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진실게임과 정부청사

by 깜쌤 2015. 9. 11.

앞 글에서 언급한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이해하기 위해 먼저 올해 5월 15일자 한국일보의 문화면 기사를 하나 인용해보기로 하자. 글의 출처는 아래 글상자 속의 주소와 같다. 기사의 원문을 보고 싶으면 주소를 클릭해보면 된다.

 

 

 

보는 분들의 편리를 위해 글의 원문을 복사해와서 문단만 구별하기 위해 조금 띄웠고 학살부분과 관계된 기사는 글자를 조금 굵게 키웠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지루할까 싶어서 글 상자속에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의 거리풍경을 넣었다.  

 

 

 

14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유카페카 사라스테와 러시아의 밤’ 공연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한 관객이 연주자에게 야유를 퍼부었지만 연주자는 꿋꿋하게 준비한 발언을 끝냈다. 공연 직후 다른 관객들은 이 연주자에게 몰려들어 예정에 없던 즉석 사인회까지 열었다.

 

 

 

 

 

 

소동은 서울시향과 협연한 아르메니아 출신의 첼리스트 나레크 하크나자리안(27)이 차이코프스키의 야상곡 C#단조, 로코코 변주곡 A장조를 연주한 직후 앙코르곡을 연주하려 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아르메니아인으로서 제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에 이 앙코르를 바치고 싶다. 올해 2015년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0주기 되는 해”라고 말했다. 이 때 터키인으로 추정되는 한 관객이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말라!”고 야유를 퍼부었고, 객석은 술렁거렸다.

 

 

 

하크나자리안은 “(아르메니안 대학살은) 오스만 제국이 1915년에 저질렀고 약 150만명 정도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죽었다”고 꿋꿋하게 발언을 이어가자 다시 한번 “입닥쳐!(You shut up!)”라는 야유가 터졌다. 하지만 다른 관객들은 하크나자리안의 편이었다. 하크나자리안이 “내가 입을 닥쳐야 하나? 그가 입을 닥쳐야 하나?”며 당황하자, 객석에서 연주자를 응원하는 박수가 쏟아졌다.

 

 

 

하크나자리안은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바치고자 조반니 솔리마가 작곡한 ‘라멘타치오’(애통)를 들려드리겠다”며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커튼콜은 3차례 이어졌다. 2013년 6월 서울시향과 첫 내한공연을 가진 하크나자리안은 당시에도 이 곡을 앙코르곡으로 선보였었다.

 

 

 

 

 

하크나자리안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곡을 앙코르 연주한 적이 거의 없지만, 올해는 아르메니아 학살 100주기를 맞아 이를 추모하기 위해 특별히 연주했다”며 “올해 아르메니안 학살 100주기를 추모하는 공연이 아르메니아 내에서도 있는데 공연 중에 종종 그런 일(아유)이 있다. 사인회 때 한국 관객들이 찬사를 보내주셔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하크나자리안이 연주가 끝난 뒤 야유한 관객이 뭐라고 했는지 물었던 걸로 보아 야유한 내용을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20세기 최대의 홀로코스트 중 하나로 불리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이던 1915~1918년을 전후해 터키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을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사망자 수는 아르메니아 측 주장에 따르면 150만 명, 터키 측 주장에 따르면 30만 명이다.

 

학살 100년이 되는 올해 아르메니아에서 추모 행사가 잇따르고 있고,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이 사건을 집단학살(Voelkermord)로 언급했다. 아르메니아를 비롯해 유럽연합, 교황청, 러시아, 독일 등은 당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인종 학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터키는 이 용어의 사용을 거부하고 전시에 불가피한 사건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이고 누구의 주장이 거짓이든 간에 학살이 있었음은 틀림없는 일이다. 올해 독일국회에서도 이 문제때문에 시끄러웠다.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의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했던 나라가 독일이고 그 문제를 두고 시간과 기회가 생길때마다 사과를 거듭해왔던 독일이었기에 대학살 문제를 거론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일부 터키인들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자체를 조작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인들이 중일전쟁 기간중에 중국 남경에서 저질렀던 남경대학살을 부인하는 것이나 이란인들 가운데서 홀로코스트를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것이나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한국인 위안부 사건을 부인하는 것이나 뭐다 다른 것일까?

 

 

시내 중심가로 걸어가다가 커다란 교회당을 발견했다. 외관을 보니 그리 오래된 건물이 아니고 최근에 지은 것 같았다.  예배당 입구 왼쪽에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놀이공원이 있었고 그 앞에는 동상이 하나 서있었다. 러시아풍의 동상 모델은 내가 보기에 스탈린같았다. 외모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공인국가임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로마제국보다 빠른 시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여서 그런지 곳곳에 커다란 교회당이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예레반은 언덕 가운데 끼여있는 도시라고 봐도 될 정도다. 예배당 뒤쪽으로 언덕이 보였다.

 

 

 말을 타고 있는 사나이는 누가 봐도 스탈린같다.   

 

  

낮으막하게 이어진 계단을 따라 걸었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적당하게 각을 세운 간결한 모습의 예배당이었다.

 

 

예배당 주위에는 달동네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친 표현같은 그런 동네가 허름한 집들을 가득 품어안고 있었다. 

 

 

공식적인 이름은 (Saint) 그레고리 일루미네이터 대성당이다. 지난 2001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공인 17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예배당이라고 보면 된다. 

 

 

 대성당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을 해두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로마카톨릭교회에 다닌다기보다 12사도교회를 섬긴다고 보는 것이 옳은 일이리라. 공식적인 명칭이 다른 것이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전실(前室)에 해당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정교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예배용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천장이 엄청나게 높아서 이런데서 찬양곡을 부르면 울림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아르메니아인들의 경건한 심성을 담아내서 그런지 교회안은 한없이 차분하고 조용하기만 했다.

 

 

관광객들이 들어와서 사진을 찍는 것은 허용할 망정 경건한 분위기를 깨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예배당 안쪽의 제일 뒤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안을 살피다가 조용하게 일어나 되돌아나왔다.

 

 

영혼이 맑아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간결함과 장중함을 담은 교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노인 한분이 벽면에 손을 대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당안은 시원했지만 바깥에는 뜨거운 태양이 한여름의 열기를 땅바닥으로 마구 쏟아붓고 있었다.

 

 

카타르시스! 그렇다. 나는 성 그레고리 대성당에서 영혼의 정화를 느꼈다.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부근에 아라라트 시장이 있다.

 

 

관리인인듯한 분이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조잡한 느낌을 주는 동상 앞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칸나와 샐비어와 금잔화가 자기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뭔가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시가지를 향해 조금 더 걸어가자 유리창을 많이 사용해서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건물이 나타났다.

 

 

햄버거를 파는 가게같았다.

 

 

제정 러시아시대를 살았던 문학가의 동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버스에 쓰여진 중국한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벌써 이런 산간벽지 유럽국가들에게까지 미치는 모양이다.  

 

 

이미 터키에는 굉장히 많은 중국인들이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많은 중국인들을 만났다.

 

 

시내버스들 가운데는 중형버스들도 운행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도 조금씩 변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느낌으로 보아 이제 시가지 중심부가 가까워진듯 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곡이 진 건물이 광장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예레반 중심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광장을 중심으로 배치된 건물들이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바로 이런 식이다. 아름답다. 지나치게 크지도 않고 턱없이 크게 높지도 않아서 속물적인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 건물들이다. 알고보니 정부청사 건물들이었다.

 

 

2015라는 숫자가 건물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런 것이 진정한 역사교육이라는 느낌이 밀려왔다.

 

 

민족이 당한 비참한 쓰라림을 기억하고 가해자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역사의식이며 가해자에 대한 관용일 것이다.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치열한 몸부림이 나그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정부청사를 경비하는 경찰과 군인들도 정말 친절했다. 그들은 우리들이 방향을 묻자 친절하게 응대해주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