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노라 방크 - 절벽 위에 자리잡은 수도원 1

by 깜쌤 2015. 9. 22.

 

코르 비랍의 옆문으로 나온 우리들은 다시 한번 뒤돌아보며 수도원을 눈에 담아두었다.

 

 

그리고는 돌아나가야할 길을 살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돌아나간 뒤 다시 남동쪽을 향해 달릴 것이다.

 

 

먼저 살았던 많은 이들이 영면을 누리고 있는 묘지가 우리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 지금은 내가 살아있는 자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죽어서 저런 식으로 묻힐 것이다.

 

 

살아있는 자들은 무엇인가를 남겨두려고 한다. 코르 비랍 수도원 바깥 담벼락 한구석에 응회암 석재들이 곱게 쌓여있었다.

 

 

산 자들은 그 재료들을 가지고 또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국경선을 따라 차 한대가 달리고 있었다. 어느 나라의 국경선은 이렇게 얇기만 한데 한반도의 허리를 두동강 낸 국경은 화력좋은 무기들의 집합처가 되었고 폭도 십리나 된다.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을 지닌 구역 안밖으로는 살상용 지뢰들이 가득 묻혀있어서 젊은이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요새처럼 보이는 수도원을 뒤로 남겨두고 우리는 아래쪽의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갑자기 인적이 끊어져버린 듯 했다. 사방에 고요함이 밀려왔다.

 

 

아라랏 산 밑 계곡에는 푸르름이 가득했다. 수도원이 있는 언덕과 산에는 메마름이 가득한데 골짜기에는 푸르름으로 덮혀있으니 어쩐지 아구가 맞지않는 그런 느낌을 주었다.  

 

 

우리를 태우고 온 차는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겠다. 첫 목적지 탐방을 끝냈으니 이번에는 두번째 목적지를 향해 달려야 할 것이다.

 

 

죽은 자는 누워있고 산자는 따를지어다. 다음 목적지로 고고 싱~~

 

 

우리는 코르 비랍이라는 마을을 돌아나와 남부로 이어지는 중심도로위를 신나게 달렸다. 코르 비랍을 품고 있는 마을의 원래 이름은 포크르 베디이다. 도로 가에는 과일을 팔러 나온 사람들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움막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전시해놓은 수박 덩어리가 제법 컸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4차선으로 된 곳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2차선으로 줄어들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 도로가 아르메니아의 남쪽지방으로 이어지는 핵심도로다.

 

 

얼마쯤 달렸을까? 도로를 벗어난 차는 시골 마을 안으로 들어서서 먼지를 일으키며 골목을 스리슬쩍 누비다가 다시 포장도로를 찾아 올라왔다.

 

 

알고보니 오늘 아침에 초대형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석유가 도로 한쪽에 가득 묻어있었고 냄새가 자욱했다. 교통경찰이 동원되어 사태를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아까 전에 사이렌소리를 울리며 지나간 앰블런스를 본 기억이 났다.

 

 

교통사고 현장을 벗어나서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보이는 산들은 하나같이 메말라 있었다.

 

 

고개가 제법 높았다. 우리가 탄 차는 신형이어서 그런지 별 어려움없이 가뿐하게 오르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차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큰 산을 넘어서자 또 다른 계곡이 시작되었다. 골짜기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건조한 지방일수록 과일의 당도가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르메니아 과일들도 제법 맛있다.

 

 

한시간쯤 달렸을까? 자그마한 시골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아레니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인데 포도농사로 유명한 곳이다.  포도농사가 잘된다면 그것은 포도주가 유명하다는 말이 된다. 아레니의 와이너리는 명성이 자자하단다. 길가 난전에 진열해둔 플라스틱 콜라병에 넣어 파는 것은 콜라가 아니고 포도주다.

 

그런 포도주는 이란인들이 많이 사간다고 한다. 이란은 이슬람국가이므로 술 판매가 엄격히 금지되지만 사람 입맛을 어찌 다 통제할 수 있으랴? 더구나 싸고 맛있고 품질 좋은 아르메니아산 포도주가 길가에 즐비한데.....  그러니 포도주를 콜라 페트병에 담아 파는 것이다. 

 

 

이레니 마을에서 예레반까지는 약 90킬로미터의 거리다. 제법 많이 달려온 것이다. 아레니 마을을 지나서 조금 더 달리더니 오른쪽 골짜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양쪽은 높은 절벽이다. 협곡 속으로 도로가 나있다는 말이 된다.

 

 

경치가 제법 웅장했다. 계곡 안쪽에서 걸어나오는 커플들이 간혹 보이기도 했다. 아하, 이 골짜기 속에 멋진 유적지가 있는가보다. 그게 사실이었다. 노라 방크라는 멋진 유적지가 골짜기 안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기사가 가리키는 손끝을 보니 절벽 위에 교회가 보였다. 저기구나 싶었다. 노라 방크가...

 

 

헨리크 입센이 쓴 <인형의 집>에 노라가 등장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노라'는 사람 이름이 아니고 영어로 new라는 의미다. 

 

 

교회 지붕 두개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곧 숨어버렸다. 숨는다고 못 찾아갈 우리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텐데......

 

 

이윽고 차는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도가 낮은듯해도 오르고 보니 제법 높았다.

 

 

지그재그로 방향을 틀어가며 올라갈때마다 교회지붕은 나타났다가 숨었다가를 반복했다.

 

 

사람 좋은 기사는 약간 넓게 보이는 주차장 빈 터에 차를 멈춰 세웠다. 아르메니아 유적지의 좋은 점은 입장료를 알뜰히 챙겨 받는 곳이 적다는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중국의 살인적인 입장료와 비교하면 이 나라는 너무 착한 나라다.  

 

 

너무 착했기 때문에 강대국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맞고 터지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것 때문에 교회가 산중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수도원같은 건물은 특성상 산속에 숨어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엄밀히 따지면 노라 방크는 수도원에 속할 것이다.

 

New Monastery로 번역하는 것을 보면 수도원이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수도원 속에는 수도 시설만 있는게 아니다. 예배드리기 위한 교회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가 산중에 있다는 것이 좀 그랬다. 

 

 

사방은 메마른데 수도원 부근에는 푸르름이 조금 남아있었다. 주차장 인근에 자라고 있는 포플러나무 몇그루가 나그네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연한 분홍색 내지는 연한 갈색을 띄는 교회 건물 두채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곧바로 교회쪽으로 다가가기보다는 부근 경치를 먼저 살펴보고 싶었다. 

 

 

교회 맞은편에는 매점을 겸한 작은 박물관과 화장실, 그리고 레스토랑이 숨어있었다.  

 

 

작은 묘지도 보였다.

 

 

노라 방크에는 두개의 교회가 있다. 지금 보는 것은 앞쪽에 있는 큰 교회다. 크다고 표현했지만 정말로 덩치가 커서 큰 것이 아니고 둘중에 하나가 조금 더 크다는 말이다.

 

 

교회 앞 작은 꽃밭에는 백일홍과 다알리아, 페튜니아 같은 꽃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여기 핀 백일홍은 내가 어렸을때 본 백일홍과 거의 흡사하다. 나는 아련한 향수를 느꼈다.

 

 

이제 두개의 교회가 다 한눈에 들어왔다. 앞쪽에 보이는 큰 교회가 수르프 아스트밧사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호브한네스라는 주교가 서기 1105년에 교회를 건립한 것이 노라 방크의 시초라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와 견주어보자면 고려시대 초기에 처음 교회가 지어졌다는 말이 된다.

 

 

돌에 새긴 십자가 조각들이 보이는가? 이런 것들을 카치카르라고 부른다.

 

 

아르메니아 전역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독특한 조각품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멋진 예술성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교회는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 붉은 산 밑 절벽 언저리에 세워져 있었다.

 

 

이 골짜기는 정말 뜨겁다. 그러니 사람이고 짐승이고 간에 어지간하면 모두들 그늘밑에 숨어있다.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온 사방천지가 모두 헐벗은 산들이었다.  

 

 

이 붉은 빛 투성이의 광막한 산중에 수도원을 만들 생각을 한 호브한네스 주교의 신앙심이 놀라울 뿐이다. 

 

 

지도를 잘 살펴보면 여기에서 아제르바이잔 국경이 그리 멀지 않다.

 

 

아제르바이잔은 두개의 커다란 분리된 영토를 가진 나라다. 

 

 

큰 덩어리 영토 하나는 카스피해와 면해있고 다른 하나는 터키와 이란, 아르메니아 사이에 끼어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나히체반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제 교회쪽으로 다가가본다. 나는 유적지가 가지는 의미를 더 깊이 음미하고 싶어서 천천히 걸어서 다가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뒷면에 해당한다. 앞쪽으로 가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뒷쪽에 있는 작은 교회는 앞쪽 교회를 뜯어보고 난 뒤에 살펴볼 생각이었다.

 

 

벽면 조각들이 아름답다. 규모는 작아도 아름다움 하나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듯 하다.

 

 

햇살을 받은 벽면이 환한 붉은 빛 혹은 연한 갈색으로 빛났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벽면에는 다양한 모양을 한 십자가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런 십자가를 보면 왜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공군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면으로 돌아 갔다. 교회 외관은 얼핏 봐도 이층처럼 생겼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작은 체구의 딸아이가 겁도 없이 편안한 자세로 내려오고 있었다. 내부의 아름다움은 다음 글에서 확인해보기로 하자.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