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갈때 보이는 풍경은 후줄근함 그자체였다.
대지는 바싹 말라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가 있는 예레반은 건조기후대에 들어가는 지역이라 한낮의 여름 태양은 엄청 뜨겁다. 우리나라의 한여름 태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보면 된다. 머리에 흰눈을 인 상태로 버티고 서있는 산이 아라랏이다.
미스터 코마의 볼가 택시는 도로가에서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고물이지만 그에게는 새차와 다름없는 애마일 것이다. 그는 트렁크위에 지도를 펴놓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애마인 고물 볼가 승용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낯선 나라에서 처음 만나는 풍광은 신기하게 비치는 법이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햇살속의 사물들이 산뜻하게 느껴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난함이 묻어있는 풍경이 줄을 이었다.
러시아 냄새가 확 풍기는 동상이 도로가에 나타나기도 했다. 차 안에서 코마씨는 자기가 잘 아는 호스텔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번 찾아가보기로 마음먹었던 호스텔은 도시 중심부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작은 호스텔이었다.
차에서 내려 일단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통로가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꺾자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배낭여행자가 지켜야할 철칙가운데 하나는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야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오전에 목적지에 도착한 뒤 숙소를 구해두어야 편하다. 숙소를 구한 뒤에는 짐을 풀고 구경에 나서는게 옳은 일이다.
계단을 오르자 식당처럼 쓰는 공간이 나타났다. 주인을 찾자 잘 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이름이 헤안트라고 자기 소개를 했던 그는 우리들을 보고 일단 의자에 앉으라고 권해왔다. 자리에 앉자말자 방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미스터 코마는 따라 들어와서 우리들의 행태를 살피고 있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럴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안내해온 사람들에게 집주인이 커미션을 주는 것이 통상적이다. 우리가 하는 언행을 통해 우리를 데리고 온 사람은 우리들이 어느 정도의 여행이력을 가졌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여행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커미션을 노리고 있는 운전기사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전문적인 삐끼들도 많다. 운전기사나 삐끼가 여행일정 속에 자기 차나 자기가 아는 사람을 이용해서 투어를 하면 어떠하겠느냐는 식으로 나오는게 당연지사인데 그럴 경우 교섭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생긴다. 여행경험이 없는 초짜티를 내면 이익될 게 없다는 이야기다.
헤안티는 우리들에게 얼마동안 머무를 것인가를 물어왔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며칠을 머무는가에 따라 숙박가격과 방 배정에 차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차를 타고 오면서 예레반에서는 며칠을 머무를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두었다.
23박 24일의 여정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법이다. 이번 여행에서 여행지 범위를 최대한 좁게 잡았지만 그래도 세나라나 된다. 한나라에서 오래 머뭇거리면 나머지 일정 소화가 곤란해지기에 머리속으로 철저히 계산해두어야했다.
"이틀을 머물 생각이오."
내 대답을 듣더니 그는 컴퓨터 화면을 살펴본 뒤 어디엔가 전화를 걸어 상의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머물 방은 있단다. 그러더니 나에게 전화를 바꾸어주었다.
"주인과 좀 더 상의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전화 바꾸어드리겠습니다."
전화속에 등장한 인물은 의외로 여자였다. 나는 그녀와 통화를 하면서 이틀을 머물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9시까지 기다려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 정도는 좋다고 했다. 졸지에 우리들에게는 한시간 동안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방을 보고 빈방에 배낭을 가져다 두었다. 2층의 3인실과 1층의 2인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헤안트와 이야기를 하며 내가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인의 대학살사건을 알고 있다고 언급했더니 갑자기 그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빵을 가져다주고 먹으라고 하기도 하며 우리가 컵라면을 끓여먹는 것에 대해서도 냄새에 상관하지 않는며 너그럽게 나오는 것이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사건은 아르메니아인과 터키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상당히 민감하게 여겨지는 문제다. 나중에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피해자격인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이 사건이야말로 굉장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지만 가해자인 터키인들은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이다. 멀고 먼 나라에서 찾아든 낯선 여행객이 자기들이 가장 가슴아파하는 사건을 알고 있다고 언급했으니 어찌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이 여행의 기술일 수도 있다.
첫새벽에 공항에 도착한 후 아침먹을 겨를이 없었기에 챙겨먹지 못한 아침식사지만 한끼를 건너뛸 수 없었기에 일행이 가지고 온 컵라면 4개를 끓여먹기로 했다. 8시경에 아침음식을 준비하는 아줌마가 와서 상을 차리기 시작했는데 하루도 숙박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도 아침상을 차려주는게 아닌가? 빵과 치즈뿐이었지만 컵라면까지 곁들였으니 훌륭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미스터 코마는 틈을 보아 우리들에게 내일 코르비랍과 다른 몇군데를 돌아보지 않겠느냐며 교섭을 계속해왔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가 부르는 가격이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코마와 벌이는 교섭과정을 이 호스텔의 매니저격인 헤안트는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거절하자 코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져갔다.
봉을 물었는데 완전히 물지 못했다는 그런 얼굴표정이었다. 삶에 지친 그의 얼굴 표정을 보는 순간 가슴이 아파왔지만 나도 돈을 아껴야하는 여행자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렸다. 여행에서 낭만은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친 감상이나 낭만은 득이 될게 하나도 없다.
2층 우리 일행이 머무르고 있는 방 맞은편에 한국인 세명이 머물고 있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분들을 나중에 식사시간에 만나보게 된다. 한국인 배낭여행자들과 멀고도 험한 아르메니아에서 한집에 같이 머물게 되다니 이런 일도 다 있는가 싶었다.
9시경에 주인여자가 왔다.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녀와 나는 방값을 교섭했다. 방 하나에 하루 12,000드람씩으로 했다. 우리돈으로 치면 1인당 1만5천원인 셈이다. 물론 아침식사 포함이다. 론리 플래닛의 정보에 의하면 아르메니아의 호텔가격은 이 나라의 물가 수준에 견주어봐도 다른 나라의 가격보다 높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준수했다.
방을 구했으니 오늘 하루는 예레반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일 일정을 미리 계획해두어야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매니저인 헤안트의 누나인 주인여자가 자기가 잘 아는 택시 운전기사가 있는데 원한다면 코르비랍과 아레니의 와이너리, 그리고 노라방크와 타테브를 돌고 오는데 5만 드람에 교섭을 해주겠다며 말을 했었다. 잘 생각해보고 저녁때 결정을 해서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내일 차량을 이용한 투어(tour)를 해야한다면 오늘은 시내를 봐두어야 한다. 오늘 시내를 돌아다니려면 먼저 환전을 해야했다. 우리들은 짐을 방에 남겨두고 환전소의 위치를 확인한 뒤 환전을 하러 나갔다.
우리가 머무는 인터호스텔(Inter Hostel)을 나와서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세월의 흐름속에서 많이도 낡은 듯한 흑백풍경이 이어졌다.
호스텔을 나와 모퉁이를 돈 뒤 살짝 비탈진 언덕길을 내려가면 커다란 시장이 나온다. 예레반 사람들에게 굼(Gum)시장이라고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고 한다. 굼 시장은 예전의 우리나라 재래식 시장을 떠올리면 딱 들어맞는 그런 분위기를 가졌다.
시장건물 주변에 세워진 승용차들의 종류는 가지각색이었고 수준도 천차만별이었다. 최고급 페라리가 보이는가 하면 구소련의 라다승용차도 보였다.
놀랍게도 양철을 다루는 집이 보였다. 양철로 온갖 생필품을 만들어파는 가게가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1970년대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야가 보이고 연통이 보이고 물뿌리개가 보이기도 했다.
시장건물 주위로는 과일을 파는 난전이 모여있기도 했다.
시장 정문이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많은 차들이 주차해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제법 규모가 큰 백화점 비슷한 건물이 서있었다. 그게 이나라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변두리니까 그저 그런 나라라고 함부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부근에 환전소가 있었다. 은행은 분명히 아니다. 그냥 환전소일 뿐이다.
환전을 했다. 일단 100달러를 먼저 환전해보기로 했다. 달러당 477드람(AMD)을 준다. 100달러를 환전했으니 47,700드람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새벽에 공항에서 환전했을땐 472드람으로 했었다. 공항이나 일반환전소나 환율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아르메니아라는 나라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는 호스텔에 들어가서 수도 탐색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시내로 나갔다. 돈도 준비되었으니 이제 쓸 차례가 된 것이다.
변두리 풍경은 산만했다.
정신을 차리고 세밀하게 둘러보면 눈에 익은 은행들도 보인다.
거리 곳곳에 포플러나무들이 자라고 있기도 했다.
시내를 누비는 미니버스들은 노란색이 많았다. 조지아도 그랬다.
거리 곳곳에 현대식 건물들이 조금씩 들어서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교통신호를 기다리다가 1915라는 숫자가 새겨진 대형현수막을 보았다.
1915 ! 그게 무슨 뜻일까? 그 숫자에는 아르메니안들의 처절한 슬픔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하기로 하자.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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