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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아라랏과 마주서다 - 코르 비랍 1

by 깜쌤 2015. 9. 18.

 

아침에 특별히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오늘 하루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7시부터 택시를 타고 아르메니아 남부지방의 유적지와 명승지 몇 군데를 돌아보기로 했었다. 어제 저녁에 매니저격인 헤안트씨에게 이야기를 해서 택시를 교섭해두었다. 사진으로 소개한 책이 이번 여행에서 참고로 한 론리플래닛이다. 

 

 

주인인 헤안트씨의 누님이 어제 우리들에게 제안을 했었다. 코르비랍노라방크, 그리고 타테브를 택시를 사용해서 하루종일 보고 돌아오는데 5만드람이면 되므로 생각을 해보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호스텔을 경영하는 사람의 장사속에서 나온 제안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믿을만 했으므로 저녁에 헤안트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헤안트는 그 정도의 가격으로 타테브까지 다녀온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자기 누님이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헤안트는 내 앞에서 자기 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동안 이야기가 오가더니 그는 누님이 나에게 제안한대로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5만드람은 누님이 잘 몰라서 부른 가격이고 정상적인 가격이 5만5천드람이므로 그 정도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소개해주는 차는 신형이며 호스텔측에서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출발하되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헤안트씨와 교섭하는 것을 주의깊게 보고있던 러시아 커플이 자기들도 동참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우리가 투어를 하는데 러시아 커플을 끼워주어도 손해될게 없었기에 일행과 의논한뒤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주었다.

 

 

아침식사 시간이 8시부터였지만 그런 연유로 해서 일찍 서둘렀던 것이다. 차 한대를 빌리는데 5만5천드람이라면 러시아 커플을 포함해서 우리가 모두 6명이니까 1인당 약 9,200드람이면 된다는 말이다. 우리 돈으로 일인당 2만3천원씩 부담해서 왕복 4백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다니며 남부지방 구경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은 치즈와 빵, 그리고 과일과 채소였다. 그 정도만해도 한끼 식사로 든든하다. 치즈도 종류가 많아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치즈만큼은 원없이 맛볼 수 있었다.

 

 

나는 이번 23박 24일동안의 여행에서 순수여행경비로 약 100만원 정도를 썼다. 터키에서 책을 8만원어치 샀는데 그런 경비까지 포함한 금액이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런대로 고급스런 여행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에서는 택시를 대절해서 다녀도 그 정도 경비면 충분했다. 물론 우리 일행이 나를 포함해서 네명이기에 택시를 사용해서 돌아다녀도 네사람이 함께 비용을 지불하므로 그만큼 부담이 적었다.

 

 

배낭여행을 하며 고생을 적게 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돈쓰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자유여행이라는게 고생스럽고 힘은 들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고 보람이 있다.

 

 

호스텔에서 제공해준 간식이다. 버찌와 사과인데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체리의 품질은 괜찮았다.

 

 

하지만 사과는 우리나라 사과만큼 알이 굵지도 않았고 당도 또한 높진 않았다. 우리나라 사과처럼 크고 맛있는 것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우리나라 사과보기가 왜그리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7시 10분에 승용차를 타고 호스텔을 출발했다. 운전기사 하루티운이 몰고 온 차는 일제 미쓰비시 7인승 SUV였다. 내가 보기에그는  40대초반으로 보였는데 약간 통통한 체격을 가졌다. 그러나 마음만은 그가 몰고 나타난 승용차만큼이나 푸근하고 폭신했다.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달렸다. 예레반의 변두리가 조금 초라하다고 해도 명색이 한 나라의 수도이다. 인구 100만을 자랑하는 도시인만큼 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사는 변두리의 대형마트앞에 차를 갖다댔다.

 

 

물을 사가지고 온 그는 우리들에게 한통씩 돌렸다.

 

 

도시를 벗어나자 남쪽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예레반에서 이란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인 셈이다.

 

 

도로 오른쪽으로 꼭대기에 흰눈과 빙하에 덮인 아라랏산이 나타났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아라랏은 터키 영토안에 있다. 어느 정도 남동쪽으로 달리던 차는 오른쪽으로 슬며시 방향을 틀었다. 

 

 

사진속을 잘 보면 도로 끝머리에 무엇인가 희미하게 나타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라랏의 큰 봉우리다.

 

 

차선도 그어놓지 않은 시골 도로가 들판을 가로질러 이어지고 있었다.

 

 

들판 한가운데 작은 언덕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 너머로 눈에 익은 아라랏이 고개를 쳐들고 우뚝 서있었다. 기사가 차를 세워주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아라랏산이 마침내 이방인인 내 눈앞에 우뚝 서있는 것이다.

 

 

저 앞에 작게 솟아오른 언덕 바로 너머로  터키와 아르메니아 사이에 존재하는 국경선이 지나가는 것이다.

 

 

산 하나를 두고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조금만 신경을 써서 보면 눈앞에 보이는 산은 예사로운 산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노아의 대홍수"에 등장하는 산이기 때문이다.  아라랏은 두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두개의 봉우리는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도로가에서 사진을 찍은 뒤 나는 인근의 포도밭 언저리에서 몇장 더 찍었는데 러시아 커플이 귀띔을 해주었다.

"포도밭에는 맹독성을 지닌 뱀이 살 수 있으니 조심하는게 좋습니다."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차에 올라탔다. 우리의 목적지는 조금 더 가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까 우리가 보았던 작은 언덕에 오늘 투어의 첫번째 목적지가 존재한다.  주차장에 차를 댔다. 작은 매점 하나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유적지라면 수많은 가게들이 즐비하고 유적지를 찾은 인파로 북적거려야 하지만 여기는 아르메니아다. 총인구 3백여만명이 경상남북도 크기만한 영토에 흩어져 사는 나라인 것이다. 

 

 

그만큼 사람이 귀한 나라이니 사람 구경하는게 힘이 든다. 십자가를 새긴 돌판이 사람을 대신해서 나그네를 맞아주었다.   

 

  

흙먼지가 슬쩍 날리는 공터를 지나 메마른 대지위에 뿌리를 박은 몇그루의 나무사이로 이어진 길을 지나면 뱀처럼 언덕을 휘감아오른 탐방로가 나타난다.

 

 

탐방로 입구에는 어쩌다 나타나는 나그네들의 선한 마음에 생계를 이어가는 아줌마가 손을 벌리고 앉아있었다. 동전하나 쥐어주지 않고 그냥 지나친 나의 야박함이 이제와서야 괜히 미워졌다. 

 

 

거지 아줌마의 서글픈 시선을 뒤로 하고 나는 탐방로로 올라섰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의 해발고도만 해도 벌써 이천미터다. 여기는그만큼 고지대인 것이다.

 

 

유적지 입구에는 멀리서 볼 경우 꼭 집처럼 여겨지는 물체들이 존재하는데 알고보면 거긴 공동묘지다.

 

 

바로 이런 식이다. 무덤을 산처럼 거대하게 만드는 동양의 군주들과 비교하면 서양인들의 무덤은 크기면에서는 정말 비교가 된다. 우리를 데려온 운전기사가 차를 댄 장소가 밑에 나타났다.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니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이런 언덕과 비슷한 언덕이 벌판 저멀리에 또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또 다른 공동묘지가 언덕 한쪽에 포근히 안겨있었다. 죽은 자를 한곳에 모아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었다.

 

 

언덕은 바싹 말라 갈색세계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언덕 아래 벌판에는 초록이 묻어있었다. 

 

 

 

그 벌판을 가로질러 철조망이 몸뚱아리 긴 뱀처럼 징그럽게 누워있었다. 사진 윗부분 오른쪽이 터키 영토고 왼쪽은 아르메니아 영토다. 좀 더 확실하게 살펴보자.

 

 

이런 식이다. 골짜기의 반을 갈라서 두나라가 반씩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왠지 서글퍼졌다. 행성 지구에 매달려 사는 인간들의 욕심이 빚어낸 상징물이 국경선이라는 괴물이다.

 

 

이윽고 입구가 나타났다. 여기가 코르 비랍(Khor Virap)이다. 코르 비랍은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낱말이다.

 

 

방금 코르 비랍안에서 걸어나온 두사람의 미녀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얼핏봐도 상당한 미녀들이었다. 그러나저러나 이 나라 여자들은 모두들 왜 그리 이쁜지 모르겠다.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주위를 살펴두었다.

 

 

국경선도 한번 더 살펴두고......

 

 

코르 비랍과 아라랏 사이로 지나가는 국경선이 괜히 얄미워졌다. 아라랏의 북쪽 사면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쪽 사면은 터키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몇번 보았었다. 이 골짜기 부근에 으드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터키 도시가 존재할 것이다. 남쪽 사면에는 도우베야짓이라는 도시가 존재한다.  

 

 

나는 코르 비랍 수도원의 입구로 다가갔다. 가만 있자.....  수도원 입구에  동글동글하게 자라오른 저 낯익은 녹색식물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렇다. 저건 틀림없는 댑싸리다. 내가 어렸던 시절 할머니도 어머니도 저 녀석을 길러 햇살 좋은 가을날을 골라 마당을 쓰는 빗자루를 만드셨다. 저 댑싸리가 아라랏 산밑에 자리잡은 수도원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니..... 

 

 

나는 알 길 없는 전율에 휩싸이고 말았다. 다음에 시골가서 살게되면 꼭 길러보고 싶은 식물 가운데 하나가 댑싸리였는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