위키피디아를 보고 알았다. 나는 이정표를 보고 220킬로미터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다.
오늘 우리가 본 타테브가 어쩌면 아르메니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경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때 본 경치를 다시 보는 것이지만 나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똑똑히 봐두기를 원했다.
타테브에서 나와서는 다시 간선도로를 타고 북상했다.
길가로 끝없는 밀밭이 시작된다.
산봉우리들도 어찌 저렇게 예쁜 곡선을 지닐 수 있는지 모르겠다.
타테브는 저 멀리 보이는 산밑 골짜기에 있었다.
산자락 너머 호수 하나가 숨어있었다. 지도를 보고 확인해본 결과 보로탄 마을과 시시안 마을 부근에 호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추수를 끝낸 밭에서 소와 양들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성경에는 추수를 끝낸 뒤에 다시 밭에 가서 이삭을 줍지말라는 귀절이 있다. 가난한 자를 위해서 남겨두라는 말뜻이었으리라. 여기서는 짐승들을 위해 남겨두는가 보다.
다시 얼마를 달렸을까? 도로가에 커다란 호수 하나가 등장했다.
스판다리안 호수가 틀림없다.
여기를 지나면 보로탄 패스(Vorotan Pass)가 나온다. 굉장한 고지대다. 보로탄 패스를 지나면 예레반쪽 방향으로는 건조기후대가 되어 길가의 풍광조차 슬며시 변하는 것 같았다.
이럴 때의 패스(Pass)는 고개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건조기후대가 되면서부터는 산에서 나무가 사라지고 숲은 계곡가로 한정되어 형성되는 것 같았다. 계곡에는 버드나무가 자라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우리가 탄 차는 마침내 아침에 통과했던 아레니 마을까지 돌아왔던 것이다. 아래 지도를 보자.
타테브에서 예레반으로 돌아가는 길 중간쯤이 아레니다. 이제 거기까지 간 것이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뜬다.
아레니는 와이너리로 유명한 곳이다. 운전기사는 아레니 마을에서 차를 세웠다. 아마 그가 잘 가거나 잘 아는 가게였으리라.
집에서 담근 포도주와 보드카, 꼬냑같은 다양한 종류의 술을 팔고 있었다.
기사와 러시아 커플이 케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울 때 나는 가게 뒤편의 마을을 구경했다.
길 끝머리 산밑에 교회가 한채 보였다. 가보려다가 참았다.
골짜기 속에 참한 마을이 하나 숨어있었다. 골짜기에는 푸르름이 가득했고.....
나는 길 건너편의 구멍가게를 살펴보기로 했다. 안을 보고싶다기보다는 꽃이 더 보고싶었다.
조선시대 양반집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는 능소화때문이었다.
길 건너편 구멍가게에 가보았더니 능소화가 틀림없었다.
능소화를 여기서 만나다니.... 다알리아와 백일홍도 모자라서 능소화를 여기서 만나다니.....
도로가에는 백일홍들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이 작은 구멍가게에서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렸다. 가슴이 아려왔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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